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민 ‘살해’ 적대감 키운 양단정치 반성해야
자작극-음모론 난무 여전…사건의 본질 흐려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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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국민의 눈높이 정치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당리당략의 정치에만 몰두한 양당대립이 정치인 테러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테러가 정치혐오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혐오정치가 국민정서를 심각하게 황폐화 시키고 있는데도 양당정치 지도자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일부 이긴 해도 이 대표의 피습사건을 놓고 자작극-음모론 등의 뉴스를 양산하며 ‘네탓내탓’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한 것은 지난 2일 새해 첫 지역 일정으로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내가 이재명'이라고 쓰인 파란색 종이 왕관을 쓴 60대 남성은 지지자인 척 접근해 흉기로 이 대표의 목 부위를 찔렀다.
◆평범한 소시민의 믿기지 않는 피습
현재까지 파악된 피의자 정보는 충남 아산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1957년 생 김모 씨(67)다. 중간 수사결과 범행 동기는 ‘정치혐오’에서 비롯됐고, 결국 ‘이재명’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살해’를 결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습범 김씨에 대한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와야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겠지만 일각에서는 양극단 정치 부작용을 지목했다. 김씨와 같은 정치 테러범을 양산하기까지 상대 당에 대한 적대감을 심고 부추긴 정치권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양당 정치는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나 증오를 부추겨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방향으로 치달았고, 이와 같은 정치 문화 속 형성된 편향된 정치 인식이 끝내는 정치 테러범을 양산하는 환경을 만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현재 우리정치는 대화와 화합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양극단으로 갈라져 상대를 미워하고 불신하며 증오심만 부추기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대립과 갈등만 조장되고 있다.
◆대화와 화합의 봄은 언제 오나?
문제는 평범한 소시민이 어떻게 이러한 대형 사고를 칠 수 있을까 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혐오정치의 트라우마가 몸속에서 자라면서 정신장애를 일으켜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피습범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출신으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며, 5년간 새누리당 당원으로 지낸 뒤 2022년 민주당에 입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새누리당 입당 동기와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유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범인은 최근 6개월 동안 사무실 월세를 납부하지 못했고, 은행 대출도 연체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대에서 연구한 심각한 정치혐오 사건들
댓글 3000여만건, 반대편 모욕 비하 멸시 위협
이재국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정치적 혐오를 방치하고 키우면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치적 혐오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때 두드러졌다. 지난해 성균관대 연구팀이 대선 관련 뉴스 댓글 3000여만 건을 분석한 결과, 둘 중 하나는 정치적 반대편을 모욕·비하·멸시·위협하는 혐오 표현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은 일반대중 차원의 혐오 확산은 정치권 및 각종 미디어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선거 기간 각 정당의 대표와 국회의원, 유튜버를 비롯한 지지자 등은 정치적 혐오 표현을 매일 같이 쏟아냈다. 김씨는 아마도 이와 같은 혐오 표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서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사례가 몇 년 전 미국에서 있었다. 2021년 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소집된 의회를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사망자까지 발생한 이 사건과 트럼프의 연관성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재임 기간 트럼프의 혐오 발언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선거유세를 진행한 지역에선 증오범죄가 이전보다 2.3배 늘었으며, 트럼프 당선 이후 증오범죄 경찰 신고 건수가 전국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트럼프의 정치적 혐오 발언과 일반대중들의 증오범죄 사이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대표에 대한 김씨의 증오는 “죽이려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 증오의 근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정신적 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김씨가 살아왔던 이 사회의 어떤 메커니즘이 그의 마음속에 혐오의 씨앗을 뿌리고 자라게 했을 것이다. 혐오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상대 집단에 대한 편견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상대 집단에 대한 거부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심리학자 올포트는 이러한 거부 행동의 유형을 적대적인 말-회피-차별-물리적 공격-절멸의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김씨의 행동은 이 가운데 상대 집단의 완전한 제거를 의미하는 절멸의 바로 전 단계인 물리적 공격이었다. 아마도 김씨는 이번 사건 이전 민주당 또는 이 대표에 대한 적대적인 언어를 수시로 사용했을 것이고 민주당 지지자를 피하거나 차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씨의 마음속에 증오가 타오르게 한 것은 결국 정치적 반대편을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적대적인 언사와 회피, 차별의 거부 행동을 일삼는 정치와 미디어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정치에는 반대편을 존중하거나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상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엘리트들이 지지 세력을 키우고자 반대편을 적대시하고 혐오 표현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각종 미디어는 상업적·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중간층은 점차 사라지고 양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일반대중의 양극화가 진행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집단과 반대편으로만 사회를 인식하게 되며 상대를 절멸해야 할 집단으로 생각해 공격에 나서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게 된다.
◆혐오정치 없애려면 정치집단 냉철한 자성필요
이러한 혐오정치로 파생되는 폭력을 없애려면 정치 엘리트집단의 자기반성과 냉정한 성찰, 미디어 메커니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정치문화를 개선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제2, 제3의 정치테러범이 양산 될 것이다. 지금의 혐오정치는 국민을 네편 내편으로 갈라 치고 트라우마를 키워 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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