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아름다움 옻칠 닮은, 박강용 장인
이태술
sunrise1212@hanmil.net | 2014-11-21 22:59:55
▲ 옻칠공예가 박강용 장인 © 로컬세계 |
새로워진 옻칠공예관 개관과 함께 새 관장으로 임명된 박강용 무형문화재13호 옻칠장에게 덩달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물의 외관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주류를 이뤘던 제기 및 식상 위주의 목기를 식기류, 주방용품 등 생활목기로 전환하고 전통미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관광객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예정이다.
박강용 옻칠장은 “새롭게 단장한 옻칠공예관에서 칠예가 양성, 옻칠 체험교실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것”이라며 “남원을 철예의 도시, 예향의 도시로 만들고 더 나아가 옻칠의 세계화를 위해 모든 역량과 기술을 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목기에 한번 옻칠을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의 깊이가 더해지고 투명해지며 나무의 무늬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고구려벽화나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형태를 보존할 수 있는 것도 다 옻의 힘 덕분”이라며 옻공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남원 목기를 빛내는 옻칠장들
그의 말에 따르면 남원 목기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00명이 넘는 승려가 살고 있었던 실상사 스님들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바리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은 것이 시초다.
실상사는 남한에서 산림면적이 가장 넓고 다양한 수종을 보유하고 있는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질 좋은 목기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또 남원은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국 선종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불교 용구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이것이 남원을 한국 최고의 목기 산업 메카로 발전하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됐다.
남원 목기는 그 독특한 향과 정교한 모양과 단단한 재질로 왕실에 진상하는 진상품이었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 궁궐에서 사용된 제기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목기라도 표면에 옻칠을 하지 않으면 갈라지거나 변색되고 만다.
현재의 남원 목기의 명성을 가능하게 한 숨은 조력자는 뛰어난 옻칠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인 셈이다.
이의식 옻칠 장인에게 사사, 후학양성에 힘 쏟아
박씨가 처음 옻칠장이 된 계기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의 누나가 같은 집에 살고 있었던 옻칠 장인인 이의식 선생에게 옻칠을 배워볼 것을 권유한 데서 시작됐다.
그 뒤로 4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오롯이 옻칠장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며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옻칠공예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전수받은 기술에 머물지 말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할 것을 권해왔다.
후배들을 향한 그의 열성 때문인지 옻칠공예의 대들보와 같은 인재들이 많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수제자로는 제29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소병진 소목장 중요무형문화재와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제40회 대통령상 수상에 빛나는 이미숙씨 그리고 2014 대한민국 전승 공예대전 대통령상을 받은 윤서형씨 등이 있다.
옻칠의 과정…백골사포부터 상칠까지
▲ 박강용 장인과 이환주 남원시장(우) © 로컬세계 |
그는 “옻칠공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예술작품이다.
옻칠의 전 과정은 장인의 정성과 땀이 깃든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매우 섬세한 단계를 거쳐야한다”고 강조했다.
옻칠공예는 백골사포로 시작해 초칠, 건조, 틀메임, 사포, 1차 골회작업, 건조 순으로 이뤄지는데 이 과정을 7~8번 이상 반복해야만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백골사포는 나무를 깎아 만든 백골의 거친 표면을 곱게 사포질 하는 것을 말한다.
사포질이 끝나면 나무에 잘 스며들도록 묽은 농도의 칠을 하는데 이것이 초칠이다.
이 단계에서는 정제된 칠이 아닌 생칠이 사용된다.
초칠 후에는 습도가 약 70~75% 정도 되는 건조장에서 3~7시간 가량 건조를 거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18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건조된 목기에 다시 황토칠을 하고 약간의 거친 목재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목재의 표면을 곱게 갈아줘야 한다.
그 뒤 4~5회 반복해서 칠을 해주는 것을 중칠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부터는 정제 주합칠을 사용한다.
그는 정제 주합칠을 하는 이유를 “생칠만 사용하면 순도와 내구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제칠은 변색이 없고, 강도와 투명도가 높아서 목기의 품질을 한층 더 끌어올려준다”며 “생옻을 정제한 칠을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정제 옻칠이 남원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의 일로 박 씨가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그가 정제칠을 처음 접한 것은 정수화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다.
정 선생에게 사사를 받으면서 옻칠에 대한 마인드까지 배울 수 있었다며 “정제칠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생칠 자체를 파악해야 제대로 된 정제칠이 가능하다.
정제칠은 옻칠의 다양한 색깔 표현을 가능케 한다”고 언급했다.
중칠을 거친 목기는 상칠을 통해 최종 완성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7~8회 반복해야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가늠이 간다.
이토록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순한 숟가락 하나가 완성되는데도 보름의 시간이 걸린다.
옻칠공예 가치의 재발견, 옻칠 닮은 장인 되고파
철기와 플라스틱 제품이 보편화되면서 목기와 함께 옻칠공예도 역사 뒤편으로 조용히 물러나는가 싶었지만 근래 웰빙 열풍과 함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전통기법으로 만들어진 옻칠작품은 그 빛깔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으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 인체에도 이롭기 때문에 건강이 중요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옻칠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옻칠작품은 자연의 빛을 그대로 내뿜기 때문에 바라보고만 있어도 정서를 안정시키는 매력이 있어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상류사회에서도 다시금 옻칠한 가구나 옻그릇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유기농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무공해 옻그릇이 인기다”라며 옻칠공예가 다시 주목받아 덩달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강용 옻칠장은 “긴 시간 속에서도 빛깔을 잃지 않는 옻칠은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한번 칠하면 천년의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고 고유한 빛깔로 화려하고도 고상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옻칠과 같은 무형문화재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되는 시대 가운데 전통의 가치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자 일생을 바친 박강용 옻칠장은 이미 그의 소망을 실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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