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간도관리사와 간도협약-간도(間島) 소야곡(小夜曲)(Ⅳ)
마나미 기자
| 2026-09-11 18:11:59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가 확실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대한제국이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를 파견한 사실이다, 일제를 비롯한 외세가 대한제국을 침략하면서 힘든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간도로 이주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정부는 1902년 이범윤을 간도시찰원(間島視察員)으로 파견하였다가 1903년 10월에는 간도관리사(管理使)로 임명하였다.
이범윤은 토문강(土門江)과 두만강 사이에 거주하는 조선 농민들을 순찰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호구조사를 함으로써 13,000여 명을 대한제국 호적에 편적(編籍)시켰다. 그러는 한편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 병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청나라와의 마찰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허락하지 않자, 장정을 모집하여 사포대(私砲隊)를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시키고 모아산(帽兒山)ㆍ마안산(馬鞍山)과 두도구(頭道溝) 등에 병영을 설치했다. 10호를 1통(統), 10통을 1촌(村)으로 하는 행정체제를 만들어 도민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군대 유지비를 충당했다. 또한 청나라에 납세할 의무가 없음을 선언하였으니 엄연히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선포한 것이다.
일정한 영토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군대를 양성한다는 것은 이미 그 영토의 주권자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던 것을 보면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것은 청나라 역시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다.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간도협약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1909년 9월 4일에 청나라와 맺은 조약으로 이날을 기억하여 간도를 수복하자는 의미로 제정한 날이 간도의 날이다. 간도협약은, 을사늑약 자체가 고종 황제의 윤허도 없이 조작된 조약으로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영토주권자인 대한제국이 배제되고 일제와 청나라가 맺은 조약이므로 원칙적으로는 무효다. 하지만 간도협약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간도가 조선의 영토로서 대한제국으로 그 영토권이 이어진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간도협약은 7개 항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면, ①두만강을 양국의 국경으로 하고, 상류는 정계비를 지점으로 하여 석을수(石乙水)로 국경을 삼는다. ②용정촌ㆍ국자가ㆍ두도구ㆍ면초구 등 네 곳에 영사관이나 영사관 분관을 설치한다. ③청나라는 간도 지방에 한민족의 거주를 그대로 이어받아 인정한다. ④간도 지방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청나라의 법권 관할하에 두며, 납세와 행정상 처분도 청국인과 같이 취급한다. ⑤간도 거주 한국인의 재산은 청국인과 같이 보호되며, 선정된 장소를 통해 두만강을 출입할 수 있다. ⑥일본은 연길에서 회령간의 길회선(吉會線) 철도의 부설권을 가진다. ⑦가급적 속히 통감부 간도 파출소와 관계 관원을 철수하고 영사관을 설치한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①・⑥항과 ⑦항이다. 먼저 ①・⑥항을 엮어볼 때, 만일 협약 체결 당시 간도가 청나라 영토였다면 청나라로서는 길회선 철도 부설권을 내주면서까지 굳이 국경을 두만강이라고 명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간도가 대한제국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게 존재했기에 국경을 두만강으로 설정하기 위한 조약이다. 또한 ⑦항의 통감부 파출소가 철수하는 대신에 일본이 영사관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일제의 대한제국 통감부 파출소가 설치될 수 있는 곳은 바로 대한제국의 영토로 통감부 파출소를 철수하고 영사관을 세운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는 영토권을 포기하고 국외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므로 그 순간까지 간도는 대한제국 영토였다는 것이다.
간도에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어 있던 이유는 대한제국 백성들에 대한 법질서의 문제로 특히 독립군들을 감시하고 색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간도협약 체결 당시 간도 주민의 80%가 대한제국의 백성들이었으니, 일제로서는 대한제국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간도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지금처럼 민족 간의 왕래가 자유롭고 국제 교류가 빈번하던 시절도 아닌데, 청나라 영토인 간도 주민의 80%를 이국 백성인 대한제국 백성이 차지하고 토지를 소유하며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은 모순된 상황으로,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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