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정 칼럼] 자연의 시계와 생명의 시간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 2026-06-26 17:30:09

이훈정 서양화가

일상의 삶은 늘 분주하다. 시계는 쉼 없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 속도에 맞추어 달린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반복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도, 하늘의 색이 달라지는 것도 놓치기 쉽다. 어쩌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빨리빨리"라는 말은 도시의 시계가 만들어낸 생활 방식인지도 모른다.

반면 자연 속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시계가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의 순환에 따라 자신의 리듬을 유지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모든 것이 휴식을 준비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연의 시계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일과도 같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느린 삶이다. 그것은 단순히 속도를 늦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조급한 시간을 내려놓고 자연의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낙엽을 밟으며 겨울의 문턱을 느끼고, 복사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봄의 흐름을 체감하는 일은 자연의 순환 속에 자신을 놓아두는 경험이다.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과 고집도 세월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결국 서로 닮아가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조각가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시내 근경에 텃밭을 구입하고 삽질하고 씨앗을 뿌리고 유실수를 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예상치 못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자연의 질서를 체감한다.

이훈정 作_바래봉 산자락_50.8 x 40.5cm_oil on canvas_2022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가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조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존재했다. 작은 생명체들이 보여주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바라보며, 도시의 시계 속에서 잊고 지냈던 정서적 충만감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림 또한 이러한 깨달음이 연결되어 있다. 대상을 단순한 물질이나 형태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흐르는 기운과 생명력, 그리고 존재를 움직이는 근원적 원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산을 그릴 때 산의 형상만이 아니라 산이 품고 있는 생명의 숨결을 표현하려 했고, 나무를 그릴 때도 나무의 외형보다 그 안에 흐르는 생명의 기운을 담고자 했다.

오늘도 자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며 묻는다. 내가 따라가야 할 시간은 도시의 시계일까, 아니면 자연의 시계일까. 그 질문 속에서 인간과 예술,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답을 발견하게 된다.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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