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용수의 팍스코리아나]광복이 분단으로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15-08-14 09: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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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인과응보의 법칙이 작용한다면 일본이 분단돼야 하고 우리나라는 독립국가가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나라는 광복을 맞이했음에도 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았는가.


광복을 맞이한 그날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광복이 너무 빨리 왔다고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점령군으로 상륙해 한반도를 장악함으로써 이 나라가 미국과 소련의 군정체제 하에 놓이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해 임시정부 산하의 우리 독립군이 일제로부터 한반도를 되찾아 광복을 맞이해야 외세인 미국과 소련군의 유입을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결국 상해 임시정부는 해체되고 김구 주석은 개인 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국가는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있어야 성립된다. 그러나 거기에 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국제적인 승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프랑스는 드골 망명정부가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망명정부로 승인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식 군대가 아닌 레지스탕스(Resistance)만으로도 승전국 지위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한국은 상해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정부도 이를 승인하지 않아 결국 우리 광복군은 참전국의 군대가 되지 못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승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고 결국 한반도에 소련군과 미군이 진주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영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미국 정부의 외교문서에는 당시 상해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의 혼선, 즉 좌.우익의 대결 문제도 있고, 소련의 남진을 부채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미국의 외교원칙에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봄이 옳다.


미국은 자국이 지지하는 나라의 지도자는 반드시 자기 나라에서 학문을 해야 하고 기독교인이어야 하며 맹목적 민족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그에 부합되는 사람을 지도자로 인정했다.


그래서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보다는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 장로이며 객관적 민족주의 성향을 갖췄다고 판단한 이승만 박사를 한국의 지도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광복의 감격도 잠시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삼팔선을 경계로 국토와 민족이 나뉘고 말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영‧소 3국 외상이 모여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정한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삼팔선을 중심으로 분할 점령한 한반도는 소련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정권이 북한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 정권이 남한을 통치하게 됐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3년 동안 치른 후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해 한반도의 허리를 동과 서로 가로지르는 155마일의 휴전선이 그어짐으로써 결국 남한과 북한 두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 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분단국들은 모두 통일되었으나 유독 우리 한민족만은 지금까지도 분단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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