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도쿄서 에티오피아를 위한 자선음악회 2회째 열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1-11-11 14:06:12

▲ 참석자들이 공연장으로 코로나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질서정연하게 입장하고 있다.(사진 =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지난 10일, 도쿄의 무사시노고카이도홀(武蔵野公会堂ホール)에서 일·한·에디오피아우정회(회장 이용우)가 주최한 제 2회 차리티콘서트가 열려 3국의 따뜻한 우정과 문화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온도 측정, 알콜 소독 등 코로나19 감염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질서정연하게 행사장에 입장했다.


무라다 마치코(村田真智子)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주일 에티오피아 대사관 직원, 재일효정한국부인회 회원, 한일에티오피아우정회 회원 등 350석 홀에 2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석란(李錫蘭) 씨의 에티오피아 국가(國歌) 독창을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 유우코 씨와 에티오피아 무용수들이 에티오피아 전통무용을 춤추고 있다.
이어 주최자 인사말, 에티오피아 대사 축사, 지원금 전달식, 에티오피아 소개영상,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모니, 에티오피아 전통춤 등의 순으로 1부 본행사가 진행되었고


2부 자선공연에서는 성악가 와다나베 미츠히로(渡辺充洋)의 노래, 가무라 유리에 ・에리카(嘉村ゆりえ、えりか) 자매의 피아노 연주, 이이오카 야수미(飯岡恭美) 의 섹소폰 연주, 성악가 이리사와 키요(入澤希誉)의 노래, 연주그룹 일수오노(il Suono)의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합주 등의 순으로 진행해 깊은 감동을 주었다.

▲ 이용우 일·한·에디오피아우정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코로나 예방을 위해 앞에 아크릴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이용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에티오피아는 한국동란 당시 먼 아프리카에서 6000여명의 젊은이들이 달려와 한국을 지켜주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금의 한국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이 가능했다” 고 강조하면서 “6.25한국동란 71주년을 맞아 보은의 마음으로 뜻을 같이 하는 일본인과 함께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이라는 주제로 제 2회 자선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카사 테그레베루한 가브라히웟 주일 에티오피아 대사는 축사에서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가 첫번째에 이어 두번째 에티오피아를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어줘 대단히 기쁘고 감사하며 축하한다. 한국과 일본과 에티오피아 3국의 아름다운 우정이 더욱 발전하여 좋은 문화교류로 지속되길 바란다”고 유우코 씨를 통해 대독했다.

 

▲ 행사를 마치고 후원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는 에티오피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재일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뜻을 모아 2020년 12월 1일 결성됐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가족에 대한 후원과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누구나 회원 가입이 가능하며 월 회비는 1000엔(약 1만원)이다.


참석자 혼다 가오리 씨는 “음악회가 너무너무 감동적이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은혜를 잊지 않는 보은의 마음이 짙게 베어있어 더욱 좋았다. 갈수록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에 벌써부터 내년 3회 콘서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무대 출연자들의 기념사진 촬영.
▲ 행사를 준비한 스텝들의 기념사진.

▲ 참석자들의 기념사진 촬영.

다음은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를 만들게 된 사연을 적은 이용우 회장의 글을 첨부한다.


제목 은혜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


제가 에티오피아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커피 때문이었습니다. 2018년 5월, 저는 커피사업을 위한 시장조사를 위해 에티오피아에 갔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교외에는 코리안빌리지라고 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한국동란이 끝나고 귀국한 참전용사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가 하사한 토지와 집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참전용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6.25동란 때 한쪽 다리를 잃고 평생을 침대에 누워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인사를 드리자 불편하신 몸을 일으키시며, 오랫동안 집을 나갔다가 돌아 온 손주를 맞이하듯이 나를 꼭 안아주시며 ‘고맙다 잘왔다’ 하시며 반겨주셨습니다.


