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 누구나 누리는 맞춤 의료 시대 AI기반 ‘1.5차 의료체계’ 모델 국제학술지 제안
마나미 기자
| 2026-09-17 18:26:17
-AI 강화 1차 의료의 4가지 역할 제시, 누구나 누리는 맞춤 의료로 가는 청사진
-세계적 디지털 인프라 갖췄지만, 짧은 진료 시간·병원 쏠림 뚜렷한 한국, 모델 실험할 최적지
[로컬세계 = 마나미 기자]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정보화실장)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동네 병원(1차 의료기관)과 대형병원 사이에 새로운 ‘중간 단계’를 만드는 미래 의료 모델을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npj Health Systems」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상민 교수 연구팀, 차지호 국회의원 등이 함께 참여했고, ‘Bridging primary care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toward a global 1.5-Tier Healthcare System’ 제목으로 9월 2일 온라인 게재됐다.
연구팀은 AI 기술을 통해 누구나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팀이 이름 붙인 ‘1.5차 의료체계(1.5-Tier Healthcare System)’가 그 해법이다. 동네 병원(1차)과 대형병원(2·3차) 사이에 AI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아, 별도의 의료진 증원 없이도 환자 한 명 한 명을 더 세심하게 살필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연구팀은 AI가 강화할 수 있는 1차 의료의 네 가지 역할을 제시했다.
첫째는 ‘첫 관문’(First Contact) 역할이다. 환자가 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 AI가 사진이나 검사 데이터를 분석해 큰 병원으로 갈지, 동네 병원에서 지켜봐도 될지 미리 판단하도록 돕는다. 실제로 호주 1차 의료기관에서 진행된 전향적 임상연구에서는 자동 안저 촬영과 AI 녹내장 선별검사를 결합한 결과, 검사를 받은 161명 중 18명(11.2%)이 그동안 자신이 녹내장인지 모르고 지내던 환자로 새롭게 확인됐다.
둘째는 ‘진료 조율’(Coordination) 기능이다. AI가 진료 의뢰서나 퇴원 요약서를 자동으로 작성해 병원 간 정보 전달 오류를 줄인다. 실제로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대형언어모델(LLM)에 입력하자, 해당 질환이나 상황에 대해 별도의 사전 학습 없이도 진료 의뢰서와 퇴원 요약서를 최대 99.25%의 정확도로 자동 작성했다. 의료진이 직접 작성한 요약본과도 높은 일치도를 나타냈다.
셋째는 ‘포괄적 진료’(Comprehensiveness) 지원이다. 다른 목적으로 찍은 흉부 CT에서 AI가 우연히 심장 혈관의 이상 신호를 발견해 알려주는 식으로, 별도 검사 없이도 숨어 있는 질병을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노티파이-1(NOTIFY-1)’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연구팀은 다른 목적으로 찍어둔 CT 영상을 AI로 다시 분석해 관상동맥 석회화(심장 혈관이 좁아지는 초기 신호) 여부를 찾아낸 뒤, 담당 의사와 환자에게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이를 구현했다. 그 결과 스타틴(고지혈증 치료제) 처방률이 검사 전 6.9%에서 6개월 뒤 51.2%로 약 7배 뛰었다. 처방이 시작된 환자들은 모두 향후 10년 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은데도 검사 전까지는 아무도 스타틴을 복용하지 않고 있었다.
넷째는 ‘지속적 관리’(Continuity)다. 당뇨병 환자가 집에서 혈당을 재면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 신호를 미리 알려주는 식으로, 병원 방문 사이의 ‘빈 시간’을 채워준다. 실제로 연속혈당측정기와 AI 기반 맞춤형 생활습관 교정을 결합한 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71.0%가 약물 없이 정상 혈당을 유지하거나 복용 약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AI 기반 원격 혈당 관리를 적용한 다른 연구에서도, 당뇨병 관리 지표인 당화혈색소 개선 폭이 일반 치료군(−0.10%)보다 AI 관리군(−2.19%)에서 훨씬 크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AI가 진단이나 치료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류 작성처럼 위험도가 낮은 일은 AI에 맡기되, 진단이나 약물 처방처럼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이 최종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이 95%를 넘고 전 국민 건강보험이 갖춰져 있는 등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8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5회)의 3배에 가까워, 진료 시간이 짧아지고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현상이 함께 나타난다.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들이 공존하는 한국이야말로 1.5차 의료체계를 시험할 적합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 모델은 도시형 의료체계뿐 아니라, 의료 인력이 부족한 농어촌 지역, 전쟁이나 재난으로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지역에도 각각의 여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연구팀은 전문의 쏠림과 행정 부담이 큰 고소득 도시에서는 AI 분류와 자동 문서 작성으로 1차 의료의 ‘문지기’ 기능을 강화하고, 의사가 크게 부족한 농촌 등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간호사·지역보건인력이 휴대형 AI 진단 도구로 환자를 가려내고 의뢰하도록 돕는 방안을 제시했다. 재난·분쟁 지역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끊긴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가벼운 AI 도구로 필수 의료 기능을 유지하는 방안도 함께 내놓았다.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특별히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의료가 가능해진다”며 “이번 연구는 ‘누구나 누리는 맞춤 의료’로 가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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