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④] 노무현과 문선명, 가슴으로 맞잡은 ‘실용’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1-09 07:07:23
이념 넘어 국익 위해 의기투합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허문 ‘실용 외교’
남북 경협의 상징 ‘평화자동차’
미 보수층 창구 ‘워싱턴 타임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2007년 10월, 평양 남포의 평화자동차 종합조립공장을 시찰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은 환했다. 이 방문은 단순한 기업 현장 시찰을 넘어, 진보 정권의 대북 정책과 종교계가 구축한 글로벌 민간 네트워크가 만난 전략적 정점이자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본지는 참여정부 시절, ‘국익’이라는 거대한 교차점에서 긴밀하게 호응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선명 총재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 평양의 ‘휘파람’: 문선명이 닦고 노무현이 달린 길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며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 여정에서 1991년 문선명 총재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쌓아 올린 독보적인 대북 네트워크는 정부에 있어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었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평화자동차 공장 방문은 통일교의 대북 영향력을 정부가 공식 인정한 계기였다. 문 총재가 세운 평화자동차는 남북 경제협력의 마중물로서 참여정부 대북 정책의 실질적인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두 거물 사이의 가교 역할은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이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평화자동차 방문 당시 직접 안내를 맡았던 박 사장은, 정부 공식 라인이 막힐 때마다 평양의 고위층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비공식 특사' 역할을 수행했다.
◇ 워싱턴의 ‘창’: 미국 보수층을 설득한 워싱턴 타임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적잖은 진통을 겪기도 했다. 특히 미 행정부 내 강경 보수 세력(네오콘)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시기, 문 총재가 창간한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2003년 방미 직전 성사된 워싱턴 타임스와의 단독 인터뷰는 외교적 신의 한 수였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이 매체를 통해 "한미 동맹은 굳건하며 북핵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진의를 미국 심장부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현지의 부정적 여론을 환기하는 데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한미 정상회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통일교 측의 인적 네트워크가 보이지 않는 지원 사격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진보 정권이 국익을 위해 보수 종교의 글로벌 자산을 조화롭게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평화의 엔진, 평화자동차 주요 라인업
당시 ‘퍼주기’ 논란 속에서도 평화자동차는 참여정부 대북 사업의 연착륙을 돕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현재 평화자동차가 생산 및 조립하는 주요 품목은 북한 자동차 시장의 핵심을 차지하며 지금 평양의 거리를 누비고 있다.
▶ 승용차 ‘휘파람(Hwiparam)’: 피아트 시에나 기반의 휘파람 I부터 중국 기술을 도입해 세련된 디자인으로 평양 택시 시장을 점유한 II & III, 그리고 최근 폭스바겐 제타 기반의 1600/1613까지 평화자동차의 시작과 성장을 상징한다.
▶ SUV ‘뻐꾸기(Ppeokkugi)’: 험준한 지형에 최적화된 브랜드로 인기가 높다. 다목적 차량인 I과 현대 싼타페를 연상시키는 외형으로 화제가 된 II & III, 그리고 북한 내 부유층의 ‘드림카’로 불리는 4WD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 고급 및 실용 라인 ‘준마(Zunma)’: 쌍용 체어맨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고위층 의전용으로 쓰인 고급 세단 ‘준마’, 그리고 북한 전역에서 인원 및 물류 수송의 핵심인 승합차 ‘삼천리(Samchonri)’가 포진해 있다.
▶ 화물·특수 차량 쌍마와 창전: 경제 건설 현장의 장비인 트럭 ‘쌍마(Ssangma)’와 단체 관광 및 이동을 책임지는 중대형 버스 ‘창전(Changjeon)’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다.
◇ [기자 수첩] 이념의 벽을 허물고 국익을 선택한 ‘실용’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선명 총재. 정치적·종교적 신념은 정반대에 가까웠던 두 거물은 ‘한반도 평화’라는 거대한 숙명 아래 기꺼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참여정부의 강한 정책적 의지와 통일교가 평양과 워싱턴에 공들여 닦아놓은 민간 인프라의 만남. 이 ‘비공식 동행’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겼다.
어쩌면 노 대통령은 남포 공장에서 조립된 평화자동차가 분단된 산맥을 넘어 부산 해안까지 거침없이 달리는 날을 꿈꿨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는 내 이념과 다른 이와도 마주 앉을 수 있는 포용이었으며, 그들이 실천한 실용은 정파를 초월해 오직 민족의 안녕만을 생각하는 진심이었다.
대립과 갈등이 다시금 일상이 된 오늘날, 서로의 차이를 증오의 근거로 삼는 대신 희망을 향한 지렛대로 삼았던 그들의 ‘아름다운 협력’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념의 벽을 허물고 국익이라는 큰 바다로 도도히 흘러갔던 실용의 강물은,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평화를 위해, 누구와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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