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뗏목을 짊어지고 걷는 한국 정치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5-05 23:32:50

사유화된 권력이 민주주의의 공동체를 후퇴시킬 수 있다 박범철 작가

문제는 능력이 아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를 흔드는 것은 권력을 대하는 오만한 태도다. 권력을 쥐는 순간 그것은 주권자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공공의 것이 되지만, 오늘날의 정치권은 이를 전리품이나 사적 소유물처럼 휘두른다. 권력이 사유화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기틀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스란히 인사 논란과 책임 회피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내부의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도덕적 기준이 붕괴되었다는 신호다. 잘못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책임지는 자는 없고, 원칙은 내로남불식 해석에 따라 춤을 춘다. 이때 무너지는 것은 개별 정치인의 평판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지금은 고도의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시대다. 낡은 진영 논리나 계산된 언어유희로는 더 이상 시민을 설득할 수 없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수려한 문장이 아니라,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린 선택을 기억한다. 이제 권력은 국민에게 신뢰를 강요할 수 없다. 오직 투명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뿐이다. 정치적 권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리더 아래에서 조직은 침묵의 병을 앓는다. 쓴소리를 하는 직언자는 사라지고, 맹목적인 충성이 판단을 대신한다. 책임은 늘 실무자나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지도부는 민심이라는 현실로부터 고립된다. 역사 속에서 모든 정권의 몰락은 외부의 공격이 아닌, 바로 이러한 내부의 부패와 불통에서 시작되었다.

더 위험한 것은 잘못 그 자체보다 그것을 방치하는 구조다. 한 번의 정책 실패보다 그 실수를 덮으려는 권력의 카르텔이 공동체를 더 깊이 병들게 한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면서도 내 식구의 일탈에는 눈을 감는 순간, 리더십의 도덕적 권위는 소멸한다. 신뢰는 화려한 선언문 속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순간에 원칙을 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차한 해명이 아니라 준엄한 책임이다.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책임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반드시 정점(頂點)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윗물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서 아랫사람에게 가해지는 책임은 정의가 아니라 처벌이자 꼬리 자르기일 뿐이다.

많은 정치인이 자리를 지키는 것을 정국 안정이라 강변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일시적인 공백이 아니라, 내려놓아야 할 때를 모르는 집착이다. 권력은 오래 쥘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부패한다. 떠나야 할 때를 놓친 리더는 시대의 흐름을 막아서는 거대한 장애물이 될 뿐이다. 벌구용선(筏喻龍船)이라 했다. 강을 건넜다면 뗏목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과거의 승리 공식, 낡은 이념, 기득권이라는 뗏목을 등에 짊어진 채 땅 위를 걸으려 하니 민생이 나아갈 길은 막히고 정치는 멈춰 서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가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는 단 하나, 내려놓지 못한 권력이 변화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진가는 위기에서 발휘되며, 그 완성은 내려놓음에서 결정된다. 무엇을 더 쟁취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국가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가. 그 선택이 한 정치인의 격을 결정하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묻고 있다. 당신은 그저 권좌를 탐한 탐욕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대를 책임진 지도자로 기록될 것인가.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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