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문윤국 ⑱] 시공간을 뛰어넘은 현몽, 거목의 영원한 부활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6-06 11:22:18
사후에 펼쳐진 거대한 섭리 문선명 총재의 친사촌, 문용기 장로의 증언으로 복원된 은둔 지사의 마지막 행적
[독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본지는 당초 ‘기획 연재 독립운동가 문윤국’을 제17회로 마무리하며 최종회를 보도했으나, 연재가 끝난 후 수많은 독자분들로부터 "벌써 마치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연재를 더 연장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과 격려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연재를 더 이어가길 갈망하는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고자, 긴급 '특별 기획' 형식으로 연재를 전격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특별 기획은 지난 17회에 이어, 생전의 문윤국 지사를 직접 대면했던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과 역사적 발자취를 중심으로 더욱 깊이 있게 전개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로컬세계 편집자 주】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강원도 정선의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무명(無名)으로 잊힐 뻔했던 금산(錦山) 문윤국 지사의 거룩한 행적은 사후에 펼쳐진 거대한 영적 역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문 지사는 지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1968년, 가문의 종손자이자 문선명 총재의 친사촌 형제인 문용기 장로의 꿈에 수차례 나타나 자신이 묻혀 있는 강원도 정선의 구체적인 주소를 직접 일러주는 경이로운 역사를 일으켰다.
베일을 벗은 거목의 발자취, 사촌 형제가 함께 일군 역사적 복원
"문선명의 가족 친족 계보." 사료가 증언하듯, 남평 문씨 정주 가문의 혈통은 매우 끈끈하고 정교하게 이어져 왔다. 문윤국 지사는 문선명 총재와 문용기 장로 모두에게 종조부(작은할아버지)가 되며, 문 총재와 문 장로는 한 조상 아래에서 태어난 친사촌간이다.
당시 남하하여 사촌 동생인 문선명 총재와 극적으로 상봉했던 문용기 장로 3형제는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에서 함께 토기 공장을 운영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기이했기에, 문 장로는 꿈속에서 작은할아버님이 일러준 정선 주소로 편지를 보내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편지의 답신을 들고 즉시 강원도 정선의 외딴 산골을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문윤국 지사가 남긴 친필 유서와 생전 스승을 모셨던 제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마침내 확보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촌 형제인 문선명 총재와 문용기 장로의 영적·물리적 공조를 통해, 역사의 어둠 속에 단단히 베일에 싸여 있던 거목의 장엄한 만년 행적이 마침내 세상에 그 위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1970년 4월 6일부터 7일까지, 문씨 가문의 후손과 형제들은 마침내 문윤국 지사의 유해를 강원도 정선의 외딴 골짜기에서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무건리에 위치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공식 묘원으로 정중히 이장하여 모셨다. 민족 지사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한 이 장엄한 이장식에는 정선교회 신도들을 비롯하여, 생전 정선 땅에서 문 지사와 깊은 연고를 간직했던 문용준, 문노수, 신만승 선생 등 마을 주민들이 대거 참석하여 거룩한 예우를 다했다.
문선명 총재는 정선의 깊은 산골에서 사후의 현몽을 통해 친사촌 문용기 장로와 다시 연결된 종조부 문윤국 지사의 역사적 부활을 두고 다음과 같이 숭고한 영적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문윤국 할아버님께서 타향의 깊은 산골에서 쓸쓸한 나그네의 운명으로 생을 마감하셨지만, 조국을 향한 거대한 애국의 공로를 남기셨기에 사후에 영으로 나타나 선한 후손들과 소통하는 섭리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찾아오너라" — 사촌 동생 문용기 장로의 증언
1968년 그날 밤의 극적인 상황에 대해, 문선명 총재의 사촌 동생인 문용기 장로는 지금도 눈에 선하듯 생생하고 엄숙한 어조로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1968년 어느 날 밤, 꿈속에 작은할아버님이신 문윤국 선생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젊은 시절의 당당하고 기개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제게 나직하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강원도 정선군 북면 장열리에 있는 문창운의 집에 있으니 나를 찾아오너라.'
깨어나서도 잊히지 않는 너무나 기이하고 신령한 꿈이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곁에서 잠들어 있던 아내를 황급히 깨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님이 꿈속에서 정밀하게 일러주신 그 주소를 노트에 한 자 한 자 똑똑히 받아 적게 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의구심과 기대를 안고 받아 적은 그 주소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열흘 뒤, 정말로 정선에서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편지 봉투를 열어본 우리는 그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윤국 선생은 이미 9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가시기 전 언젠가 내 후손이 나타나면 반드시 이것을 전해주라며 유서를 남기셨고, 저희가 그 유서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이고도 감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체 없이 강원도 정선의 외딴 집으로 달려가 편지를 보내주신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생전 할아버님을 처소에 모셨던 문창운 선생의 손자, 문노수 씨였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그 깊은 산골 마을에는 문윤국 선생님의 소박한 묘소와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 그리고 고결한 숨결이 깃든 유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유서와 유품 대부분은 스승의 애국 정신을 받들던 애제자 신만승 선생이 평생 눈물로 소중히 지켜온 것들이었습니다.
