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중국이 당장 반환해야 하는 영토, 간도-간도(間島) 소야곡(小夜曲)(Ⅶ)

마나미 기자

| 2026-10-02 18:34:07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

제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벌어진 연합국의 나눠 먹기식 동북아 영토 유린의 결과물로, 만주는 본래의 영토권자인 우리 한민족을 떠나서 한족 중국에 할당되는 바람에, 중국은 청나라 역사가 중국 역사라는 날조된 이론을 내세워가며 만주를 영구 지배하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청나라가 한족 중국 역사라고 왜곡해도, 간도는 청나라 역시 우리 한민족의 영토임을 인정했기에 간도협약까지 맺어가며 청나라 영토로 만들기 위해서 광분했던 곳이다. 청나라 발상지라고 신성시하는 심요지역은 물론 지금 한족 중국의 행정구역으로는 흑룡강성에 위치한 영고탑 역시 만주족의 민족 발상지라고 신성시했던 곳이니, 당연히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정해서 간도를 손에 넣음으로써 만주 전체를 손에 넣고 싶었던 것으로, 그 결과물이 간도협약이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보면 간도협약은 청나라 역시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청나라 역사를 한족 중국 역사라고 날조하고 왜곡하는 진위는 나중에 규명하여 간도를 제외한 나머지 만주 땅에 대한 영토권은 추후 논하더라도, 간도는 당장 우리 한민족에게 반환해야 할 영토라는 것을 한족 중국은 인정해야 하고, 우리 한민족은 그 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주를 영토분쟁지역으로 선포하고 그 중 간도에 대해서는 즉각 반환을 촉구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청나라의 만주족은 지금 만주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후속국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한민족이 거저 주워 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만주족의 청나라 후속국이 없으면 그 대체국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논해보자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저술한 것도 아니고, 1,777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지시에 한림원 주관으로 대학사 이계를 비롯한 여러 학자가 참여하여 편찬한 '흠정 만주원류고'에 보면, 만주족의 발상은 선녀가 목욕하는 동안 까치가 물어다 준 과일을 먹고 임신하여 아이를 낳자, 그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녀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한다는 애신각라를 아기의 성으로 명명할 정도로 신라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사'에서는 금(金)의 시조 함보는 고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고려라 한 것은 신라가 멸망하며 고려로 이어진 데서 기인한 듯하다. 어쨌든 만주족 스스로 우리 한민족과 같은 민족임을 과시하고 있다. 결국 만주의 영토권은 수십 세기 동안 우리 한민족이 생활하며 소유하다가, 근세에 들어서 같은 조상의 혈통인 만주족이 3세기 정도 통치한 것이다.

 따라서 만주 영토권의 문제는 우리 한민족과 형제 민족인 청나라 만주족 간의 문제이지 한족 중국이 끼어들거나 영토권을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다. 더더욱 간도는 만주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청나라마저 대한제국의 영토로 인정함으로써 우리 한민족이 그 소유주라는 것이 확실한 땅이다. 한족 중국으로부터의 반환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한족 중국은 필자가 제시한 모든 사항에 대비해서 간도는 물론 만주라는 단어조차 없애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만주(滿洲, Manchuria)라고 선명하게 표시되던 지명은, 지금은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등의 동북3성과 내몽골자치구로 표기되고 있다. 한족 중국은 만주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것을 알기에 본래의 이름을 없애고 한족 중국이 명명한 새로운 지명으로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다. 이런 한족 중국의 왜곡에 대응하여, 무엇보다 먼저 만주를 영토분쟁지역으로 선포하고 그에 대응하는 길이 최우선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한족 중국이 들은 척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기회는 온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에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최대 급선무로 시급했던 우리 한민족으로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는 것도 아니고, 연합국의 도움으로 독립하는 처지이다 보니 우리 영토가 여기서 여기까지라고, 제대로 영토를 챙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38선 북으로 진군해 오는 소련과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괴뢰 도당에 의해서 만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김일성의 남침에 의한 6·25 동족상잔의 비극에 김일성은 중공군을 끌어들였고,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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