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하나되는 길 단군사상에 있어
남북평화예술공연·남북평화미술전 등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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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코리아평화통일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창환 위원장이 남북평화미술전 등 통일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조국의 통일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있다. 그것도 일본에서. 코리아평화통일추진위원회 김창환 위원장은 “조국의 통일은 우리의 세대에서 반드시 책임지고 성취해야 할 의무이고 사명이다. 분단의 아픔을 더이상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평화미술전, 남북평화바둑대회, 남북평화예술공연 등 국가 차원에서 가능한 일들을 홀로 추진, 진행해왔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코리아평화통일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우선 자기 소개를 하자면
본명은 김건식(59)이고 고향은 충남 만세보령이다. 일본에는 1987년도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민단과 조총련의 분위기가 안 좋을 때였다. 한국에는 삼팔선이 있어 왕래를 못한다지만 일본에는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이유로 오갈 수 없는 현실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
당시 나는 한일간 무역업을 경영하면서 분단으로 인한 슬픈 현실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재일동포가 하나 되면 조국의 통일도 성취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조국을 위해 할일은 바로 이것이라고 느꼈고 재일동포의 화합과 통일운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5월 독일을 방문해 동서독 통일의 주역이었던 콜 전 총리로부터 한반도 통일을 위한 3가지를 제시받았다.
첫째는 통일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둘째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미 중 러 일본 등 주변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듣는 것으로 끝났다. 남북이 서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동족적인 차원에서 준비한다면 우리도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동안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91년4월24일 일본 치바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 남북통일팀이 단체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을 할 때이다. 당시 민단의 단장과 조총련의장이 중심이 돼 응원단을 구성, 합동응원을 했다. 이 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날 때이다. 나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할 때를 맞춰 신쥬쿠 미센소 야끼니쿠집에서 민단과 조총련, 일본인 등 100여명을 초청해 축하만찬회를 개최했다. 반세기만에 열린 남북수뇌 회담에 열렬이 박수를 보내며 민단, 총련, 일본 할 것 없이 한마음이 돼 기쁨을 같이했다.
세 번째 기회는 2006년 5월 17일 하병옥 단장을 비롯해 민단측 7명과 서만술 의장을 비롯한 조총련측 7명의 간부가 만났다. 이들은 서로 부등켜안고 한동안 떨어지지 않고 기뻐했다. “왜 우리들이 이제야 만나야 하는가 늦기는 했지만 민단 총련 가리지 말고 우리 동포들끼리 자주 만납시다”라면서 2시간 동안 진행된 감동의 시간들을 일본의 미디어들도 크게 전했다. 나도 당시 취재원으로 참가했는데 그날의 벅찬 감동과 기쁨은 잊을 수 없다.
재일동포가 하나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민단측 일부 반대파들에 의해 40일만에 분열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하병옥 단장이 제명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민단이다, 총련이다 하는 간판이 문제이다. 지금도 감투를 위해 암투가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양 단체의 100억이 넘는 운영비를 재일동포들의 복지와 교육비 등에 사용하면서 양측이 힘을 합해 화해와 일치의 방법을 찾는다면 분명히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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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코리아평화미술전 개회식을 마치고 남북화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김창환 위원장. |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평화미술전을 일본에서 개최했는데
1991년 봄부터 5년간 조총련과의 교섭을 통해 1995년 10월 코리안평화미술전이라는 주제로 성사시켰다. 당시 북한 작가 5명, 남한 작가 30명이 참가해 각각 100여점씩의 작품을 가지고 일본열도를 순회하면서 전시회를 가졌다.
특히 제1회 동경 하라쥬쿠 전시회와 2회 이케부쿠로 전시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남북한 작가들은 서로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감격했다. 남북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현실에 일본인들까지도 감동했다. 그후로도 계속적으로 전시회를 열어나갔다. 2010년까지 약 100여회 일본 전국을 순회하면서 미술전을 개최했다.
역사적인 조총련 방한 예술공연을 주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00년 12월 14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분단 반세기만에 방한한 조총련의 예술단이 서울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예술단은 ‘재일본조선중앙예술단’으로 출발해 훗날 김일성 주석이 ‘금강산가극단’이라고 직접 이름을 지어준 60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명성있는 예술단이다.
