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 온천의 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10 17:50:17
하코네 온천의 밤
이승민
후지산은 고요의 시가 되어 조용히 내려앉고
바람은 구름 위를 걷는다
아시노 호수는 하늘을 담은 잔이 되고
그 찻잔 위에 뜬 초승달은 작은 조각배
붉은 도리이는 호수에 발을 담그고,
수백 년을 버틴 삼나무 길 사이로
에도를 걷던 나그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자욱한 안개가 삼나무 숲을 감싸 안을 때
시간은 이끼 낀 돌담 사이에 멈춰 서고,
노천탕 위로 떨어지는 별빛은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
흐르는 물소리에 시름을 흘려보내고
대나무 숲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열면
풍경은 내 마음의 갈피 속에 조용히 잠이 든다
희뿌연 유황 연기는 산허리를 휘감고
길 잃은 바람 하나 숲을 지나
료칸의 등불 너머 온천수에 고단한 몸을 담그면,
유카타 소매 끝에 머문 온기의 여운처럼
하코네는 한 편의 묵화가 되어
나의 계절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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