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용수의 팍스코리아나]상호주의 지향하는 세계질서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15-11-02 09:33:00
▲설용수 이사장. |
지난날 세계 질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편 가르기를 했고 국제 관계의 핵심인 국제화도 결국 자국의 이익이 전제된 국가 간의 관계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국제화의 질서 속에서도 자국의 취약한 산업이나 정책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산업은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장벽을 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도 중반부터 불어 닥친 세계화 속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보전할 수가 없게 됐다. 왜냐하면 상호주의가 적용되어 상대방도 똑같은 주장을 하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이익을 전제로 국제 관계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농민들이 그토록 쌀 수입을 거부했지만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외국의 쌀과 자동차 등이 밀려들어와 한국의 보호산업은 벌판에 내몰리게 되고 말았다. 세계경제 질서가 더 이상 GATT(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돼 상호무역에 있어 불공정행위에 대해 제소하게 되면 보복을 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려고 하는 것은 상호 국가 간의 최소한 관세 장벽을 열어서 우리 상품의 세계시장 진출과 상대 국가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우리의 선진적 스탠더드(Standard)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이다. 즉 통상무역은 각국의 생존전략과 일치하므로 경쟁력의 원초적 기회를 포착해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받자는 것이다.
세계 질서는 개방화로 전개돼 전 세계가 시장을 열어 자유로이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제3국을 통해 교역을 해야 되는 현실이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민족의 통일은 막대한 비용의 지출과 서로 다른 사상 체제를 극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음은 이미 동.서독의 통일을 통해서 확인됐다. 낙후된 동독의 재건 비용뿐 아니라 동.서독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통합한 독일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한의 통일을 무한정 미루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세계화에 편승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여러 번의 기회를 잃었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다른 나라들은 기계와 기술의 발달로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해 국내시장에서 못다 판 제품을 다른 나라에 팔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를 확보하기도 했고, 다른 나라에 개국(開國)을 강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중국시장에 팔다 남은 화약과 가죽제품 등을 싣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을 때 당시 조정은 그 상선을 불태우고 선원들을 죽인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만일 그 당시 미국의 요구대로 개국을 했다면 신기술과 신산업을 받아들였을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다.
1858년 일본은 미국의 검은 함대를 받아들여 요코스카를 개방지구로 정하고 미국의 기술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일본의 혼은 그대로 유지하고 서양 기술만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개국으로 인한 수혜의 극대화를 위해 낙후된 제도와 시설을 바꾸어 나갔으며, 기술 선진화를 위해 젊은이 수백 명을 미국에 보내 신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19세기 후반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이다.
반면에 미국 상선과 프랑스와 영국의 함대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기고만장했던 대원군은 결국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당하고 나서야 문호를 개방했으니 일본보다 20년 가까이 늦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에서 일본보다 기술력이 20년쯤 뒤져 있는 걸 보면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이 나라의 세계화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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