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문윤국 ⑬] 정치의 소용돌이를 거부하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5-18 11:41:12
좌우의 대립, 변질된 독립의 순수성에 실망하다
고결한 침묵으로의 위대한 퇴장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40년대 후반의 서울은 해방의 환희보다 권력의 허기가 지배하는 도시였다. 상해에서, 만주에서, 그리고 국내 감옥에서 나온 수많은 애국지사가 저마다의 전적(戰績)을 훈장처럼 앞세우며 새로운 정부의 요직을 탐했다. 하지만 38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한 문윤국(文潤國)의 눈에 비친 그 풍경은 조국 광복의 완성이라기보다 또 다른 탐욕의 시작이었다.
“문 형, 이제 우리 세상이 왔소.”
서울의 한 주막, 상해 임시정부 시절 생사를 함께했던 옛 동지들이 문윤국을 찾아왔다. 그들은 번듯한 양복 차림에 미군정(美軍政)과의 연줄을 자랑하며 문윤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문 형처럼 정주 만세 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운 분이 어찌 가만히 계시오? 지금 정부 요직에 형님의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오. 이제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문윤국은 잔에 담긴 거친 막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직이 입을 뗐다.
“보상이라니...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국가로부터 보상을 바라고 했단 말인가? 나라를 찾은 것 자체가 보상인데, 거기서 무슨 자리를 더 탐한단 말인가.”
동지들은 그의 고지식함을 타박했으나, 문윤국의 눈빛은 정주의 서당에서 글을 읽던 소년 시절처럼 맑고도 매서웠다.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무명(無名)’을 택하다
당시 정계의 거물이었던 백범 김구와 이승만 등도 문윤국의 존재를 깊이 알고 있었다. 그의 행정 능력과 가문의 배경, 그리고 만주에서의 신망은 신생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큰 자산이었다. 그러나 문윤국은 그들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권력이 주는 화려함 뒤에 숨은 파벌 싸움과 이념의 갈등을 이미 상해 시절에 뼈저리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독립운동가 문윤국’이라는 외투를 벗어던지기로 했다. 그것은 비겁한 도피가 아니라, 오염된 정치판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거부’였다.
좌우의 대립, 변질된 독립의 순수성에 실망하다
문 지사를 가장 가슴 아쁘게 했던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는 동지들의 분열이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에게 핏대를 세우고, 이념이라는 미명 하에 또다시 동포의 피를 요구하는 해방 공간의 야만성은 그가 망명지에서 상상했던 독립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신탁통치 찬반 논쟁으로 동지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어제의 친일파가 오늘의 애국자로 둔갑하는 현실은 참혹했다. 정작 나라를 찾고 나니 권력을 잡기 위해 추악한 암투를 벌이는 세태에 문윤국은 깊은 환멸을 느꼈다.
그가 평생 오산학교와 목회 현장에서 배운 것은 '섬김'과 '희생'이었다. 그는 권력을 탐하는 순간, 자신이 지켜온 신앙의 정절과 독립운동의 순수성이 진흙탕 속에 구르게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결한 침묵으로의 위대한 퇴장
문윤국은 자신의 독립운동 기록과 임시정부 시절의 서류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남들은 그것을 근거로 독립유공자 훈장을 신청할 때, 그는 오히려 그 흔적들을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그는 양복 대신 투박한 무명바지를 입고, 화려한 구두 대신 짚신을 신었다. 서울의 동지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갈 때, 70세의 문윤국은 홀연히 서울을 떠났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결하고도 장엄한 ‘퇴장’이었다.
이제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 문윤국은, 강원도 정선의 한 화전민 마을에서 ‘문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애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투쟁인 ‘고결한 침묵’을 시작하고 있었다. 권좌 대신 정선의 흙을 선택한 그의 발걸음은 비록 쓸쓸해 보였으나, 역사상 그 어떤 권력자의 뒷모습보다 당당하고 위대했다.
– 계속 –
[기자 메모] 문윤국 선생이 해방 정국의 중앙 정치를 거부하고 정선으로 은둔한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직면했던 도덕적 결단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많은 이들이 해방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는 스스로 무소유와 은둔을 선택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대의를 오롯이 지켜냈다. 그의 이 거룩한 퇴장이 있었기에, 훗날 손자 문선명의 사상이 순수한 세계 평화 운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영적 토양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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