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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 인근 허난설헌 생가를 방문한 학생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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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다. 겨울의 칼바람을 피해 구들장에 몸을 지지면 천국이 따로 없다. 잘 마른 소나무 장작을 아궁이에 넣으면 장작 타는 정겨운 냄새가 뒷마당을 가득 채운다. 황토 굴뚝에선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불 깔아둔 아랫목은 뜨끈뜨끈하다. 밤이면 창호문에 은은한 달빛이 새어든다. 마당과 돌담을 따라 거니는 것도 즐겁다. 겨울철 여행지를 고민 중이라면 전통 한옥으로 떠나는 건 어떨까. 전국에 있는 한옥민박집을 소개한다.
월인당 주인 내외가 마루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뜨끈뜨끈 황토 구들방 체험 ‘월인당’_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자리 잡은 월인당(月印堂)은 추억 속 ‘구들장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박한 한옥 민박집이다. 모정마을 토박이인 김창오 씨가 5년 전에 지었다.
내력 있는 종택도 유서 깊은 고택도 아니지만 주말마다 예약이 밀려든다. 황토 구들방에 등 지지는 맛이 각별해서다. 규모는 단출하다. 방 세 칸에 두 칸짜리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가 전부다.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로 대신하고, 넓은 안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방 세 칸은 모두 구들을 넣고 황토를 깐 위에 한지장판을 바른 ‘장작 때는’ 방이다. 바닥은 뜨끈하고 위는 서늘하니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하는 구조다. 덕분에 집주인은 손님맞이 하루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가 따른다. 바깥주인의 ‘장작 때는’ 수고보다 한수 위는 안주인의 ‘풀 먹이기’ 정성이다. 한번 사용한 이불은 세탁 후 일일이 풀을 먹여 내놓는다.
삼면이 툭 트여 햇살과 바람과 달빛이 드나드는 누마루는 차 한 잔의 여유나 술 한 잔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정자 역할을 한다. 월출산 위로 보름달이 뜨는 밤 누마루에 나와 앉으면 안마당이 달빛으로 환하다.
월인당에 숙박하면서 돌아보기 좋은 곳은 구림마을, 도기박물관, 도갑사, 왕인박사유적지 등이다. 구림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돼 2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영암 3.1운동의 발상지였던 회사정, 도선국사 탄생설화가 얽혀 있는 국사암, 한석봉과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으며 그 현판을 한석봉이 직접 썼다는 육우당 등 사연 깊은 장소들이 마을 전체에 흩어져 있다.
왕인박사유적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 한자와 유교를 전해 아스카 문화를 싹틔운 것으로 알려진 왕인박사의 자취를 사당과 전시관, 탄생지, 석상 등으로 복원해 놓았다.선교장에 마련된 다도체험실 모습.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한옥 ‘선교장’_강원 강릉시 운정동 431
강릉 선교장은 강원도뿐 아니라 전통 한옥 중에서도 원형이 가장 잘 유지된 집이다. 안채, 동별당, 서별당, 열화당, 활래정 등 100여 칸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살림집 면모 그대로다. 집 뒤로 수백 년은 족히 됐음직한 노송들이 우거진 숲을 이룬다. 긴 행랑 사이로 날아갈 듯 사뿐히 치켜 올린 고옥의 추녀가 그 역사를 대변해 준다. 집 구석구석 예스러움이 묻어나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이다.
처음 선교장을 지은 건 조선 효령대군의 11세손 이내번 씨다. 지금은 이내번의 9대손 이강백 씨가 선교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잊혀가는 선교장을 새 단장했다. 한옥체험을 하며 편히 쉴 수 있도록 홍예헌, 초정, 초가 등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실내에 부엌, 샤워실,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열화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체험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다양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한과 만들기, 떡 만들기, 서예 등이 마련돼 옛 문화를 체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교장 앞에는 네모난 연못과 활래정이란 소담스런 정자가 있다. 옛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이곳에서 배우는 다도체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인근에는 경포호와 경포대가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경포호에서 보는 겨울 철새들의 모습은 호수에 생동감을 더한다. 초당 순두부마을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도 둘러보면 좋다.황산마을의 한 한옥민박집에서 주인이 말린 농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흙담길 따라 걷는 한옥마을 ‘황산마을’_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일원
거창 황산마을은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한옥 50여 채가 모여 있다. 한옥들은 대부분 안채와 사랑채를 갖춰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황산마을의 자랑은 한옥보다는 흙담길이다. 담장 위에 얹어놓은 여러 겹의 기와가 독특하고 이채롭다. 이끼가 내려 앉은 기와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것만 같다. 황산마을의 흙담은 물빠짐을 위해 아랫단에는 제법 커다란 자연석을 쌓았고, 윗단에는 황토와 돌을 섞어 토석담을 쌓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등록문화재 259호로 지정됐다.
