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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쇄신파 구상찬, 임해규, 권영진, 남경필 의원(왼쪽부터)이 20일 국회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단체장 및 기초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에 제안하고 있다. |
총선 앞두고 지방정가 ‘술렁’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방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일부 기초단체장들이 선거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도 단체장의 눈치를 보게 돼 총선을 앞두고 지방정가의 정치적 중립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양형일 민주통합당 광주 동구 예비후보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하는 정치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말라”며 관권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양 후보는 동구청 소속 동장모임에 박주선 현 의원이 참석해 도와달라고 지지를 호소했고 일부 동장들이 ‘자신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동장모임을 주관한 유태명 동구청장에게는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박 의원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동구청 동장 모임에 참석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양 후보는 네거티브를 중단하고 건전한 정책선거에 임해달라”고 반박했다.
민주통합당 소속인 김일태 영암군수는 최근 영암군선관위로부터 선거 중립을 지킬 것을 권고 받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황주홍 전 강진군수의 출판기념회에서 참석해 황 전 군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날 김 군수는 김옥두 전 의원의 축사 도중 단상에 올라 김 전 의원, 황 전 군수, 이명흥 장흥군수와 손을 잡고 “우리가 하나 됐습니다. 여러분도 하나가 돼주세요”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선관위 선거 중립 권고에 대해 김 군수는 “당시 김 전 의원이 호명해 단상에 올라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총선 후보자를 지지하는 등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케 하는 사례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광주의 A구청장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자신을 지원해준 현역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지지발언을 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공공연히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 B시장은 최근 트위터 쪽지를 통해 특정 후보의 출마를 비판하는 글을 전달하다가 공개돼 선관위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눈밖에 나면 끝장” 소속 정당 지구당위원장에 줄서기
중앙당 공천제가 주범
총선을 앞두고 일부 기초단체장들이 국회의원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히는 원인은 현행 하향식 정당공천제도 때문이다.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중앙정당이 기초단체장 후보를 공천하도록 하는 ‘정당공천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기초단체장들이 자신들의 재선, 3선을 위한 ‘동아줄’로 국회의원 후보자를 따라다니면서 정작 투표권 가진 시민들은 외면당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공천권을 가진다. 2년 후 있을 지방선거에 재선 또는 3선을 노리는 단체장들이 자신들의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일부 단체장들은 자신을 살릴 동아줄이 누구인지 유심히 살펴보거나 자신과 친분이 깊은 같은 당 소속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출판기념회와 사무실 개소식 참석은 물론 ‘1일 환경 미화원 체험’ 등 노골적인 동반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과 밀접한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서는 정치적 논란도 불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광주의 모 구청장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자신을 공천한 현역 의원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자신과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겪는 특정 후보를 배제하기도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천문제를 비롯해 현역의원과 갈등을 겪은 단체장들은 이런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국회의원 후보들도 단체장들이 갖고 있는 ‘강력한 실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단체장은 행정적으로 읍면동을 장악하고 있으며 새마을협의회 등 관변단체에 영향을 끼쳐 ‘조직표’를 동원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또한 동네 산악회, 조기 축구회 등을 통해 지역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막강한 정보력도 가진다.
수백표 차이로 당선 유무가 갈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체장들의 직·간접적인 지원은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출판기념회와 사무실 개소식에 당대표 등 중앙 유력정치인과 함께 해당 지역구 단체장들이 초청 1순위로 뽑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전문가는 “관권선거 유혹에 빠지는 데에는 국회의원의 공천권 때문”이라며 “상향식 공천과 함께 중앙집권적인 정치독점구조를 지방분권적인 자치구조로 전환해야 단체장 선거 중립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정치공무원 총선 줄서기 나서
일부 정치공무원들의 총선 줄서기는 단체장 총선 개입과 함께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는 문제 중 하나다.
18대까지 치러진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 역사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논란은 계속 제기돼왔다.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선출직 선거에서의 줄서기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무원 복무규정 등 현행법상 공무원은 선거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일부 정치공무원들이 단체 명의를 사용해 선거에 개입해 온 것이다. 이들은 선거철만 돌아오면 자신이 지원하는 후보에게 상대편 후보의 불리한 정보를 건네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 또는 자신의 업무를 등한시한 채 선거 유세판을 기웃거리는 직무유기를 일삼았다.
지난해 10월26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경북 칠곡군청 B과장 등 일부 간부공무원들이 칠곡군수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지원한 정확이 선거관리위원회에 포착됐다. 이들은 A후보 측과 선거 정책 공약 내용을 주고받거나 A후보의 정책 공약 내용을 공무원 내부 통신망에 띄워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단체장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공무원들의 후보자에 대한 줄서기로 70여일로 다가온 총선이 조기에 과열되거나 혼탁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선거운동으로 적발된 건수는 442건에 이른다.
정당공천제 폐지로 의원·단체장 밀월 끊어야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가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공생관계를 끊을 수 있는 해답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16일 대전시 유성구에서 시도지역회장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2년 첫 공동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고 중앙정치권에 촉구했다.
이들은 지방정치와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지역주민의 생활에 기초한 실질적 지방자치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현행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가 지난해 선출직 공직자를 포함한 교수와 연구원, 공무원 등 행정전문가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협의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들 행정전문가 중 184명은 지방자치제도상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과제로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지적했다. 이는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찬성한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도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쇄신파 남경필, 김정권, 구상찬, 김세연 의원 등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제안했다.
배덕광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천폐지 특위위원장은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는 긍정적 효과보다 공천에 따른 잡음, 편가르기식 선거양상 등 부작용이 더 많이 유발하고 있다”며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만큼 정당공천제 폐지에 전력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1.27 (금) 16:56, 최종수정 2012.01.27 (금)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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