[설용수의 팍스코리아나]평화통일로 가는 길①

한민족의 통합과 분열의 역사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15-10-19 0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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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산(離散)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한국전쟁 이후 무려 1000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들이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에게 ‘분단’이라는 두 글자는 평생 기다림과 인내의 ‘한’으로 각인돼 있다.


이런 상황은 남북으로 분단된 현재의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분쟁과 전쟁은 단군조선 이래 고대 부족국가 시대에도 있었고 삼국시대에도 있었다.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한민족이 고구려.백제.신라로 나눠져 대규모의 전쟁을 함으로써 대량의 인명 살상과 한민족 동질성의 파괴를 야기하곤 했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영토가 좁고 국력이 약했던 신라는 군사적으로는 고구려, 문화적으로는 백제를 앞설 수 없었으나 결국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화랑도정신과 함께 원효.의상.원광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민족이 하나 돼야 함을 깨닫게 했고 외교와 군사전략에 탁월한 김춘추.김유신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동성사로 불렸던 원효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삼국의 뿌리는 하나’라며 일미(一味).일심(一心)사상과 화쟁(和諍)의 논리를 중심하고 삼국이 하나 돼야 할 당위성을 설파함으로써 반전 평화사상을 고취시켰다.


또한 그는 ‘지옥이 남아 있는 한 열반(해탈)하지 않겠다’며 민중과 함께 서방정토를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의 그러한 강한 통일의 의지는 삼국통일의 정신적 근간이 됐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시대로부터 한민족은 조선조 후기에 이르기까지 1300여년 동안 통일국가를 이뤄왔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 들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36년간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가 8.15 광복을 맞아 나라를 되찾게 됐으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미국과 소련에게 분할 점령을 당함으로써 국토의 중앙에 삼팔선이 그어지며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유엔(UN)에 가입해 국제사회에서 두 개의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입장이지만,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남북은 동.서 냉전의 전초기지로서 미소 대결의 각축장이 됐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동.서 냉전체제는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의 집권자들은 ‘통일’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여전히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6월에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월에 발표한 ‘10.4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상호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잦아지고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민족적 동질성이 회복돼 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햇볕정책은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며 상호주의 원칙에 의한 ‘실용적 대북정책’을 펼치자 체제유지에 급급한 북한정권은 자기들의 취약한 체제를 감추기 위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위협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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