-계속-
【読者の皆様へお知らせ】
弊紙は当初、「企画連載:独立運動家 文潤国」を第17回で締めくくり、最終回として報道いたしましたが、連載終了後、数多くの読者の皆様から「このまま終えてしまうのはあまりにも名残惜しい」「連載をさらに延長してほしい」という切実な要望と激励が相次ぎました。
つきましては、連載の継続を熱望される読者の皆様の熱い声援に応えるべく、急遽「特別企画」という形式をとり、連載を電撃延長することを決定いたしました。今後展開される特別企画は、これまでの17回に続き、生前の文潤国志士と直接対面した人物たちの生々しい証言や、歴史的足跡を中心に、より深く掘り下げていく予定です。読者の皆様の変わらぬご声援とご関心をよろしくお願い申し上げます。
【ローカル世界 編集者 注】
【特別企画:独立運動家 文潤国 ⑱】時空を超えた現夢、巨木の永遠なる復活
【ローカル世界=李勝敏記者】 江原道旌善の畳々たる山中、その深い谷間に埋もれ、永遠に無名として忘れ去られるところであった錦山・文潤国志士の神聖なる足跡は、死後に繰り広げられた巨大な霊的歴史を通じて、ようやくこの世に完全な姿を現すことになる。文志士は地上を去ってから10年の歳月が流れた1968年、家門の従孫であり文鮮明総裁の従兄弟である文龍基長老の夢に数回にわたって現れ、自らが葬られている江原道旌善の具体的な住所を直接告げるという、驚異的な歴史を起こした。
ベールを脱いだ巨木の足跡、いとこ同士が共に成し遂げた歴史的復元
家門の親族系譜が証明しているように、南平文氏定州家門の血統は極めて強固かつ精緻に紡がれてきた。文潤国志士は、文鮮明総裁と文龍基長老の双方にとって従祖父(大叔父)にあたり、文総裁と文長老は一人の祖先の下に生まれた固い絆で結ばれた従兄弟(いとこ)同士である。
当時、南下して従兄弟の文鮮明総裁と劇的な相逢を果たしていた文龍基長老の三兄弟は、忠清南道牙山郡仁州面において、共に土器工場を運営しながら誠実に暮らしていた。そうした中、見出された夢があまりにも生々しく奇妙であったため、文長老は夢の中で大叔父が告げた旌善の住所へと手紙を送り、事実の確認に乗り出した。
その後、手紙の返信を携えて直ちに江原道旌善の辺境の山村を訪れた彼は、その地で文潤国志士が遺した親筆の遺書と、生前に師を仰ぎ見ていた弟子たちの生々しい証言を、ついに手中に収めることとなった。これにより、従兄弟である文鮮明総裁と文龍基長老の霊的・物理的な共助を通じて、歴史の闇の奥深くに固くベールに包まれていた巨木の壮絶なる晩年の行跡が、ようやく世にその偉大な実体を現し、復元されるに至ったのである。
それから歳月が流れた1970年4月6日から7日にかけ、文氏家門の後孫や兄弟たちは、ついに文潤国志士の遺骨を江原道旌善の寂れた谷間から、京畿道坡州郡積城面無健里に位置する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の公式墓院へと、丁重に移して祀った。民族の志士の最後の旅路を涙で見送ったこの壮厳なる移葬式には、旌善教会の信徒をはじめ、生前に旌善の地で文志士と深い縁を結んでいた文龍順、文老水、申万淳など、村の住民たちが大挙して参列し、至高の礼遇を尽くした。
文鮮明総裁は、旌善の深い山奥から死後の現夢を通じて従兄弟の文龍基長老と再び繋がった従祖父・文潤国志士の歴史的復活を巡り、次のような崇高なる霊的意味を付与している。
「文潤国おじい様が他郷の深い山奥で、寂しい旅人の運命として生涯を終えられたが、祖国に向けた巨大な愛国の功労を遺されたがゆえに、死後に霊として現れ、善なる後孫と疎通する摂理の歴史を起こす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私を訪ねて来なさい」――従兄弟・文龍基長老の証言
1968年のあの夜の劇的な状況について、文鮮明総裁のいとこにあたる文龍基長老は、今も目に浮かぶかのように生々しく、また厳かな口調で当時をこのように証言した。
「1968年のある夜、夢の中に大叔父である文潤国先生が現れました。今も目に焼き付いています。若いころの堂々として気概に満ちた姿で現れ、私に静かに、しかし厳格に語りかけました。『私は今、江原道旌善郡北面長熱里にある文昌雲の家にいるから、私を訪ねて来なさい』
目が覚めてからも忘れることのできない、あまりにも奇妙で神聖な夢でした。私は直ちに起き上がり、傍らで眠っていた妻を慌てて揺り起こしました。そして、おじい様が夢の中で精密に告げられたその住所を、ノートに一字一字しっかりと書き留めさせました。夜が明けるのを待ち、疑念と期待を胸に、書き留めたその住所へ手紙を送りました。
驚くべきことに十日後、本当に旌善から返信が届いたのです. 手紙の封を切った私たちは、その内容に驚愕を禁じ得ませんでした. 『文潤国先生はすでに9年前に亡くなられました. しかし、旅立たれる前、いつか私の後孫が現れたら必ずこれを渡してほしいと遺書を遺され、私どもがその遺書を大切に保管しております』という、衝撃的でありながらも感激的な内容が記されていたからです.
私たちは一刻の猶予もなく江原道旌善の辺境の家へと車を走らせ、手紙を送ってくださった方に会いました. その方は他でもなく、生前のおじい様を処所に迎えてお世話をしていた文昌雲氏の孫、文老水氏でした. 私たちが訪れたその深い山村には、文潤国先生の素朴な墓所と、熾烈であった闘争の歴史、そして高潔な息遣いが宿る遺品がそのまま残されていました. 遺書と遺品の大部分は、師の愛国精神を仰ぎ見ていた愛弟子、申万淳氏が生涯をかけて涙ながらに大切に守り抜いてきたものでした」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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