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능력주의와 선민의식을 넘어 열린 시민의 시대로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3-11 08:18:34

박범철 작가

최근 온라인을 달군 한 부모의 일화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자녀에게 노동 현장을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고 훈계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를 넘어 서늘한 파문을 던진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우리는 어느덧 과거의 신분제보다 더 높은 오만의 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현대판 선민의식은 혈통 같은 불가항력적 요소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학벌이나 자산이라는 완장을 차고, 내 노력으로 얻은 자리니 그렇지 못한 타인을 멸시할 자격이 있다고 강변한다. 이른바 승자독식의 능력주의라는 함정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한 개인의 성취가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직조된 적이 있는가.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누리는 지식과 인프라는 인류가 축적해 온 공동 유산이며, 그 안에는 타인의 헌신과 시대적 운이라는 변수가 녹아 있다. 나의 성공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토양 위에서 얻은 결실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준엄한 진리 하나를 직시해야 한다. 현대 윤리의 핵심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보편적 인권이다. 특정 집단이 성취의 결과로 우월하다는 전제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근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회적 지위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동반한다. 성취를 개인의 전유물로 착각해 타인을 향한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과 배치되는 모순된 행위다.

이러한 오만의 욕망은 이웃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게 만든다. 이는 혐오의 논리적 근거가 되며, 타협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동력을 멈춰 세운다. 진정한 영성은 타인 위에 군림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겸손에 그 본질이 있다. 독단에 매몰된 신념은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될 뿐이다.

나만이 옳다는 확신은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도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진정한 우월함이란 타인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보다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을 밑에 두어야만 유지되는 자존감에는 결코 품격이 깃들 수 없으며, 내가 선택받았다는 망상은 성숙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떨쳐내야 할 잔재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나 또한 틀릴 수 있다는 지적 겸손과 타인도 나만큼 존엄하다는 평등의 감각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부가 타인을 억누르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통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시민의 광장에서 연대할 수 있다. 남과 화목하되 무조건 동화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보편적인 문명인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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