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산(象山)스님. |
지금으로부터 26년전, 1995년 4월부터 중국 난징 중의약대학교 유학생 교류 책임자로 남경에 가있을 때의 일이다. 12월의 난징은 한국보다는 춥지 않지만 약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길을 가는데 어떤 70세 가량의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스님이지죠?” “예, 그렇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스님입니다.”“아, 그러습니까? 일본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한국은 참 좋은 나라죠. 불심도 좋고”
당시 중국말을 아주 잘하는 유학생 통역관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난징 사람들은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군이 일으킨 난징대학살 사건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추위는 아니지만 눈이 내리는 날 길에서 만난 보살은 보시금이 든 봉투와 함께 사진 두 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스님, 저는 중국의 스님 가운데 이 두 스님을 받들어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스님은 관정(寬淨) 스님이라고 하는데, 6년 반 동안 극락을 다녀온 고승입니다. 그리고 이 스님은 진부티(金菩提) 상사인데 아직 20살이 안 되었지만 깨달음을 얻은 분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두 스님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년 뒤 관정 스님이 한국에 와서 어느 절에서 법회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바쁜 나날에 쫓기느라 관정 스님을 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2002년 스리랑카에서 오신 스님 여섯 분을 모시고 포항을 다녀오다가 문득 영월에 있는 사제 지현 스님이 잘 살고 있는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스님, 중국에서 스님이 오셨는데 한 번 와 보실래요?” “어떤 스님이신데?”“관정 스님이란 분인데 극락을 다녀오신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차를 몰아 스리랑카 스님들과 함께 영월 망경대산의 높은 곳에 있는 망경산사까지 달려갔다. 망경산사에서 스리랑카 스님들과 함께 큰스님을 친견하고 그 절에서 관정 큰스님의 저서 10권도 받았다. ‘관정 대법사 개시 자성염불 명심견성’이란 책인데 관정 큰스님이 극락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실은 ‘극락세계유람기’와 관정 스님이 극락에 가서 배워 오셨다는 수행법에 대해서 쓴 ‘정토선정의’를 합본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중에 우리 절에서도 법회를 한 번 해 주십사고 초청했다. 큰스님은 다음에 다시 나오면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다. 통역을 맡은 연변 중국동포 강윤철 처사에게도 내 연락처를 주고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2002년 10월 드디어 강윤철 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10월 18일 관정 스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강 처사와 함께 상의해 도착 열흘 뒤인 10월 28일 우리 절에서도 법회를 갖기로 일정을 잡았다. 10월 27일 서울 대각선원에서 법회를 하시고 우리 절에 오셨다. 우리 절에 도착한 큰스님은 나를 보자마자 꿈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큰 나무 밑에 있는 암자에서 아주 키가 큰 스님을 만났는데 와서 보니 바로 꿈에서 본 절이고, 그 때 만난 스님이구나. 우리 둘은 만날 인연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한·중 불교와 세계불교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1990년에 이미 중국 안휘성 구화산 기원정사 인덕 방장 스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대승보살계까지 받았으며, 지금도 김교각 지장왕보살 한국 전시회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밖에도 관정 스님의 예언대로 여러 가지 한·중불교 교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날 저녁 밤 11시가 넘었을 때 새로 제자가 된 우리 도반 4명(象山, 智賢, 法藏, 法雲)과 관정 큰 스님과 법담이 시작됐다. 굉일(智賢) 스님 기록에 따르면,
극락 가는 사람들 ‘굉안 : 세상 사람에게 부처님 지혜를 널리 알려라!’
“법을 물어라.”
공부하는 승려들에게 얼마나 당당한 말씀이신가? 제자들이 많이 공부를 했다면, 이 때야 말로 한 번씩 튀어오를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그럴 정도로 공부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희들은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무엇을 여쭈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큰스님께서 저희들을 보시고 경계에 맞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정 스님은 이때부터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종이에 한문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필담법문을 해 주었다.
◆ 사람은 이미 모두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붇다가 곧 사람이다.
![]() |
▲필담법문. |
◆ 평상심(平常心)이 바로 도(道)이니 자성을 보면(見性) 바로 그 자리에서 붇다가 된다(卽身成佛).
◆ 자성을 보아 성불(見性成佛)을 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 |
▲필담법문. |
자성은 태양처럼 밝고 환한 빛(自性光明)인데 탐냄(貪) 성냄(瞋) 어리석음(痴) 사랑(愛) 음탕함(嫖) 노름(賭) 술 마심(飮) 화냄(生氣) 싸움(鬪=斗) 같은 먹구름이 잔뜩 덮여 있어 자성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를 지키며 열심히 염불하여 자성염불이 되면 탐냄(貪) 성냄(瞋) 어리석음(痴) 사랑(愛) 음탕함(嫖) 노름(賭) 술 마심(飮) 화냄(生氣) 싸움(鬪=斗) 같은 먹구름이 모두 사라지고 밝고 환한 빛이 태양처럼 나타나니 이것이 바로 자성을 보는 것(見性)이다.
다음날 오전에 법회를 갖고 오후에는 합동 천도재를 지냈다. 2층 법당에 60~70명이 꽉 차고 아래층까지 160여명 신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어서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마정수기를 해주셨다.
![]() |
▲관정스님이 신도들에게 마정수기를 해주고 계신다. |
다다음날 우리 도반 4명(象山, 智賢, 法藏, 法雲)을 위한 특별한 천도재를 지냈다. 이날에는 우리 도반 말고 한 명이 더 추가되어 5명이 함께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다. 첫날 늦게 만덕(萬德)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한 거사를 데리고 와서 물었다.
