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정 칼럼] 자연의 거리와 공기의 흐름 속에 스며든 시간을 그린다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 2026-05-08 18:16:39

이훈정 서양화가

나는 물리적 형태를 좇는 대신, 자연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감정의 언어로 번역해 캔버스 위에 남긴다.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 햇살이 잎맥 사이로 스며들며 남긴 떨림, 빗방울이 땅과 만나며 퍼뜨리는 잔잔한 울림, 이 모든 순간은 나의 내면을 미세하게 흔들고, 그 진동은 결국 색과 형태로 태어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단순한 시각적인 결과물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자연 사이, 나와 세계 사이, 그리고 나와 나 자신 사이에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대화의 기록이다. 자연이 내게 생동감을 불어넣듯, 나는 오랜 세월 흙을 만지며 그림을 그려왔다. 이제 그 시간 위에 또 하나의 공간을 쌓고자 한다. 산자락에 기대어 자연의 숨결을 품은 작은 체류형 농막, 그곳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감정과 시간, 자연과의 깊은 대화들이 켜켜이 쌓인 내면의 성소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고, 그리고 표현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그림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그것이 작은 위로가 되든, 잠시 머물 수 있는 고요한 쉼이 되든,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충만해진다.

이훈정 作_자작나무 숲_116.8 x 91.0cm_oil on canvas_2026

나는 매번 나이프를 손에 들 때마다 기대한다. 오늘의 자연은 어떤 목소리로 다가올까. 어떤 날은 속삭임처럼 부드럽고, 어떤 날은 거칠지만 정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거리와 공기의 흐름 속에 스며든 시간을 그린다. 먼 풍경은 옅고 차가운 푸른빛으로, 가까운 존재는 따뜻하고 선명한 색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공기의 흐름을 통해 형성된 공간감이 내면과 공명하며 선택한 색의 언어이자, 나의 신념이 머무는 거리의 표현이다.

색은 팔레트 위에서 충분히 부딪히고 섞인다. 나이프를 따라 거칠게 혼합된 색들은 화면 위에 두터운 층으로 쌓이며, 마침내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림은 더 이상 물감의 집합이 아니라 감정과 시간이 깃든 존재로 태어난다.

앞으로도 나는 자연이 들려주는 삶의 진실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예술로 풀어낼 것이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며, 나의 예술이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로컬세계 /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