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문윤국 ⑮] 전쟁이 쓸고간 황무지에서, 정선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5-27 06:50:41

학교도 책도 사라진 척박한 땅,
한학(漢學)과 한시로 지켜낸 민족의 정기
정선의 거친 흙바닥에 심은 미래,
시구(詩句)마다 서린 고결한 실향의 회한
전쟁이 쓸고 간 황무지에서 문윤국이 한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당시 상황을 AI로 복원.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53년 7월, 포성은 마침내 멈추었으나 한반도의 산하는 거대한 무덤이자 황무지였다. 전쟁의 사선을 넘어 다시 강원도 정선(旌善)의 깊은 산골로 돌아온 문윤국(文潤國) 지사의 눈앞에는 참혹한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국군의 견벽청야 작전으로 불타버린 화전민 가옥들은 검은 재만 남았고, 전란 속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은 황폐해진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일흔을 넘긴 문 지사는 무너진 흙벽에 기대어 한탄하는 대신, 거친 흙바람을 맞받아치며 다시 붓을 들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총칼이 남긴 정선의 폐허 위에서 민족의 정신을 깨울 ‘교육과 문학의 등불’이었다.

그는 정선의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치며 민족의 기품을 지켰고, 나라 잃은 설움과 실향의 한을 격조 높은 한시(漢詩)로 달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책도 연필도 없는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사서삼경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정선의 아이들에게는 당장 비바람을 피할 교실도, 글을 익힐 책 한 권도 없었다. 이념의 광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무지와 황폐함을 구원할 유일한 길은 다시 민족의 뿌리를 깨우는 것뿐이었다. 문 지사는 정선의 무너진 움막 터에 가마니를 깔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작은 서당을 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종이와 연필이 없으면 숲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로 정선의 거친 흙바닥을 공책 삼아 천자문과 사서삼경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배워야 한다. 글을 알아야 무너진 조국을 다시 세울 수 있고, 동포끼리 총칼을 겨누는 이 야만스러운 무지로부터 화평을 지킬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정주 오산학교에서 이승훈, 조만식 선생과 함께 민족의 지도자들을 길러내던 영적 스승의 위엄이, 이제 정선의 척박한 산골짝에서 이름 없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문 지사의 카랑카랑한 훈독 소리를 따라 부르며 전쟁의 공포를 씻어내고 고결한 민족의 기개(氣槪)를 마음에 새겼다.

 한시(漢詩)로 달래어 읊은 실향의 한, 기록으로 남은 유산

문 지사는 정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평생을 함께한 망명 생활의 고독, 북녘 고향 정주(定州)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눈물 나는 그리움을 격조 높은 한시(漢詩)로 달래었다. 시를 짓고 읊는 행위는 그에게 단순한 문학적 취미가 아니라, 거칠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 신앙의 정절과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간절한 기도였다.

그가 정선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지은 한시들은 은유와 상징이 뛰어났고, 난세를 살아가는 구도자의 숭고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순수한 삶과 전쟁이 남긴 상흔, 그리고 실향의 절절한 슬픔을 도도한 선비의 기품으로 승화시킨 그의 한시 작품들은 순결한 마음으로 정선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티없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가 되었다.

그가 정선 시절에 남긴 수많은 한시와 서예 작품들은 훗날까지 고스란히 기록과 유산으로 남아,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 무명(無名)을 택한 은둔 지사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찬란했는지를 후대에 웅변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무명의 거름이 됨으로써 가장 낮은 곳에서 조국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아 올렸다. 화려한 양복 대신 땀과 흙으로 얼룩진 무명옷을 입고, 흙바닥 서당에서 나뭇가지로 글을 가르치며 시를 읊던 문 지사의 뒷모습은 역사상 그 어떤 정치가나 장군의 모습보다 장엄하고 고결했다.

 “천민도 양반도 없다”, 산골에 울려 퍼진 사랑의 가르침

정선의 화전민들은 대대로 천대받으며 살아온 이들이 많았다. 문윤국은 아이들에게 천자문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경의 사랑 사상과 유학의 민본주의와 함께 '인간의 존엄'을 설파했다.

“너희는 이 나라의 귀한 주인들이다. 하늘 아래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느니라.”

신분제와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살던 아이들에게 노인의 말은 복음과도 같았다. 훗날 이 아이들 중 장성하여 지역의 지도자가 되고, 정선의 문화를 이끄는 동량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문윤국은 정주의 오산 정신을 정선의 흙 속에 고스란히 이식하고 있었다.

 호미를 든 스승, 노동으로 보여준 지행합일(知行合一)

문윤국은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밭을 일구었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서 글을 가르쳤다. 그는 결코 군림하는 스승이 아니었다. 가장 험한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자신의 몫으로 나온 배급을 배고픈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어버이 같은 스승'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과거에 어떤 큰일을 했는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저 인품 고결한 '문 영감님'으로만 알았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발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교육의 순수성을 지켰다. 명예를 탐하지 않는 그의 삶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교과서였다.

