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용수의 팍스코리아나]냉혹한 국제 질서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15-08-24 09: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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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광복 직후 독립정부 수립을 갈망하던 우리 민족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의결한 ‘신탁통치협정’에 따라 5년간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국내에서는 김 구 선생을 중심으로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전개된 반면 처음에는 반탁운동을 하던 공산당을 중심한 좌익세력은 박헌영의 평양 방문 후 찬탁으로 돌아섰다. 결국 좌·우익이 찬탁과 반탁의 양 진영으로 대립하게 됨으로써 한민족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들었으며 결국 신탁통치는 무산됐다.


한반도 문제가 모스크바협정(모스크바 3상회의)에 의해 구성된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달은 미국은 1947년 9월 한국문제를 국제연합(UN)에 이관하기로 결정했다.

1948년 1월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한국의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서울에서 활동을 개시했으나 소련의 반대와 북한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그리고 그해 4월 김일성의 주장에 따라 남북협상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던 김구와 김규식도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해 1948년 5월 10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하에 남한 단독으로 총선거를 실시해 198명의 제헌의원을 선출, 제헌의회를 구성하,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했다. 

 

북한도 독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3차 회의에서는 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구성했다. 1948년 8월 25일 대의원선거를 실시하고 9월 3일 북한 헌법을 정식 채택한 후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한반도에는 두 개의 나라, 즉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내부에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제국주의화를 위해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제압하고 대동아공영권이란 미명하에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40년 동안 식민통치한 끝에 우리 민족에게 분단의 멍에를 씌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들이 행한 만행에 대한 반성은 커녕 엉뚱하게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극우파 지도자들은 망언을 일삼아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숙원인 통일문제와 함께 일본에 대한 대응에도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므로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한다. 미국 국립지리원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독도-리앙쿠르 락스’라는 한국령으로 표기해 오던 것을 갑자기 분쟁지역으로 바꾼 것도 자기 나라의 실리를 위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고 힘을 기르지 않으면 언제든지 강대국들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힘을 길러 세계 속에 강한 한국으로 우뚝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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