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간도의 영역과 명칭의 유래-간도(間島) 소야곡(小夜曲)(Ⅱ) 

마나미 기자

| 2026-08-31 12:44:31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

본 칼럼 제1회에서도 자세히 설명했듯이, [그림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의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두만강을 넘으면서 북간도와 동간도로 이어지는 대한제국 원산교구는, 같은 나라의 교세가 큰 도시나 인접한 도시와 지방을 묶어 하나의 교구로 설정하는 가톨릭 관례를 보면 당연히 대한제국 영토다.

그걸 증명하듯이, 1908년 현공렴에 의해 편찬된 [그림 4] 대한제국 전도에는 북간도와 서간도의 위치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 5]는 영조 때 제작된 유조변책도이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하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며,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를 개간할 수 없도록 봉금지역으로 설정한다. 청나라 발상지라고 신성시하던 심요지역에는 이민족, 특히 한족의 출입을 엄금하기 위해서 [그림 5]의 굵은 선처럼 버드나무를 심어 경계를 정해 유조변책이라 했다.

[그림 4]

하지만 그 당시 간도를 향하던 우리 한민족 동포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함으로써, 개간만 하면 내 땅이 된다는 생각으로 개간하기 위해서 향한 곳 중 하나일 뿐이다. 이상의 자료들을 종합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그림 6]처럼 융합하는 과정을 거쳐서 제작한 지도가 본 칼럼 제1회에 게시한 [그림 1]로, 간도가 속해있는 만주와 대마도는 물론 울릉도 독도까지 표기한 우리 한민족의 영토 지도이며, 그 영역은 [그림6]과 동일한 것을 깨끗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림 5]

결국 [그림 6]은 우리 한민족의 핏줄인 고조선의 대를 이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와 대진국 발해와 후기신라의 남북국시대 이후로 줄곧 우리 한민족이 지배하고 통치하며 생활하던 영역으로, 조상 대대로 지켜온 우리 한민족의 영토다. 주지할 사항은 이 지도의 제작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은, 근거가 되는 지도 융합 과정의 정확도를 높여서 합성하기 위한 것일 뿐, AI를 활용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다. 최근 AI 열풍에 힘입어 역사적인 지도까지 AI가 제작하도록 하는 경향도 보이는데, 사람이 완성한 지도에서 일정 지역의 면적 비율을 산출하는 방법 등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AI가 지도 자체를 제작하게 하는 것은 근거로 제시된 역사 자료를 AI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지도 모양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 등으로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림 6]

간도라는 지명이 형성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설은, ‘1869~70년 대기근 당시 회령부사 홍남주가 두만강북지역을 개간하기로 방침을 정한 후 백성들이 제출한 인수개간원서에 처음으로 간도란 지명을 썼다. 간도는 조선 중기에 들어서는 청나라에 의해 봉금지역으로 설정되어 약 230년간 무주의 황무지 땅으로 버려졌던 곳이다. 그동안에 조선인들이 조ㆍ청 양국 관리들의 감시를 피해 최초로 개척한 곳이 사이섬, 즉 간도(間島)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함경북도 종성 건너편, 길림(吉林)성 도문(圖們)과 용정(龍井)시 사이의 두만강 선구촌이라는 곳이다. 그 이름에서 유래되어 만주의 간도지역 전체를 간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설이다.

아주 짧게 요약한 간도라는 명칭의 유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도가 바로 청나라가 정한 봉금구역이었다는 것이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이 중원이라고 부르는 대륙으로 진군하면서 자신들의 발상지를 신성시하기 위해서 봉금지역을 설정하고, 특히 [그림 5]와 같이 유조변책을 조성하면서까지 한족의 출입은 절대로 엄금했는데, 조선에 기근이 심해지면서 우리 한민족은 조상 대대로 살던 영토이기에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인식밖에 없던 봉금지역을 넘어 들어가 개간을 시작했던 것이다. 지독한 기근에 대한 호구지책으로 봉금지역인 간도 개간을 택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것은 그 봉금지역이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며 실제로도 그 영토는 우리 한민족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은 굳이 청나라와 마찰하면서까지 간도 개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 뿐인데, 너무 심각한 기근 앞에서의 절실함이 그 필요성을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다다음 호에 기술할 예정인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를 대한제국이 간도에 파견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영토가 아니었다면 대한제국이 관리사를 파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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