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병오년에 보는 오늘(Ⅵ)
마나미 기자
| 2026-02-06 12:21:00
본 칼럼 1~5회에 걸쳐 서술한 병자호란의 치욕과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필자가 상, 하 두 권으로 저술한 장편소설 <요동묵시록>에 나오는 이야기 중 극히 일부다.
<요동묵시록> 상권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에서는 병자호란을 몸으로 겪으며, 백성들은 죽어가는데도 남한산성에 숨어 명분만 찾아대며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정 대신들과 결국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겪는 인조 역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맞서 홀로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적진으로 나가겠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소현세자의 애타는 모습을 먼저 그렸다. 그리고 항복으로 전쟁이 막을 내린 후에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명나라와의 전장에서 청나라 편이 되어 보여주는 용맹함과 아담 샬 신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얻게 되는 서양 문물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자신이 왕이 되면 서양 문물을 꼭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하는 것은 물론 반드시 북벌을 이루겠다는 소현세자의 각오 등을 묘사하였다.
다만 이야기의 서두 도입부를, 세손 시절에 소현세자가 남긴 청나라에서의 기록을 읽은 정조가 서손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중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실학자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사도세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요동묵시록> 하권 ‘효종이 부른 노래’는 소현세자가 이루고자 했던 북벌을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효종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대부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과, 왕이 된 효종이 소현세자가 부르짖던 신분 차별 없는 백성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업적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을 모두 이루지 못하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시는 죽음 뒤에 남는 안타까움과 의문의 여운을 잔뜩 남기는 소설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사실로 묘사하기 위해서 <왕조실록> 등을 인용하며 노력한 작품이다.
필자가 <요동묵시록> 이야기를 꺼낸 것은 소설을 광고하거나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소설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런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없을지 무척 궁금하다. 세자의 신분으로 조정을 바라보는 소현세자의 한심한 심정과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뒤주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바라보던 사도세자의 눈에 비친 조정의 모습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대한민국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을 마주하여 쳐다보면서 느끼는 심정과 비교한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의문이다.
<요동묵시록>에 등장하는 비운의 세자 두 분과 나라와 백성 사랑이 탁월하셨던 효종과 정조 두 분 임금이 주는 교훈에 비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의 정치권은 남한산성에 갇혀 조정을 바라보며 소현세자가 느끼는 감정 이상으로 한심하고, 뒤주에 갇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대신들을 바라보는 사도세자의 답답한 마음보다 훨씬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건만, 그것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에 그때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의 지략과 용맹이 아까워서만은 아니다. 그가 청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명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한 것뿐만이 아니라, 명나라에 파견된 예수회 아담 샬 신부와 교류를 아주 활발하게 했고, 그로 인해서 서양 문물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현세자가 볼모를 마치고 귀국할 때 천문학이나 수학에 관한 서적과 천주교에 관한 서적, 지구의와 망원경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기록을 보면 분명 그가 즉위하면 서양 문명 앞에 나라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현세자가 그렇게 죽지 않고 서양 문물에 나라의 문을 열었더라면, 한일 병탄과 일제 36년 치욕도 없었을 것이니, 제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미‧영·소·중 연합 4개국이 동북아 영토를 유린하며, 우리 한민족의 영토인 만주와 대마도를 떼어버린 채 광복을 선물로 주는 것처럼 생색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38선을 가르고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나누어 차지하는 바람에 일어난 민족 분단과 6·25남침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만약을 전제로 넋두리처럼 해 본 말이다. 아울러 1645년 그때 소현세자를 모함하던 간신배들은 오로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정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백성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한 것인지 묻고 싶은 한편, 그로부터 무려 380년이 지나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변했지만 별로 발전하거나 개선된 것 없어 보이는 2026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정치인들은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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