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모했던 조선 여인 ‘오타 줄리아’, 일본에는 그녀를 성녀로 기리는 섬이 있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유산을 찾아서-조선 여인 '오타 줄리아'
이승민 특파원 happydoors1@gmail.com | 2018-06-11 07: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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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시마에 세워진 오타 줄리아의 기념비.(고즈시마=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생동안 그리워했던 조선의 여인 ‘오타 줄리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쿠가와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 근처에서 전란 중에 가족을 잃고 갈 곳 없이 떠도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양반집 딸로 태어나 불과 3살에 전쟁고아가 됐다. 이 소녀를 발견한 일본 병사는 당시 장군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 데려갔다.


전쟁이 끝나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소녀를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수양딸로 삼았다. 장군의 부인 역시 조선의 소녀를 지극한 사랑으로 돌봤다.

 

천주교인이었던 장군의 가정환경 속에서 소녀는 자연스럽게 천주교인이 됐다. 가문의 전통인 약초제조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름은 ‘오타’라고 지었고 ‘줄리아’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미모와 총명함을 함께 지닌 오타 줄리아는 귀족의 딸이 돼 주변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갈곳 없는 전쟁고아의 신세가 운명처럼 양부모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날 폭풍같은 불행이 다시 찾아왔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다. 일본열도가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진 일본 전쟁 역사상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서군으로 참전해 싸웠지만 결말은 동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최고의 실권자가 됐다. 패배한 고니시 가족은 도쿠가와에게 처형당했지만 줄리아의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에 감동한 도쿠가와는 그녀를 성으로 불러들여 시녀로 삼았다.

 

줄리아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기도했다. 시녀들과 가신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파했다. 도쿠가와는 착하고 아름다운 줄리아에게 한없이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마음을 집중했다. 도쿠가와는 줄리아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기독교 금지령을 내리고 탈교를 요청했지만 줄리아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도쿠가와는 줄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일본 최고의 실권자로부터 부인이 돼달라는 청혼요청을 받지만 줄리아는 거부했다. 자신의 양부모를 죽인자와 혼인을 할 수는 없었다.


도쿠가와는 1612년 기독교 금교령법에 따라 줄리아를 섬으로 보냈다. 줄리아는 성에서 추방이 돼 섬에서 섬으로 유배생활을 전전했다. 유배지로 머물렀던 곳마다 전도생활에 힘썼고 섬주민들로부터 늘 감동감화의 주인공이 됐다.


도쿠가와는 줄리아를 잊을 수가 없었다. 줄리아가 유배 중에도 부인이 돼달라는 요청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줄리아는 일생동안 신앙을 지키며 섬사람들을 위해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의 삶을 살았다.

 

▲고즈시마에 재일 한국인 가톨릭 신자가 세운 십자가.

 

줄리아는 마지막 유배지 고즈시마(神津島)에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과 신앙고백을 편지로 기록하여 당시 교토의 순찰 신부에게 보냈다. 이 편지의 기록 자료가 로마의 예수회기록소에서 발견됐다. 

 
일본 도쿄 가톨릭 아자부 성당은 교회지(2013년 7월호)에 로마의 예수회기록소의 자료를 근거로 해 오타 줄리아의 순교적인 삶에 대해 자세하게 밝혔다.


고즈시마의 유배인 묘지에는 줄리아의 무덤이 있다. 1958년 재일 한국인 가톨릭 신자가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줄리아표창회를 조직했다. 그 후 1970년부터 해마다 5월 셋 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녀의 유덕을 기리는 ‘줄리아 축제’를 시작했다.

 

▲ 지난달 19일, 제49회 줄리아 축제에서 한국무용을 춤추는 동경한국학교 학생무용단.

 

동경학국학교 학생무용단은 이 줄리아 축제에 1회부터 참가해 칠고무, 사물놀이, 부채춤, 소고춤, 화관무, 창작무용 등 한국의 전통무용과 신무용을 춤춰 줄리아의 영혼을 위로해왔다. 


10년째 줄리아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동경한국학교 무용부 박경란 교사는 “이젠 너무나도 익숙하여 친정집을 찾는 기분이고 줄리아가 달려나와 반겨주는 느낌이다. 올해도 다시 찾아온 우리 무용단에게 환한 미소로 반가워하며 우리들의 발걸음과 일정에 함께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올해로 49회를 맞이한 줄리아 축제에 많은 마을주민, 순례객들이 동경한국학교 학생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춤췄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울려 함께 춤을 추었던 이번 축제는 400년 전 줄리아가 간절히 꿈꾸던 모습이었을 것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경한국학교 무용부 박경란 교사.

 

고즈시마 마을 향토자료관에는 김득영 동경한국학교 교장의 자작시가 전시돼 있다. 


오타 줄리아를 기리며
(2016.5.21. 고즈시마 섬에서)

 
바람타고 세월이 가니
400년이 어제 같네.

사랑과 평화의 오타 줄리아
이미 고즈시마의 신이 되어
멀리서 온 고향사람을 반기네.


43년간 쭉 바람타고
아이들은 줄리아 영혼이 되네.

 

줄리아의 긴 이야기 노래되고 춤이 되어
섬과 대륙도 함께 춤추네.

도쿄의 외딴섬 고즈시마
오월 셋째 토요일 줄리아 축제
한일 양국의 영혼이 외치네.

 
전쟁없는 평화와 사랑
바다신도 함께 노래하네.


줄리아 축제는 1970년 고즈시마에서 동경한국학교와 함께 제1회를 시작했다. 순교적 일생을 보낸 조선인 여성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로 동경한국학교 무용단의 한국전통무용이 중심이 된다.

 

1958년 12월 25일 일본인 교우들과 교포교우들이 오타 줄리아를 추모하는 행사와 함께 기념비를 이 섬에 세웠고 2015년 제46회 줄리아 축제에는 동경한국학교(교장 김득영) 중고등학생들과 고즈시마고등학교가 교류회를 가졌다.

 

▲고즈시마에 있는 줄리아 묘지.


한편 조선의 성녀 줄리아섬으로 알려진 고즈시마는 면적 18.58km2에 인구 1800여명이 살고 있다. 이즈제도에 있는 화산섬으로 도쿄도에 속한다. 서쪽해변에 주된 촌락이 있고 완만한 모래밭 해안이 많다.


덴조산을 중심으로 북부와 지치부산이 있는 남부로 나뉜다. 이 섬의 심볼적 존재인 덴조산은 9세기에 분화로 형성된 용암 돔산이다. 정상부에는 3개의 호수가 있고 남서부에는 '안 사막', '뒤 사막'으로 불리는 모래지역이 있다.


최고 지점은 571.8m의 삼각점이다. 이외에도 표고 529m, 524m, 503m의 산봉우리가 있다. 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산골짜기가 깊이 뻗어 흑섬과 백섬으로 나뉘어 지고 각각 등산 길이 있다. 도쿄도에 의해 신도쿄백경에 선정된 정상에는 동쪽으로 2개의 전망대가 있다.


이 섬은 이즈제도의 섬들을 만들기 위해 신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소로 사용됐다는 전설이 있어 '가시와지마(神集島)'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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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견]

송정심님 2018-06-14 07:32:07
친근한소식, 즐겁게 읽었습니다. 줄리아성녀는 저도 좋아하는 성녀라 더욱... 우리나라의 어느 맹인가수가 줄리아성녀를 소재로 노래해서 기뻤던기억도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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