 낡은 성경책과 옥수수 가루

그의 거처에는 항상 낡은 성경책 한 권과 옥수수 가루 한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그는 기도로 하루를 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하루를 마감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거두어 자신의 방에서 재우며, 그는 정주에 남겨두고 온 손자들과 조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주여, 정주의 아이들이나 정선의 아이들이나 다 같은 당신의 자녀들이니이다. 이들이 자라서 다시는 총칼을 들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게 하소서.’

그의 기도는 정선의 깊은 계곡을 타고 흘러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정선의 황무지에서 문윤국이 일궈낸 교육의 기적, 그것은 화려한 훈장보다 빛나는 '고결한 침묵'의 열매였다.

 흙바닥에 새긴 씨앗, 다음 세대를 향한 약속

기약 없는 분단의 장벽 앞에 북녘 정주에 두고 온 친자식들에게 다하지 못한 아비로서의 정(情)을, 문 지사는 정선의 아이들에게 한학과 한시를 전수하는 눈물 어린 헌신으로 대신했다. 자신이 정선의 황무지에 뿌린 이 작은 정신의 씨앗들이 언젠가 조국의 산하를 푸르게 덮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선의 깊은 골짜기,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긁으며 글을 익히던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문 지사의 격조 높은 시창(詩唱)은 휴전선 너머까지 들릴 듯 도도하게 울려 퍼졌다.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묵묵히 닦아 나간 문윤국 지사의 이 거룩한 정선 시절의 유산은, 이제 전란의 포화를 걸어 나와 남한 땅에서 새로운 하늘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그의 종손자 문선명과의 만남을 향해 가는 마지막 정신적 징검다리가 되고 있었다.

– 계속 –

【企画連載:独立運動家 文潤国 ⑮】戦争が荒らし去った荒野で、旌善の子らに漢学を教える

学校も教科書も消え去った不毛の地、漢学と漢詩で守り抜いた民族の正気 旌善の荒れた土床に植えた未来、詩句ごとに宿る高潔なる失郷の悔恨

【LOCAL世界=李勝敏記者】 1953年7月、砲声はついに止んだが、韓半島の山河は巨大な墓標であり、荒野そのものであった。戦争の死線を越え、再び江原道 旌善の深い山奥へと戻った文潤国志士の眼前に広がっていたのは、惨憺たる現実であった。

国軍の「堅壁清野」作戦によって焼き払われた火田民の家屋は黒い灰だけを残し、戦乱の中で学ぶ機会を失った子供たちは、荒廃した街を彷徨っていた。七十を超えた文志士は、崩れ落ちた土壁に寄りかかって嘆く代わりに、荒ぶる土風に立ち向かい、再び筆を手にした。彼が選んだ道は、銃剣が残した旌善の廃墟の上で民族の精神を呼び覚ます「教育と文学の灯火」であった。

彼は旌善の子供たちや住民に漢学を教えることで民族の気品を守り、国を失った気宇と失郷の恨を格調高き漢詩で慰めながら、数多くの作品を残した。

教科書も鉛筆もない荒野に響き渡る四書三経

戦争はすべてのものを奪い去った。旌善の子供たちには、差し当たり風雨を凌ぐ教室も、文字を学ぶ教科書一冊すらもなかった。理念の狂気が吹き荒れた跡に残された無知と荒廃から救い出す唯一の道は、再び民族の根幹を呼び覚ますことだけであった。文志士は旌善の崩れた小屋の跡に藁むしろを敷き、子供たちを集めて小さな書堂を開いた。

彼は子供たちに漢学を教え始めた。紙と鉛筆がなければ、森から折ってきた木の枝を筆代わりにし、旌善の荒れた土床をノートに見立てて、千字文や四書三経の文章を書き連ねていった。

「学ばねばならぬ。文字を知ってこそ、崩れ落ちた祖国を再び興すことができ、同胞同士で銃剣を向け合うこの野蛮な無知から、和平を守り抜くことができるのだ」

日帝強占期、定州の五山学校で李昇薫や曹晩植先生と共に民族の指導者たちを育て上げた霊的師父の威厳が、今、旌善の険しき山谷で名もなき子供たちに向かって再び蘇っていた。子供たちは文志士の甲高い訓読の声に和して歌うように唱え、戦争の恐怖を洗い流し、高潔なる民族の気概を心に刻み込んだ。