경사진 비탈에 세워진 집은 흙이 쓸려내려 뒷벽이 떨어져 나간 탓에, 좁은 거실을 둘로 나누어서 방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오는 내내 참전용사분들의 어려운 삶이 잊혀지지 않아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굶주림과 전쟁의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분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이분들이 피흘려 지켜준 희생의 댓가인데 우리가 이분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실상을 가까운 지인들과 공유하고 후원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선음악회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6.25 한국동란 71년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지자 유엔은 신속하게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유엔군 참전을 결정했고, 전투병을 파견한 나라는 모두 16개국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참전군은 1951년부터 1956년까지 5년간 최전선에 투입되어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8명의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당시 6038명의 에티오피아 참전군인 가운데 생존해 계시는 분은 130명 정도인데 대부분 연세가 90을 넘기셨고 어렵게 살고 계십니다. 제2회 자선음악회를 준비하며 마음에 심금을 울리는 신문기사가 있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4월13일 조선일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한국동란 때에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 걸고 싸웠던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늦었지만 그 영웅들에게 감사함을 계속 전하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그분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8일, 또 한 명의 영웅이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멜레세 테세마((Melesse Tesessma), 항년 92세, 그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강뉴부대원이었습니다. 전승을 하고 돌아온 강뉴부대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에티오피아인들은 자랑스럽게 맞아주었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그 사이 에티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이들은 공산주의와 싸운 대가로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반역자로 그 지위가 곤두박질쳤고, 후손들까지도 핍박을 받으며 벗어나기 힘든 굴레를 썼습니다.
평생을 가난과 핍박 속에서 살아온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원들...


멜레세 테세마 역시 전쟁으로 인한 부상과 계속되는 핍박 속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젊은 군인이었던 그는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하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 또 하나는 급성장을 한 대한민국. 선진국의 반열에 들게 된 대한민국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강뉴부대원들이 더 행복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흘렸던 피가 무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아직 어려움이 많다 보니, 지금은 대한민국에 많은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괜스레 미안해지는데,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훗날 경제가 안정되어서 보답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민주와 공산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하여 반만년 이어온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대립한지도 벌써 71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사상이 다름으로 인해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만 했던, 암울한 과거가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짓누르고 있음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발한 한국 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충돌하여 3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참화였습니다. 사회의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되었고 국가의 동량인 지식인 젊은이들이 몰살당하는 등 전쟁이 끝난 직 후의 참상은 필설로는 이루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거리에는 전쟁통에 부모 잃은 고아가 넘쳐났으며 누구나 하루하루 연명할 끼니를 걱정해하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6.25동란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발전상을 기적이라고들 말합니다.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70년 전 한국전쟁이 패전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진영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유엔참전용사분들의 은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6.25동란 당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 제1진으로 유엔군에 참여하셨던 참전용사이신 Tasfayo Makonen 씨의 간증입니다.


“1970년부터 대규모 가뭄이 발생하면서 대기근이 발생하게됩니다. 그런데 황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사태를 방관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다른 기득권층은 대기근에 시민들이 고생하건 말건 상관을 하지 않았죠. 이런 혼란을 틈타 1974년 육군장교였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하일레 셀라시에를 폐위시키며 공산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멩기스투는 자신에게 반발하는 세력들, 반공 인사들을 모두 강하게 탄압했습니다. 여기엔 목숨 걸고 전쟁을 치루고 온 강뉴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티오피아참전 용사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영장 없이 체포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당했고 조국과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은 핍박을 피해 숨어살아야 했습니다. 

자식들은 학교에서 조롱과 멸시의 표적이 되었고, 사회에 나가면 취업의 길이 모두 막히고, 나오던 연금마져도 막아버렸습니다. 공산정권의 핍박은 근 20년간 계속되었고, 1991년 민주혁명에 의해 공산정권이 밀려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들의 존재는 사회와 국가로 부터 점점 잊혀져 갔고, 경제적 사정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약자의 심정을 알고 무한의 사랑으로 실천한 형제의 나라 에디오피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 버린 그들, 그 나라를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봅니다.


2021년 11월 
일·한·에티오피아 우정회 회장 이 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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