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창극’ 해법 어렵지 않다

추성춘 이사장 칼럼
온라인팀 local@localsegye.co.kr | 2014-10-01 15: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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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성춘 생활정치 이사장 © 로컬세계

 

 

[로컬세계] 서민(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스러울 것 같다.  

 


법조문에는 각료 제청권이 있다고 하나, 지켜진 적이 별로 없고 국무총리라고 해야 국정을 좌지우지 할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총리 인사 때마다 여러 정권에 걸쳐 말썽이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제처럼,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미국의 부통령처럼 대우하고, 대통령이 직접 총리 역할을 겸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의전이나 약간의 정책 조정 역할, 또는 시대가 요구하는 특정 정책 수행을 돕는 수석 국무위원 급의 총리라고 국민이 받아드리면, 훨씬 더 선택이 용이하고 적합자도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는 본인이 장차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절차대로 청문회를 통해 국민 앞에서 토론하고 국회가 총리임명동의안을 찬반 투표로 처리하면 된다.


단, 당론에 구애 받지 않고, 의원 소신대로 크로스 보우팅, 자유투표로 하도록 하면 된다.


총리 인준 투표를 여야가 당의(黨意)로 구속하면, 18대 국회에서처럼 해머나 전기톱, 최루탄 투척 까지는 안가도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국회선진화를 위해서도 자유투표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고 특히 총리지명자의 역사인식이라는 정신구조와 개인 가치관의 문제가 쟁점이 돼 있어, 한국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신념과 정치가로서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지금 어느 수준과 위치에 서 있는지에 관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국민 앞에 당당하게 보여드리는 것이 순리에 맞다.


강제된 정당의 의사가 아니라 국회의원 개개인의 소신을 모으자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이리저리로 줄 세우기보다, 의원들을 자유스럽게 풀어주는 것이 국민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이다. 자기 소신대로 행동 못할 이유가 없다.지금 국회는 초선의원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


그동안 선수(選數)에 눌려 숨쉬기도 어려웠다면 자유 투표를 강력히 주장하면 된다.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에 대해 여당의원이라고 반드시 지지해야 할 이유가 없고, 야당 소속이라고 지지하고 싶은데 억지로 반대할 이유도 없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소신을 죽이고, 그리 민주적이지도 못한 당 지도부의 눈치만 보고 당론에 끌려 다녀서는 정치적 장래가 흐려진다.


청문회는 늘 그랬던 것처럼, 피의자를 몰아치는 수사관의 흉내를 되풀이 하지 말고, 총리지명자가 어떤 가치관, 역사관, 국가관의 소유자인가를 국민이 알기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총력을 기우려야 한다. 특히 총리의 역사관은 그의 개인적 삶을 지배할 뿐 아니라 국정을 지배하게 될 터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를 보면 그가 강한 보수적(일부 인사는 ‘극우’라고 부른다.) 캐릭터임이 분명하고 기독교 구원사상의 신봉자로 보인다.


그의 발언 가운데 ‘일제 식민지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한 것은, 그 취지가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남에게 신세지기 좋아하니 식민지 지배가, ‘올 것이 왔다’라고 바라 본 것인가, 조선 민족은 식민지 지배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타락 했다는 뜻 이였는가?


일본의 국민작가로, 저명한 시바료 타로는 한 때 “이 씨 왕조 500년 동안 질서는 노화하고 한국 자신의 의사와 힘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은 전무하다”는 취지로 일제 식민사관을 대변 해 오다, 훗날 “한민족은 수 천 년의 문화를 이어온 독립 국가다”라면서 그의 한민족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메이지시대 소설인 ‘언덕위의 구름’은 절대 영상 드라마로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총리지명자의 ‘하늘의 뜻’ 발언의 취지‘는, 추호도 민족이 나태하다고 해서 식민 지배를 긍정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표현 자체는 일제 식민사관의 용어를 빼 닮았다. 결국 일본 우익이 ‘우리 주장이 맞다’라고 박장대소 할 빌미는 주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조선 민족은 열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혐한론’은 지금도 증폭 중이다.


그의 본래 취지가 어디에 있었든, ‘위대한’ 하나님 앞에서, 친일파의 말을 빌려 한민족이 극히 모자란 사람들인 것처럼 자학(自虐)으로 일관한 점이 틀렸다.


