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보석공예회사 꿈꾼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localsegye.co.kr | 2015-09-16 09:50:47

인터뷰_일본 (유)금공예 김경진 사장
‘보석도시’ 익산의 보석가공기술 일본에 전파
후진국일수록 귀금속 악세사리 아닌 재산으로 생각
▲김경진 사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보석을 가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의 기술과 예술성을 필요로 하기에 타고난 재질이 없이는 보석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

일본의 보석상품은 대부분 한국인의 손기술로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의 장인들이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1980년대에는 동경에만 1000명이 넘을 정도로 한국장인들의 전성기를 이뤘다. 현재도 일본의 귀금속상품의 70%가 한국인의 손으로 가공되고 있다. 지금은 한국의 기술자들 수가 줄었지만 회사는 늘어 100여사에 이른다. 한국의 장인들이 분발하고 있는 도쿄 오카치마치의 보석가공회사 (유)금공예를 찾아가 보았다. 다음은 (유)금공예 김경진 사장과 일문일답.

일본에서 귀금속 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대학졸업 후 공무원으로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중 도쿄에서 귀금속가공일을 하는 의형이 찾아왔다. 의형의 간절한 부탁에 못이겨 익산에서 보석가공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됐다. 결국 2명의 아이들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아내와 함께 1990년 1월 8일 일본으로 건너왔다. 보석가공기술을 배웠던 덕택으로 도쿄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기술자로 일을 하게 됐고 미용사의 아내도 쉽게 일자리를 얻었다. 1995년 12월 28일 도쿄의 오카치마치에 귀금속공예회사 (유)금공예를 설립했다. 2011년에는 재일한국인귀금속협회 회장을 했다.
 

▲한국장인들이 가공한 고양이의 눈동자라 불리는 보석 ‘캣츠아이’. 이승민 특파원. 

타지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자신의 회사를 창립할 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일본에서 기술자로 일을 시작한지 5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내 회사를 도쿄에 세웠다. 그 기쁨이란 말로는 표현 할길이 없다. 기술자 3명으로 출발한 회사였지만 당시 한국인이 직접 회사를 차린다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금난에 시달리기도 했고 타국이라는 상업환경에 어려운 일도 많았다.

지난 2011년 동일본지진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귀국현상마져 벌어져 한국기업들이 침체되는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회사는 신용을 제일로 지키며 일해오다보니 거래처도 늘었고 관계도 좋아졌다. 지금은 우리 기업들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귀금속가공이란 희귀한 원석에 기능과 예술을 조화시켜 미적가치를 극대화하는 최고의 조형기술로 무형의 감성을 유형의 모양으로 표현해내는 첨단의 가공기술예술이다. 우리 회사에는 일본귀금속문화공예표창자 2명을 비롯한 43명의 직원들이 금·은을 비롯해,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진주 등을 가공해 반지 목걸이 브레스렛 등의 아름다운 상품들을 만들고 있다. 보석 중에서도 가장 고가인 다이아몬드 가공이 주된 일이다.

▲김경진 사장이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재일한국인귀금속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소개를 하자면

귀금속기술자들이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도쿄에만 1000명이 넘을 정도였기에 업계의 발전을 위해 1999년 귀금속협회를 창립하게 됐다.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인 협회사무실에서는 한국어교실을 비롯해 일본어교실과 컴퓨터교실도 열고 있다. 또한 회원간 친목과 화합을 위해 보석전시회, 회원골프대회, 회원장학금사업 등을 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16주년을 맞는 협회는 회원400명으로 재일한국인 단체 중 단일업종으로는 최고의 인원을 자랑한다.

금의 순도에 대한 허용오차를 놓고 귀금속업계가 뜨거운데 일본 상황은 어떤가

 
보석가공에 있어 순도 질량 유해원소 등 엄격하게 지켜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금뿐만이 아니라 모든 귀금속 가공에 있어 함량을 속이거나 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런 신용없는 일을 한다면 여기서는 버텨낼 수가 없다. 한 번 낙인 찍히면 아예 일이 없어져버려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 
 
후진국일수록 귀금속을 재산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한국은 순금을 선호하지만 일본은 백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선호한다. 또 일본은 귀금속을 액세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의 귀금속시장은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 장인들이 귀금속을 가공하고 있다. 이승민 특파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처음에는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일본에 왔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돈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버는 돈은 모두 한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까지 데려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보니 한국에 돌아간다기보다는 오히려 이곳에 정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가

우리 일은 하루종일 앉아서 하는 일이어서 운동부족으로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원들에게 건강을 위해 운동을 장려하고 있다. 나도 몇 년전부터 건강을 위해 아내와 함께 골프장에 다니고 있다. 또 귀금속협회의 친목을 더욱 다지기 위해 부인회를 만들어 지역과의 교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우리말 한국어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강생이 40명이 넘는다. 재일동포와의 교류를 깊게 하고 싶은 생각에서 민단이나 도민회 임원도 겸직하고 있다.

동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회사에서 만들어진 보석은 귀금속전문판매점이나 백화점 등으로 납품되는 세계최고의 제품이라고 자부한다. 보석을 구입하고 싶으신 우리 동포 여러분들에게는 아주 저렴한 특별가격으로 제공하고 싶다. 동포들을 위해 신주쿠나 긴자에 직매장을 개설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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