“큰스님 모시고 천도재를 하고자 하는데 법당을 잠깐 빌릴 수 있습니까?”
만덕 스님은 잘은 모르지만 이미 4,5년간 큰스님을 모신 제자라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따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 4명이 할 때 함께 하기로 했다. 5명이서 함께 재를 지낼 때 눈 밝은 도반들이 보니 큰 황룡 두 마리가 관정 스님 어깨에 앉아서 함께하고 있었고 관정스님은 우리들 양쪽에 청룡이 두 마리 씩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하셨다. 큰스님의 도력이 얼마나 높으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
▲도반들을 위한 튿별 천도재. ▲도반 4명이 관정 큰스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천도재가 끝난 뒤 여러 신도들이 나중에 부모님들이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 감사하는 말을 했다고 좋아했기 때문에 큰스님을 모시고 천도재를 모시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천도재와 마정수기에서 나온 보시금을 모두 관정 스님께 시주했고, 아울러 중국 사찰 건립에 쓰라고 보살들이 정성스럽게 모은 불사금도 전달했다.
행사를 마치고 우리 도반 모두 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큰스님의 법맥을 내려주시는 건당(建幢)식을 가졌다. 나에게는 굉승(宏承) 등불(騰佛)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는데, 굉승의 굉(宏)자는 임제종 법맥의 항렬자이고 등불의 등(騰)자는 조동종 법맥의 항렬자라고 한다. 49대 법맥을 이어 받았다. 큰스님은 정법안장에 다음과 같은 표신게를 내려주셨다.
![]() |
▲미정수기를 받는 필자. ▲관정 큰스님이 정법안정을 부촉하신다. |
굉양정종법(宏揚正宗法) 정통 가르침을 널리 펴서승계석혜명(承繼釋慧命) 석가모니 법맥을 이어받고등령자성명(騰靈自性明) 영혼을 드높여 자성 밝아지면불도세상인(佛渡世上人) 세상 사람에게 부처지혜 널리 알려라. 큰스님으로부터 수기를 받고 활동한 지도 13년이 지났다. 2007년 사제 지현 스님으로부터 큰스님이 입적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더 이상 만나 뵙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의 스승 관정스님 비록 짧은 3개월의 인연이었지만 관정스님은 이미 저를 알고 계시었다.
저의 사찰에 오셔서 먼 여행을 하며 가기나긴 불교공부를 한 것 같은 귀한 시간이었다.
그 동안 종단 종무원장, 감찰원장. 교육원장 등 국내 불법 포교에 열심히 참여하는 반면 중국불교대회를 참석하는 등 한·중 불교교류에 나름대로 노력했다.
아울러 스리랑카 대통령, 네팔 대통령. 달라이라마 친권대사, 대만 불교협회 초청을 받는 등 국제 여러 나라와의 불교 교류에도 힘을 쏟았고, 150여개국이 참여한 세계불교청년승가회(WBSY) 총재 겸 한국 총재로 활동하면서 세계불교대회에 참여했다. 세계 3대 사원 가운데 하나인 인도네시아 보나보르두 복원불사추진위원장으로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으며, 세계불교 총재로서 각국의 교류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또한 2010년 WBSY총재 자격으로 한국에서 13차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관정 스님이 부촉하신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관정스님이 소승에게 내려 주신 표신게 (表信偈)를 대로 불교전파는 물론 한반도 및 세계평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2014년 8월경 서길수 교수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중국 선유현(仙遊縣) 천마사(天馬寺)에 관정 스님과 함께 관정 스님이 나에게 정법안장을 전해주신 사진을 법당 안쪽 벽에 관정스님과 나란히 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법회를 마치고 정법안장을 주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빼서 드렸는데, 그 사진을 걸어놓은 모양이다. 참으로 큰스님의 배려에 감동할 뿐이다.
![]() |
▲중국 복건성 선유현 천마사에 걸린 사진. ▲좌측벽에 걸려 있는 사진 모습. |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서 교수는 이 이야기와 함께 2014년 펴낸 관정 큰스님의 저작집 ‘정토와 선’ 한 권을 주었다. 내용은 모두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안으로 끌어들여 자성을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외연 확장을 안으로 끌어들여 자성을 밝히는 마음공부에 회향하라는 내용이라고 본다. 아울러 그 책에는 정토와 선을 함께 닦는 정토선 수행법이 자세하게 전해져 있다. 큰스님의 법맥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이러한 혜명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무겁게 다짐해 본다.
관정 스님이 우리 절에 다녀가신 뒤 얼마 아니 되어 남경 보살이 말했던 다른 고승인 진부티(金菩提) 상사도 한국에 오셔서 만나 뵈었다. 진부티 상사의 제자가 2명이 우리 절에 한동안 머문 적도 있으며 아직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눈 오는 날 남경의 보살이 말했던 두 고승을 모두 친견하는 인연을 갖게 됐다.
※ 참고문헌: 중국 寬淨(관정) 스님 일대기 나는 극락을 다녀왔다. (정토염불선 , 정토선)
보정(普淨) 서길수(徐吉洙) 씀 (역사학자) 2015년 출판
※ 상산 象山 약력
WBSY 세계불교 승가 청년연합 총재, 국제불교 교류협회 총재, 네팔 친선대사, UPF 평화대사, IAPD 서울·인천 공동회장, 서울 특별시 종교특별위원회 공동회장, 자유총연맹 초종교 특별위원회 공동회장, 안양만안경찰서 경승, 불교조계종 전 감찰원장·교육원장, 한국 종교협의회 위원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