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 ㉒] 가와사키(川崎), 공업 도시를 넘어 문화와 혁신으로 피어난 도시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7-14 08:13:05
새해 참배(하쓰모데) 문화의 발상지, 가와사키 대사
라조나와 라 치타델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 공장 야경
[로컬세계 = 이승민 도쿄특파원] 이번 산책의 발길은 도쿄도의 경계를 넘어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의 관문이자 최동단에 위치한 가와사키(川崎)로 향한다. 다마강(多摩川)을 사이에 두고 도쿄와 길게 마주보고 있는 가와사키는 약 156만 명의 인구를 품은 거대 도시다. 이곳은 과거 게이힌(京浜) 공업지대의 핵심으로서 일본의 근대화를 견인한 공업 도시의 대명사였으나, 오늘날에는 화려한 상업 지구, 초고층 맨션가, 전원 풍경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얼굴의 매력적인 도시로 진화했다.
도카이도의 옛 숙소에서 일본 최고의 재정 자립 도시로
가와사키는 에도(江戸) 시대, 도쿄와 교토를 잇는 핵심 간선도로인 도카이도(東海道)의 주요 숙박소인 '가와사키 숙구(川崎宿)'를 비롯해 중하라길(中原道), 대산길(大山道) 등이 지나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메이지 시대 이후臨海부(임해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중공업 지대가 조성되며 후지쓰(富士通), 도시바(東芝) 등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모태이자 대제조업 기지가 되었다.
과거의 공해 문제를 완벽히 극복해 낸 현재는 2024년도 재정력 지수가 1.06에 달해, 일본의 정령지정도시(政令指定都市) 중 가장 재정 상황에 여유가 있는 부유한 도시로 꼽힌다. 면적은 정령지정도시 중 가장 좁지만, 도쿄 및 横浜(요코하마)와의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2026년 현재까지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성장하고 있다.
새해 참배(하쓰모데) 문화의 발상지, 가와사키 대사
가와사키의 유구한 역사적 깊이를 느끼기 위해 케이큐 대사선(京急大師線)을 타고 평간사(平間寺), 우리에게 '가와사키 대사(川崎大師)'로 더 잘 알려진 사찰로 향한다. 1128년에 건립된 이곳은 일본에서 '새해 첫 참배(初詣, 하쓰모데) 문화'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곳이다. 액막이(厄除け) 명소로 명성이 높아 매년 새해 첫날이면 일본 전국 3위, 가나가와현 내 1위에 달하는 수백만 명의 참배객이 몰려든다. 사찰로 이어지는 전통 상점가에서는 액운을 쫓는 의미로 도마를 경쾌하게 치며 사탕을 자르는 '도코토코 사탕(とんとこ飴)' 노점이 즐비해 활기찬 에도풍의 정취를 전한다.
라조나, 라 치타델라
오늘날 가와사키역(川崎駅)과 케이큐가와사키역(京急川崎駅) 주변은 도쿄 근교에서 손꼽히는 대형 번화가와 환락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과거 공장 부지였던 역 주변의 대대적인 변신이 눈부시다.
라조나 가와사키 플라자(ラゾーナ川崎プラザ): 역 서쪽 출구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도시바 공장 부지를 재개발하여 세운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다. 일본 내 상업 시설 중 최고 수준의 매출을 자랑하며, 거대한 야외 광장과 세련된 매장들은 언제나 쇼핑객과 문화 이벤트를 즐기는 이들로 붐빈다.
라 치타델라(LA CITTADELLA): 역 동쪽 출구 방향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이탈리아의 고즈넉한 언덕 동네를 모티브로 조성된 엔터테인먼트 거리다. 돌바닥과 아치형 건물, 분수쇼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 속에 대형 영화관과 노천카페들이 밀집해 있어 마치 유럽의 한 도시에 온 듯한 이색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 공장 야경
가와사키는 서부의 다마 구릉(多摩丘陵) 지역으로 갈수록 너구리, 여우, 토끼 등이 서식하는 한가로운 농지와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등호(노보리토), 신백합백합(신유리 가오카), 구교(미조노쿠치) 등 도쿄 중심부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신흥 주거지(베드타운)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다마강을 따라 타워 맨션들이 숲을 이룬 무사시코스기역(武蔵小杉駅) 주변은 도쿄 지향적인 '가와사키 도민(川崎都民)'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해가 저물면 가와사키의 시선은 다시 동부 해안가의 수많은 운하와 매립지로 향한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과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밝히는 수천 개의 조명이 연출하는 화려한 '공장 야경'은, 잿빛 공해의 기억을 환상적인 미래 도시의 경관으로 승화시킨 가와사키만의 독창적인 자산이다.
가와사키는 좁은 면적 안에 공업 지대, 화려한 번화가, 초고층 맨션가, 그리고 고즈넉한 자연과 사찰을 영리하게 직조해 낸 저력 있는 도시다. 행정구역상 가나가와현에 속해 있으면서도 요코하마보다 도쿄와의 결속력이 더 강한 이 독특한 도시는, 도시가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지 그 매력적인 답안을 제시한다. 밤바다를 수놓는 공장의 불빛을 뒤로하고, 도쿄 산책의 발길은 이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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