漢詩に託して詠んだ失郷の恨、記録として遺された遺産

文志士は旌善で子供たちを教える傍ら、生涯にわたり付きまとった亡命生活の孤独、北の故郷・定州に残してきた家族への涙ながらの切なる慕情を、格調高き漢詩によって慰めた。詩を創り吟じる行為は、彼にとって単なる文学的趣味ではなく、荒々しく過酷な現実の中で、信仰の貞節と人間の尊厳を守り抜くための切実なる祈りであった。

彼が旌善の夜空を見上げながら詠んだ漢詩は隠喩と象徴に優れ、乱世を生きる求道者の崇高な哲学が込められていた。自然を友として生きる清廉な暮らしと、戦争が残した爪痕、そして失郷の切々たる哀愁を、毅然とした文士の気品へと昇華させた彼の漢詩作品は、彼が純潔なる心で旌善の地に深く根を下ろし、無垢に生きたことを示す生き生きとした資料となった。

彼が旌善時代に遺した数多くの漢詩や書芸作品は、後世にいたるまで厳然たる記録と遺産として残り、権力の誘惑を振り切って自ら「無名」を選んだ隠遁志士の内面が、いかに深く、そして燦然たるものであったかを後世に雄弁に物語っている。

彼は自ら無名の肥やしとなることで、最も低い場所から祖国の崩れた基礎を再び築き上げた。華やかなスーツの代わりに汗と泥にまみれた木綿の衣服をまとい、土床の書堂で木の枝を手に文字を教え、詩を吟じていた文志士の後ろ姿は、歴史上のいかなる政治家や将軍の姿よりも荘厳であり、高潔であった。

「賤民も両班もない」、山谷に響き渡る愛の教え


旌善の火田民たちは、代々にわたり見下されながら生きてきた者が多かった。文潤国は子供たちに千字文だけを教えたのではなかった。彼は聖書の「愛の思想」と、儒学の「民本主義」と共に、「人間の尊厳」を説き聞かせた。

「お前たちは、この国の貴き主人たちである。天の下、貴からぬ生命など存在せぬのだ」

身分制と戦争の恐怖に押し潰されて生きていた子供たちにとって、老人の言葉は福音そのものであった。後年、この子供たちの多くが成人して地域の指導者となり、旌善の文化を牽引する棟梁となったのは、決して偶然ではなかった。文潤国は定州の「五山精神」を、旌善의土の中へとそっくり移植していたのである。

鍬を手にした師、労働で示した知行合一

文潤国は、昼は子供たちと共に畑を耕し、夜はランプの灯の下で文字を教えた。彼は決して君臨する師ではなかった。最も過酷な仕事に率先して身を投じ、自らの分け前として与えられた配給を、飢えた子供の口へと入れてやる「親のごとき師」であった。

人々は、彼が過去にどれほど大きな大業を成し遂げた人物であるかを、相変わらず知る由もなかった。ただただ、人品高潔な「文 おじいさん」としてのみ知っていた。彼は自身の過去を明かさないことで、むしろ教育の純粋性を守り抜いた。名誉を貪らない彼の生き様そのものが、子供たちにとっては最も偉大な教科書であった。

古びた聖書とトウモロコシの粉

彼の居処には、常に一冊の古びた聖書と、一袋のトウモロコシの粉が置かれていた。彼は祈りによって一日を始め、子供たちの笑い声と共に一日を終えた。戦争で親を失った孤児たちを預かって自らの部屋で寝かせながら、彼は定州に残してきた孫や甥たちの顔を思い浮かべていた。

「主よ、定州の子らも旌善の子らも、みな等しくあなたの愛しき子らにございます。この子らが健やかに育ち、二度と銃剣を手にすることのない、平和なる国を築かせ給え」

彼の祈りは旌善の深い渓谷を伝って流れ、戦争の傷跡を優しく愛撫した。旌善の荒野で文潤国が成し遂げた教育の奇跡。それは、華やかな勲章よりも光り輝く「高潔なる沈黙」の結晶であった。

土床に刻んだ種、次の世代へ繋ぐ約束

行く先の見えない分断の障壁を前に、北の定州に残してきた我が子らに尽くせなかった父親としての情愛を、文志士は旌善の子供たちに漢학과漢詩を伝授するという、涙ながらの献身によって代えた。自分が旌善の荒野に撒いたこの小さな精神の種が、いつの日か祖国の山河を青々と覆い尽くすだろうという、確固たる信仰があったからである。

旌善の深い谷間、木の枝で土床を引っ掻きながら文字を学んでいた子供たちの活気ある声と、文志士の格調高き詩唱は、休戦線を越えて届くほどに堂々と響き渡った。

戦争の惨禍を乗り越え、黙々と切り拓いていった文潤国志士のこの尊き旌善時代の遺産は、今や戦乱の砲火を潜り抜け、南の地で新たなる天の摂理を広げ始めた彼の従孫である文鮮明との邂逅へと向かう、最後の精神的架け橋となっていたのである。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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