이 공연도 조총련과 3년 이상 교섭 끝에 2000년 12월 극적으로 성사시킨 것이다. 당시 금강산가극단은 리틀엔젤스회관에서 4회에 걸쳐 공연을 했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감동의 장이 됐다.
한국은 물론 일본의 미디어들까지도 특집으로 다뤄 그 반응은 대단했다. 또한 이 공연에 참가한 예술단원 60명과 스텝진 20명의 원고향이 대부분 남한이었다. 이들의 고향에서 친척들까지 찾아와 숙소였던 서울 워커힐은 예정에 없던 이산가족 상봉으로 연일 눈물바다가 되었다.
남북바둑대회도 주최했다
2001년 봄 조총련 9명, 민단 3명 총 12명을 데리고 서울을 찾아 한국아마츄어 바둑회와 바둑교류회를 가졌다. 당시 바둑회 총재였던 한화갑 의원의 후원으로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학생들과 친선대국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 라 1998년부터 코리아평화바둑회를 설립해 매년 3~4회씩 민단과 조총련이 참가하는 원코리아바둑대회를 개최, 바둑을 통한 재일동포의 화합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진행해 왔다.
이방자비 숭덕회 회장 활동도 한다
이방자 여사는 일왕의 조카로 태어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 공의 비가 됐다. 황태자비 신분이지만 장애자 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장애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등 존경받는 인물이기에 1998년 4월 한일우호친선을 위해 이방자비숭덕회를 만들어 일본의 젊은세대들에게 기념강연회, 유작품전시회를 하고 있고 있다.
그가 한국에 설립한 명휘원학교, 지혜학교, 그가 살던 창덕궁 낙선재 등을 방문하며 금곡의 영친왕 방자비 산소참배 등을 하고 있다. 2001년 11월 4일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동경프린스호텔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했고 현재는 동경에 방자비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동경지역의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100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2002월드컵 당시 한일이 하나돼 응원을 했다던데
당시 일본과 한국의 시합이 있는 날이면 민단, 총련, 일본인 등 수백명이 일본 신주쿠 코리안타운에서 모여 합동응원을 했다. 당시 한반도 통일기를 들고 신주쿠역까지 행진을 했는데 뒤를 보니 수백명의 일본인들이 한반도 깃발을 뒤따르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월드컵 첫 시합으로 부산에서 한국과 폴란드전이 벌어질 때에는 민단, 총련, 일본인 등 300여명이 합동응원을 했다. 한국이 2:0으로 승리하자 다같이 한마음이 돼 기뻐하고 축하했다. 그 감동의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후원자 없이 이런 행사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나의 소원은 한반도 통일이다. 반드시 이 시대에 성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이시대에 숙명적인 일이 있다면 조국 통일이다. 하지만 이 통일운동을 한국정부도, 북한도, 민단도, 조총련도 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기에 운명으로 알고 추진해왔다.
아쉬운 것은 후원자 없이 홀로 일을 추진하다 보니 할 일을 재대로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조국의 통일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남은 여생 헌신하고자 한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이 있다면
남북이 단군정신으로 돌아가면 하나가 될 수 있다. 김일성 주석도 죽기 전에 “우리민족의 조상이 단군이니 단군을 잘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북한에 단군묘가 세워졌다. 단군의 ‘경천애인 홍익인간’의 사상은 남북이 공통으로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사상이다. 일본 평화론자 사이고 타카모리의 사상도 경천애인이다. 우리의 단군사상은 남북통일뿐만 아니라 한일간 맺힌 우호관계에도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위해 한국정부와 남북한 국민들에게 한마디
말만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는데 실천 없는 말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먼저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적대하면서 통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서로가 단군의 후손이고 형제이고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조건을 붙이지 말고 서로 도와주며 사랑할 때 서로의 가슴에 쌓였던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고 통일의 기운이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업지구 활성화 그리고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을 통해 남북간에 적극적인 교류와 대화를 추진하면서 간격을 좁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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