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강근호실', ‘강근호 교육관' 개관
강근호 애국지사
1917년 길림성 용정촌에서 3ㆍ1만세 운동 참여 후 신흥무관학교 입교
졸업 후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에 가담
1920년 청산리대첩 당시 1중대장으로 선봉에 서 혁혁한 공로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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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재 53사단 코끼리여단은 17일 순국선열의날을 맞아 애국지사 '강근호실', '강근호 교육관' 개관식 행사가 끝난 뒤 군 관계자가 유족들에게 '강근호실'의 교육자료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제53사단 제공 |
[로컬세계 부산=전상후·맹화찬 기자]1920년 '청산리대첩' 당시 '제1중대장'으로 선봉에 서 혁혁한 공을 세운 고 강근호 애국지사가 군 장병 곁에 다시 부활했다.
육군 '제53보병사단 코끼리여단은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부대 내 전투협조실과 예비군 안보교육관을 ‘애국지사 강근호실’, ,‘강근호 교육관'으로 새롭게 단장,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은 “만주벌의 이름 없는 전사들을 위해 비석을 세워달라"는 고 강근호(1898~1960) 애국지사의 유지를 조금이나마 받들겠다는 취지로 열렸다.
행사는 개식사로부터 제막, 묵념, 추모영상, ‘애국지사 강근호실’, ‘강근호 교육관’ 소개순으로 진행됐다.
고 강근호 지사의 아들 강귀철 대표와 딸 강정화 여사를 비롯해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 등의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강근호실과 교육관 내부는 강근호 지사의 약력과 공적, 청산리 대첩과 6ㆍ25전쟁 활약상, 아내 이정희 여사 소개 등 위국헌신을 몸소 실천한 강 지사와 이 여사의 일대기가 스토리텔링식으로 구성돼 있다.
강 지사는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북로군정서 선봉 중대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공복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8기(4차)로 임관해 6ㆍ25전쟁에 참전했다.
강 지사 장남 강귀철 대표는 “애국지사 강근호실과 강근호 교육관을 개관하는 등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줘 감사하다”며 “군 장병 모두가 올바른 안보의식을 함양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강한 군대가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제53보병사단 코끼리여단장(노현석 대령)은 “항일운동 역사를 재조명하고 전 장병과 함께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여단 전 장병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정신적 지표로 삼아 ‘강한 육군, 자랑스런 육군’ 건설에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부대는 ‘애국지사 강근호실’을 전투협조실 용도 외에도 전입 장병, 방문객, 모범장병을 대상으로 안보현장 견학코스로 활용할 계획이다.
‘강근호 교육관’은 예비군들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부대는 각종 기념일과 정신전력교육 간 해운대 일대에 위치한 모정원(故강근호 지사의 생가 및 추모비 위치)에서 장병 항재전장의식 함양과 호국의지 계승을 위한 안보답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 참고자료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소개 : 1898년 11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났다. 1916년 만주로 망명한 뒤, 1917년 길림성 용정촌에서 3ㆍ1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 후에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에 가담해 1920년 청산리 대첩 당시 1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이후 공산주의 반대 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른 뒤 만주로 탈출해 항일운동에 전념했다. 공복 이후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4차)로 입교했으며,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03사단 121연대장으로 참전하였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주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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