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앙의 종착지, 성전 문 너머의 사람에게 온기를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1-26 08:11:33
인간은 누구나 거친 풍랑 속에 놓인 고독한 항해자다. 신앙은 그 막막한 바다 위에서 북극성 같은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높은 별의 광휘(光輝)에만 마음을 빼앗겨, 정작 배 밑바닥에서 차가운 바닷물을 퍼내며 신음하는 동료의 손을 외면한다면 그 항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별은 아득히 먼 머리 위에서 빛나지만, 진정한 구원은 바로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온기에 있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신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를....
본래 종교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그 본질일 수는 없다. 만약 신앙이 관념적인 교리에 갇히거나 차가운 형식의 의례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성전(聖典)의 페이지마다 흐르는 진리는 명확하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자신이 말한 가치를 삶으로 증명하는 실천적 사랑이 그 어떤 고결한 신학적 교리보다 앞선다는 사실이다.
때로 종교적 규율이 보편적 인륜과 충돌하는 순간, 우리를 움직여야 하는 것은 박제된 문자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울리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양심을 상실한 신앙은 이내 독선이라는 이름의 흉기가 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진정한 신앙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낮추어 세상을 품는 겸손의 도구여야 한다. 믿음의 완성은 무엇을 믿느냐는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비움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종교는 지배와 복종의 굴레를 벗고 이해와 공존의 언어로 다시 쓰여야 한다. 복종의 서사에서 공존의 문법으로 나아갈 때, 마침내 종교는 시대의 아픔에 응답할 수 있다. 공평(Equity)과 공정(Justice)이라는 두 길은 결국 인간 존엄이라는 하나의 초석에서 만난다. 이 초석을 놓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신앙이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다.
AI 시대를 맞이하며 인간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종교 또한 과거의 사실관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발전과 급변하는 사회적 가치에 발맞춰 집단지성의 공감을 얻는 상식의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신앙을 삶의 목적 그 자체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빚어가는 고귀한 도구다. 신앙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는 용광로를 통과한 '나'라는 존재가 어제보다 얼마나 더 따뜻하고 속 깊은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신앙의 진정한 증명은 성전 안의 기도가 아니라, 성전 문을 나선 뒤 마주하는 차가운 거리의 온도에서 결정된다. 나의 믿음이 이웃의 고단한 어깨를 감싸는 온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깨달음의 종착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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