한민족이 온갖 시련에도 사라지지 않고 생존을 지켜 왔다면, 그러니까 신의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한민족의 원형이, 어느 민족 보다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었고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혁신과 진화가 충분하지 않아 고난의 역사를 지나왔을 지라도)


‘신은 버텨 낼 정도 안에서만 시련을 내린다’는 말도 있으니 하느님은, 조선이 한 때 식민지로 짓밟혀도 결국 독립을 되찾는 것은 순리이고, 전쟁의 상흔도 극복할 수 있는, 한민족의 잠재력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 이다.
일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일본 동북지방 지진당시“일본이 천벌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 데, 그는 “아욕(我慾) 즉 사리사욕에 빠져 사는 일본이 반성하라”는 취지라고 했다. 한국의 ‘총리 소동’을 보고 일본 극우의 말을 연상하면서 그들이 항상 ‘우익은 국가를 위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만 생각 한다’라고 외치고 있음을 본다.


한국의 우익은 지금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가.


총리임명자의 발언 중 내가 크게 걱정하는 건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그의 글쓰기와 발언이다.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 ‘보상 문제로 떼쓸 일 아니다’ ‘과거가 부끄럽다’ 등등. 이 부분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이 더 필요하긴 하나, 역사인식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임을 감안하면 너무나 피상적이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썼다.


언론사 주필이면 소속사 기자들의 최상급지위로 기사나 논설을 쓰는 역할인데, 그때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신념과 소신대로 글을 쓰면 된다. 거칠 것이 없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독료를 지불하고 그 신문을 보는 독자가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일국의 국무총리가 되고자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론사의 주필이라는 전력 때문에 그의 평소의 주의주장과 역사관, 국가관이 비중 있게 사전 검증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터지는 것은, 한국의 정치 행태가 준비되지 않은 ‘급조 총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언론도 공공적 영역이긴 하지만, 사기업인 언론사 주필 경력자라는 의외의 인물이, 선거라는 ‘세례’를 받는 선출직 경험이 없이, 곧바로 내각의 지휘자가 되겠다는 것은 비정상은 아닐지라도 정상은 아니다.


공직 경험자가 총리로 가는 건 그동안의 공직 과정에서의 검증효과를 다소 인정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라면 대통령 자문그룹으로 참여 해 국정운영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순리다.


종군위안부, 전시 강제 성노예 문제는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침묵이 강요’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어떤 보고서의 지적대로 역사 증언을 가로 막는 ‘기억의 암살자’들이 설치던 시기다.

1990년대 중반에 와서야 나치 독일과 일제의 강제 연행에 의한 성노예 실태가, 학자와 시민그룹에 의해 폭로되고 할머니들도 증언 하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가해자들의 ‘회개’를 재촉하는 시대가 이윽고 찾아온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성노예가 국가의 명령에 따라 군과 경찰이 관여 된 만큼, 일본 정부는 이를 국가범죄로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것이다. 보상은 다음 문제다.


일본 정부는 ‘강제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없다’ ‘조선 총독부 관리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고 강변하나 이는 거짓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강제성 유무 이전에 국가 권력에 의해 시스템화 한 전시의 ‘성노예’ 제도자체를 죄악시 하고 있음을 일본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성노예’ 문제는 이미 중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 유럽과 일본 간의 총소리 없는 ‘외교전’으로 비화됐고, 미국에서는 지방정부의 위안부소녀상 설치로 인해 한일 간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재미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일본정부의 로비에 맞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


총리실은 지명자가 총리로 인준되면 위안부 문제를 잘 처리하겠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성노예문제 해결은, 한국 정부만으로는 불가능 할 뿐 아니라 일본의 변화가 전제가 돼야 하는데, 새 내각이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이미 그릇은 깨지기 시작한 건 아닌지. 또 역사인식에 관한한 한국과의 공조에 매달리고 있는 중국정부의 의구심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성노예’ 문제는 잘못된 일본 우익의 역사인식의 근본이 걸린 문제로, 한국이 결코 적당히 타협하고 지나 갈 사안이 아니다.


자칫 소홀이 다루다가 다시 역사 권력을 쥐어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일본 극우세력에게 길을 터주게 되면, 후손들에게 한없이 부끄럽고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요컨대, 교회라는 특정장소에서 간증 형식의 발언으로, 감정의 극치를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의 상흔이 여전하고 가해자의 역사인식이 바로잡히지도 않은 비극적인 시대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굳이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예로 들어 ‘하늘이 준 시련’이라는 화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는가.


두 번의 민족적 국난으로 피해를 입은 동포들의 입장으로, 위치를 바꾸면 그렇다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의 말로서는 무리 없이 끝낼 수도 있겠으나, 지금과 같이 총리지명자로 변신하는 데는 종군위안부 관련 등 그의 발언이 심각하게 언급되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동북아에서 자국중심의 ‘역사전쟁’이 진행 중인 이 시기에, 그의 역사관으로 대응하기엔, 시기적으로는 좋지 않다는 사실만은 말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최종적인 것은 청문회 이후 국민 생각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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