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소・중 연합 4개국은 처음에는 [그림 1]처럼 일본을 분할 점령해서라도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로 합의한다. 미국은 혼슈 중앙 부분과 오키나와를 포함한 류큐제도, 소련은 홋카이도와 혼슈 동북 지방, 중화민국은 시코쿠, 영국은 혼슈 서부와 큐슈를 각각 점령하여 통치하고, 도쿄는 4개국이, 오사카는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통치하자는 안이다. 하지만 미국 원자폭탄에 의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미국의 오키나와에 대한 욕심으로 일본 분할 점령은 무산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으로 자리를 넘겨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공산국가인 소련의 홋카이도 점령은 홋카이도를 영원히 소련에 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트루먼은 오키나와에서 전쟁을 치러본 경험상, 오키나와가 천연 요새라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위치로도 오키나와만 점령하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사정권에 둘 수 있다는 흑심 때문에 오키나와를 미군 기지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은 유일한 핵무기 보유 국으로 절대적인 지위에 있기에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 만주국은 일본이 세운 위성국가라는 이유로 강제 해산하고도 위성국을 세운 본체인 일본은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제2차 대전을 도발한 확실한 전범인 일왕 히로히토는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직후인 1945년 8월 29일 ‘미국의 항복 직후 일본에 대한 초기 정책(United States Initial Post-Surrender Policy for Japan)’이라는 점령 정책을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에게 보내서 ‘최고사령관은 미국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일왕을 포함하여 일본 정부 기관을 통해서 권한을 행사할 것’을 지시하는 바람에 일본 전범을 처벌하는 도쿄재판에 일왕은 물론 731부대 간부 등 많은 주요 전범을 기소조차 하지 않아서 독일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과는 완전히 비중이 달랐다.
일본은 여러 경로로 연합군 사령관인 맥아더를 통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 왔다.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이 만주국 하얼빈에 있던 731부대의 실험 결과 기록을 전부 넘겨주는 조건으로 731부대 핵심 인물들을 전범에서 제외하고 사면해 달라는 것이다. 소련의 만주 공세작전이 시작되자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 주요 전범들은 귀중한 자료들을 챙겨서 한국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소련에 체포되지 않고 일본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그리고 731부대 중령으로 복무했으나 통역을 가장해서 접근한 나이토가 일본의 세균전을 조사하는 미국 머레이 샌더스 대령에게 731부대의 상세한 전모와 그 연구 내용 모두를 제공할 것이니 일왕을 필두로 한 731부대 간부들의 전범 면책을 요구했다. 731부대 보고서에 욕심이 난 샌더스는 즉각 맥아더에게 보고하면서 면책해 줄 것을 주장했고 맥아더가 받아들여 승인함으로써, 희대의 악마 집단인 731부대 설립을 주도한 일왕은 물론 731부대 간부들은 면책되었다.
도쿄 전범 재판에서 일왕을 아예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731부대 전범들을 모두 기소조차 하지 않고 사면한 것이다. 더더욱 미국은 오키나와에 각종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일본을 공동 점령하기로 했던 나머지 연합국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소련에 할애하고, 아시아 시장 개척을 꿈에도 그리던 영국에게는 홍콩을, 만주를 지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꿈에서나마라도 만주를 정복해 보는 것이 소원인 한족 중국에 만주를 할애하는, 동북아 영토 유린 잔치를 벌였다.
미국이 앞장서서 연합군을 제2의 침략군으로 변모시켰다. 그 바람에 1869년 일본에 병탄 된 아이누족의 영토인 홋카이도와 사할린 및 쿠릴열도, 1879년에 일본에 병탄 된 류큐국의 오키나와가 독립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사할린과 쿠릴 열도는 소련에 강점되고 홋카이도는 패전국 일본에 잔류하게 되었으며, 오키나와를 비롯한 류큐제도 역시 일본에 잔류함으로써 일본은 패전국이면서도 승전국 이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기현상을 연출하였다.
만주국이 일본의 위성국가라는 이유로 해산하면서, 아시아 각국을 무차별하게 침략하고 잔혹하게 살상하면서 위성국가를 탄생시킨 침략 본체 일본에는 영토를 더 얹어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영토를 본래 영토권자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영토문화론’에 의해서 영토권자가 정의 되어야 하건만, 원칙도 없는 연합국끼리의 나눠 먹기식 동북아 영토 유린으로 역사가 엄벌할 횡포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