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창의 붓끝에서 찾은 근대 조선 서예의 생명력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9-30 10:42:46

김귀분 저 『식민지기 조선의 서예―오세창에 의한 전개』, 일본 미스즈쇼보 출간
창작·수집·연구로 이어진 전통…‘쇠퇴’라는 시각을 넘어 서예사 재조명
식민지기 조선의 서예 책표지. 사진 = 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 이승민 도쿄특파원] 일제강점기 조선의 서예는 어떻게 전통을 이어가며 새로운 길을 열었을까. 서예가이자 수집가, 감식가, 연구자로 활동한 위창 오세창(吳世昌·1864~1953)을 중심으로 근대 조선 서예의 계승과 변화를 살핀 일본어 연구서가 출간됐다.

김귀분(金貴粉)이 쓴 『식민지기 조선의 서예―오세창에 의한 전개』(원제 『植民地期朝鮮の書―呉世昌による展開』)다. 출판사는 일본의 미스즈쇼보(みすず書房)다.

이 책은 식민지기 서예를 단순히 쇠퇴한 전통예술로 바라보는 시각에 질문을 던진다. 근대적 미술 개념과 전람회 제도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서예가 어떤 위치에 놓였으며, 이를 이끌던 사람들은 어떻게 창작과 연구를 이어갔는지 오세창의 활동을 통해 추적한다.

오세창은 개화파 관료로 활동하고 일본 망명을 경험했으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작품 제작과 서화 수집, 조사·연구, 감식에 힘쓰며 조선 서화의 전통을 정리하고 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오세창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배경으로 중인 출신 역관 가문의 학문적 전통에 주목한다. 아버지 오경석(吳慶錫)이 쌓아온 금석학 연구와 풍부한 장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형성한 지식과 인적 교류가 오세창의 서예관과 연구 활동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주요하게 다루는 성과는 오세창이 1928년 간행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이다. 역대 서화가 1천여 명의 기록을 집대성한 이 책은 체계적인 서화 인명사전으로, 이후 한국 서화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오세창을 작품을 남긴 예술가이자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문화적 기억을 보존한 연구자로 조명한다.

책은 여섯 장과 종장으로 구성됐다. 오세창의 식민지기 이전 활동과 서예관 형성, 서예 활동의 전문화, 중국 서법의 수용과 작품화를 차례로 살핀다. 이어 『근역서화징』 편찬, 조선미술전람회 서예 부문의 폐지, 구도 분사이(工藤文哉)와 히다이 덴라이(比田井天來)를 중심으로 한 조선 서예 연구의 일본 내 전개를 다룬다.

이러한 구성은 한 인물의 생애를 넘어 서예를 둘러싼 제도와 지식, 교류의 변화를 함께 읽도록 한다. 전람회 제도의 도입과 인쇄기술의 발전, 서화 매매 체계의 형성 속에서 전통 서예가 어떻게 자리를 지키고 변화했는지가 핵심 관심사다.

책은 당시 서예가 반근대적이고 보수적인 전통의 상징으로 취급되며 관설 전람회에서 배제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오세창의 창작과 수집, 연구 활동을 통해 서예의 역사를 일방적인 쇠퇴로만 설명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전통을 이어가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전통의 창출이자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함께 제공된 소개문은 일본에서 한반도 서예사를 일본어로 체계적으로 소개한 연구서가 아직 많지 않다는 문제의식도 전한다. 서예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예술이나 기법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일 문화교류와 식민지기 문화의 양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식민지기 조선의 서예』는 오세창의 활동을 동아시아의 지식과 인적 교류 속에 놓고 살피며, 격변의 시대에도 이어진 서예의 생명력을 탐구한다. 한국 서예사와 근대 문화사, 한·중·일 예술 교류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읽을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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