황산마을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그냥 발길 닿는 데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낮은 담장길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면 마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문풍지를 발라 놓은 곁문들과 툇마루,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항아리 등 우리네 전통가옥에선 푸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황산마을은 현재 10여 가구에서 민박손님을 받고 있다. 아직도 장작불을 들이는 방을 가진 집도 있다. 밤이면 문살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새어든다. 소쩍새 소리와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다. 문을 열고 마당을 나가면 대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을 앞에 있는 수승대는 꼭 들러보길 권한다. 거창 제일의 명소이자 덕유산이 간직한 절경이다. 수승대의 명물은 계곡 한 가운데에 자리한 거북바위다. 머리와 등짝이 꼭 거북을 닮았다. 바위둘레에는 이황 선생의 옛 글도 새겨져 있다. 수승대를 지나면 송계사가 나온다. 덕유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고찰이다. 절로 드는 길이 운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전주를 대표하는 명품 한옥 ‘학인당’_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전북 전주시에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도심형 슬로시티다. 이곳 한옥마을은 1930년경 형성됐다. 일본인들이 상권을 넓혀오자 전주의 부호들과 유림들이 경기전과 향교가 있는 교동과 풍남동에 한옥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을 대표하는 집은 근대 상류가옥인 학인당이다. 이 집은 인재(忍齊) 백낙중이 1908년에 지었다. 건축기간은 2년6개월이 걸렸고 나무들은 모두 압록강, 오대산 등지에서 가져왔다. 동원된 도편수와 목공 등 인부의 수만도 4000명이 넘었다.
이 집의 본채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실내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천장을 2층 높이로 만들고 건물 안쪽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전주최초의 공연장으로 사용됐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과 해공 신익희 선생도 머물렀었다.
학인당에는 본채 외에 별당채와 사랑채가 있다. 두 건물은 여행자가 숙박할 수 있는 객실로 구성됐다. 객실은 대부분 단독 화장실을 갖췄지만 장작불을 때는 구들방은 외부에 만들었다.
마을 중심에 있는 동락원은 전주기전대학 부설기관이다. 숙박과 다양한 전통체험을 할 수 있다. 한복과 우리예절체험, 다례체험, 전주전통비빔밥체험, 인절미떡메, 소리체험, 한지공예, 김치체험 등 3~10명 이상이 신청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마을의 정신적 중심지는 전주향교(사적 제379호)다. 학인당에서 5분 거리다. 현재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계성사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인근에 있는 완판본문화관, 남부시장, 루이엘모자컬처센터 등도 함께 방문하기 좋다.
집집마다 신라 천년의 향기 가득 ‘경주 고택’_경북 경주시 일원
한옥 민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택에서의 하룻밤이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는 월암재, 서악서원, 도봉서당, 종오정, 독락당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이 고택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정자, 서원, 재실 등으로 사용됐다. 잊혀가던 문화유산들은 묵은 때와 세월의 먼지를 말끔히 털어내고 이제 고택숙박체험지로 거듭났다.
월암재(탑동 749-2)는 일(一)자형 독채다. 임진왜란 때 부산 첨사로 재직하면서 공을 세웠던 김호 장군의 정자다. 벚나무 고목 서너 그루가 출입문 양쪽을 호위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주변으로는 나정, 양산재, 포석정, 삼릉, 창림사지(최초의 궁궐 터), 경주 남산이 있다.
서악서원(서악동 615)은 조선 명종 18년(1563) 경주 부윤 이정이 김유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영귀루라는 누각과 강당인 시습당과 사당이 차례로 배치돼 있다. 동재와 서재, 시습당이 숙박 체험 장소로 활용된다. 사전 예약하면 1인당 2000원의 비용으로 다도체험이 가능하다. 주변에는 태종무열왕릉이 있어 산책 코스로 알맞다.
종오정(손곡동 375)은 입구에 연못이 조성돼 경관이 아름답다. 종오정과 그 주변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최치덕의 유적지라고 한다. 최치덕이 돌아가신 부모를 제사 지내기 위해 일성재를 짓고 머무르자 그의 학문을 배우러 따라온 제자들이 종오정과 귀산서사를 지었다. 종오정, 귀신서사, 일성재에서 각각 2개의 방이 숙박시설로 활용된다.
인근에 있는 신라밀레니엄파크도 좋은 나들이 코스다. 선덕여왕 드라마 촬영장, 화랑공연장, 신라궁궐, 토우공원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강·호수와 어우러진 한옥 ‘팜카티지’_경기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
팜카티지는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한옥 숙소다. 홍천강과 청평호의 경계에 자리 잡았다. 은사시나무에 둘러싸인 한옥 2채는 고요한 풍취의 청평호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곳은 잠실 풍납토성에 있던 200여년 된 가옥을 1980년대에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이 조성되면서 한옥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아쉬워한 주인이 구입해 청평호 자락으로 한옥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복원에만 4년이 걸렸다.
한옥 2채는 250여년 된 성춘제와 150여년 된 천리제로 나뉘며 10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성춘제는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다. 넓은 대청마루를 끼고 있는 ‘ㄱ’자 구조의 안채에서는 옛 선인들의 풍류가 느껴진다. 건너편 사랑채는 툇마루를 사이에 두고 견우방과 직녀방이 있으며 뒷문은 아름다운 잣나무 숲으로 연결된다. 이곳은 영화 ‘비밀애’의 배경으로 사용됐다.
천리제는 서양식 벽난로를 갖춘 부엌이 인상적이다. 벽송산방은 온달방, 평강방으로 나뉘며 아늑한 마당을 끼고 있다. 투숙객 대부분은 주변 홍천강가나 소나무 숲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팜카티지에서 나와 청평호를 끼고 달리면 신나는 드라이브길이 이어진다. 인근에 있는 장락산은 토종 식물들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호수를 즐기려면 청평, 가평읍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좋다.
뉴스룸 =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사진·자료 = 한국관광공사
- 기사입력 2011.12.02 (금)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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