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 위에 반짝이는 2천 개의 등불… ‘황거 치도리가후치 등불 띄우기’ 7월 22~23일 개최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7-17 06:51:43
“치요다에서 세계로, 모든 소망을 하나로” 슬로건 내걸어
전쟁의 상흔 위로하던 ‘치유의 빛’
[로컬세계 = 이승민 도쿄특파원] 도쿄를 대표하는 벚꽃 명소인 황거 치도리가후치(皇居 千鳥ヶ淵)에서 여름밤을 수놓는 대표 행사인 ‘황거 치도리가후치 등불 띄우기(皇居千鳥ヶ淵 灯ろう流し)’가 오는 7월 22일과 23일 이틀간 열린다.
이번 행사는 치요다구(千代田区)와 치요다구 관광협회가 공동 주최하며, 치도리가후치 보트장부터 녹도(緑道), 구단자카 공원(九段坂公園) 일대에서 개최된다. 행사 시간은 오후 7시부터 8시까지이며, 우천이나 기상 악화 시에는 취소될 수 있다.
전쟁의 상흔 위로하던 ‘치유의 빛’… 60여 년 이어온 평화의 역사
치도리가후치 등불 행사의 첫 불씨가 켜진 것은 1958년(쇼와 33년)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흔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전쟁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고, 전몰자들의 영혼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 땅에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치요다구 주최로 첫 행사가 마련됐다.
당시 ‘치요다구 납량의 밤(千代田区納涼の夕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도쿄 시민들에게 단순한 피서(避暑)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평화를 다짐하는 치유의 장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매년 여름의 길목에서 치도리가후치의 밤을 밝혀온 이 행사는 도쿄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오던 행사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잠시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방역 조치가 완화된 2022년, 약 3년 만에 극적으로 재개되면서 일상의 회복과 서로에 대한 안부를 확인하는 또 다른 ‘희망의 빛’이 되어 지금까지 변함없이 수면을 채워오고 있다.
벚꽃 대신 수놓는 2천 개의 등불… 직접 참여하는 두 가지 방법
치도리가후치는 봄이면 수백 그루의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일본 최고의 벚꽃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여름에는 벚꽃 대신 2천 개의 등불이 황거 해자의 수면을 은은하게 밝히며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올해 행사는 '치요다에서 세계로, 모든 소망을 하나로'라는 슬로건 아래, 세계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뜻을 가득 담았다. 행사 참가 방법은 '선상 등불 띄우기'와 '일반 등불 띄우기' 두 가지로 운영된다.
선상 등불 띄우기 (추첨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보트를 타고 직접 등불을 띄우는 선상 체험이다. 참가자는 보트 위에서 직접 소망을 적은 등불을 해자에 띄울 수 있으며, 수면 위를 가득 메운 등불 사이를 항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운영 규모: 하루 60척 한정 (보트 한 척당 최대 3명 탑승 가능)
· 참가비: 1척당 1만 2,000엔 (등불 3개 및 보트 이용료 포함)
· 진행 시간: 승선은 오후 6시부터 순차적으로 시작, 행사는 오후 7시~8시 진행
· 기부 활동: 참가비 일부는 치도리가후치 벚꽃 경관 보존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
일반 등불 띄우기 (사전 구매제)
보트에 탑승하지 않아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자는 인터넷으로 등불을 미리 구매한 뒤 행사장에서 QR코드를 제시해 등불을 수령하고, 원하는 메시지를 직접 적을 수 있다. 이후 행사 진행요원이 참가자를 대신해 해자에 등불을 띄운다.
· 가격: 등불 1개당 2,000엔 (※ 현장 판매 없음, 매진 시 판매 종료)
일본 여름을 대표하는 풍물시와 주변 즐길 거리
등불 띄우기(灯ろう流し)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문화행사 가운데 하나로, 가족의 건강과 행복,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 그리고 평화와 희망을 담아 물 위에 등불을 띄우는 전통 행사다.
도쿄의 중심인 황거 해자를 따라 펼쳐지는 치도리가후치 등불 띄우기는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과 수천 개의 등불이 어우러져 매년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는 축제와 함께 주변 풍경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저녁 더위 식히기 추천 스폿’도 제안한다. 행사장 주변에는 황거 산책로와 일본무도관, 야스쿠니 신사가 인접해 있어 여름밤 도쿄를 산책하기에 좋다.
여기에 구단 지역의 다양한 문화 시설과 레스토랑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카페&바 ‘ii jikan(이이 지칸)’의 대표 메뉴인 클래식 푸딩이나 수제 메밀국수 전문점 ‘젠(膳)’의 여름 한정 ‘영귤 갯장어 튀김 소바’ 등은 축제에 미식의 즐거움을 더해줄 예정이다.
과거 전쟁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켜졌던 작은 등불은 이제 시대를 넘어 미래의 평화를 밝히는 거대한 빛의 물결이 되었다. 올여름, 자신만의 소망을 담은 등불 하나를 띄우며 도쿄의 가장 아름다운 여름밤을 추억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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