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 ⑰] 지유가오카(自由が丘), 유럽풍의 정취와 달콤한 문화가 흐르는 '자유'의 언덕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5-16 14:28:42

유럽풍의 수려한 거리와 '라 비타(La Vita)'
일본식 '몽블랑'의 발상지이자 디저트의 성지
주민이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
지유가오카. 사진 = 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 이승민 도쿄특파원] 무사시코스기(武蔵小杉)의 빌딩 숲을 지나 이번 산책이 닿은 곳은 도쿄 메구로구(目黒区) 남부에 자리 잡은 지유가오카(自由が丘)다. 도쿄 조난(城南) 지역을 대표하는 고급 주택가이자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이곳은, 세련된 잡화점과 세계적 수준의 파티스리(양과자점)가 집적된 도쿄의 대표적인 주상복합 상업 지역이다.

 이름에 깃든 대안 교육의 정신과 주민들이 지켜낸 지명

江戸(에도) 시대만 해도 '야바타(谷畑)'라 불리던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 지역은 1927년 도큐 도요코선(東横線) 개통을 기점으로 대전환을 맞이한다. 같은 해 11월, 교육자 테즈카 키시로가 대지주인 쿠리야마 큐지로에게 토지를 제공받아 이곳에 자유주의 교육을 제창하는 '지유가오카 학원(自由ヶ丘学園)'을 설립했다.

당시 이 동네에 거주하던 무용가 이시이 바쿠가 편지 주소에 '지유가오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주민들 사이에 정착되었다. 1929년 인근에 새로운 역이 생기면서 기존 역의 이름을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지유가오카역'으로 개칭했고, 이는 1932년 정식 행정구역명(대자 지유가오카)으로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헌병대로부터 '자유'라는 단어를 지우라는 개명 압박을 받았으나, 현지 주민들이 끝까지 응하지 않고 지켜낸 유서 깊은 이름이기도 하다.

 유럽풍의 수려한 거리와 '라 비타(La Vita)'

지유가오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특유의 이국적인 경관이 있다. 전체적으로 유럽의 한적한 도시를 연상시키는 수려한 거리 디자인은 지유가오카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상업 시설 '라 비타(La Vita)'는 작은 운하와 곤돌라, 아치형 다리가 어우러져 이 지역의 상징적인 포토스폿으로 자리 잡았다. 1974년 하수관 개량 및 상부 공원화(암거화) 과정을 거쳐 조성된 '구혼부츠강 녹도(九品仏川緑道)' 역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여유로운 산책길을 제공한다.

 일본식 '몽블랑'의 발상지이자 디저트의 성지

빵과 양과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유가오카는 일종의 성역이다. 이곳은 내로라하는 스타 파티시에들이 저마다의 가게를 운영하는 서구식 디저트의 최전선이다. 특히 1933년 창업한 양과자점 '몽블랑(モンブラン)'은 일본 최초로 몽블랑을 제조·판매한 발상지다.

당시 이 가게에 수많은 문화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취향의 동네'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매년 10월에는 역 앞 광장의 여신상 '아오조라'를 중심으로 지유가오카 최대의 축제인 '지유가오카 여신 축제(女神まつり)'가 개최되어 온 거리가 달콤한 활기로 가득 찬다.

 주민이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

지유가오카는 과거 이시이 바쿠(무용가), 이시카와 타츠조(소설가), 미야모토 사부로(화가)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정착하며 고급스러운 생활 문화의 기틀을 닦았다. 지유 거리나 학원 거리 등 주변 도로가 협소하고 철도 건널목 문제 등 도심 정체 요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재개발은 행정 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닌 지유가오카의 상인과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생활 품격'을 유지하려는 커뮤니티의 자부심이 오늘날의 지유가오카를 만든 원동력이다.

지유가오카는 대도시 도쿄의 번잡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일상의 작은 행복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세련된 쇼윈도와 향긋한 디저트 향기를 뒤로하고, 도쿄 산책의 발길은 이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 계속 –

 [기자 메모]

지형적 특징: '자유의 언덕(丘)'이라는 이름과 달리 지유가오카역 주변 남부 지역은 주변에 비해 지대가 낮은 편이다. 이는 과거 구혼부츠강으로 흘러들던 빗물이 지면을 깎아내 거대한 분지 형태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책 팁: 역 정면 광장에 서서 조각가 사와다 세이코의 작품인 여신상 '아오조라(あおぞら)'를 감상한 뒤, 아기자기한 독립 잡화점들이 밀집한 북쪽 언덕길을 따라 걷는 코스를 추천한다. 최근에는 과거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더해 '친근한 서민파(庶民派)' 매력까지 주목받으며 여전히 살고 싶은 동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