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의 눈물이 손자 문선명의 ‘세계의 십자가’로 부활하기까지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한 인간의 위대함은 당대의 업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 후대의 혈관 속에서 마침내 다시 살아난다. 만주와 상하이를 누비며 독립의 가시밭길을 걸었던 문윤국(文潤國) 지사에게 가문은 단순한 혈연의 집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을 심고 가꾸어 훗날 거대한 숲을 이룰 ‘정신적 모태’이자 약속의 영토였다.
그 고독하고 위대한 길 위에서, 문윤국의 곁에는 늘 조카 문경유(文慶裕)가 있었다. 조카에게 숙부 문윤국은 하늘 같은 어른이자, 조국을 향한 일편단심을 몸소 보여준 스승이었다. 숙부가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만주로 망명할 때, 문경유는 남아 있는 가문의 뒤를 든든히 지키며 숙부의 고결한 뜻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받들었다. 문윤국은 평소 조카에게 늘 엄히 일렀다.
“우리 문씨 가문은 대대로 선비의 절개를 지켜왔다.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없고, 신념이 없으면 목숨 또한 헛것이니라.”
문경유는 숙부의 이 가르침을 뼈에 새겼다. 그는 일제의 잔인한 감시와 핍박 속에서도 가문의 기초를 굳건히 유지하며, 숙부가 걸어간 외롭고 치열한 투쟁의 길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이 강직하고 결백한 가풍은 한 세대를 건너뛰어 그대로 그의 아들들에게 전해지는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손자 문선명,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세계’를 보다
문윤국 지사의 종손자 문선명(文鮮明,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은 어린 시절부터 종조부 문윤국의 전설 같은 무용담을 온몸으로 들으며 자랐다. 3·1 운동의 전선에서 만세 함성을 주도하고 만주를 넘나들며 독립군을 돕던 할아버지의 서슬 퍼런 기개는, 어린 소년의 가슴에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하늘을 향한 거대한 사명감을 심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문윤국이 정주 오산학교를 지키고 평양신학교에서 복음을 연구하며 정립했던 ‘한학(漢學)’의 기품과 ‘사랑 사상’의 철학은, 훗날 문선명 총재가 전 세계를 무대로 펼친 평화 운동의 가장 강력한 사상적 밑거름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졌다면, 종손자 문선명은 그 불굴의 유산을 이어받아 인류의 구원과 화평을 위해 ‘세계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구도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하늘을 경외하고 인간을 사랑하라”
문윤국 지사가 가문에 남긴 진짜 유산은 세속의 금전이나 토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가혹한 시련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신념의 맷집’이자 영적인 고결함이었다. 그는 생전 후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직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세상의 불의와 당당히 맞서라.”
이 위대한 정신적 유산은 남평 문씨 가문을 단순히 피를 나눈 씨족 공동체에서, 난세마다 ‘시대의 선구자’를 배출하는 사상의 요람으로 재탄생시켰다. 문윤국 지사가 정주의 거친 들판에서 피눈물로 뿌린 눈물의 씨앗은 조카 문경유의 헌신과 손자 문선명의 삶을 통해 찬란한 꽃을 피웠고, 훗날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수백만 인파의 가슴을 울리는 거대한 화평의 함성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대를 이어 흐르는 ‘고결한 침묵’의 힘
문윤국은 평생 평화와 독립을 위해 자신을 통째로 불살랐으면서도 자신의 공적을 세상에 자랑하지 않았다. 그 겸양과 절제의 미덕 또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가문의 오랜 가풍(家風)이었다. 거대한 일을 행하되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늘의 뜻만을 구하는 ‘고결한 침묵’의 자세. 그것은 문씨 가문의 자제들이 격동과 수난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영혼의 자긍심을 잃지 않게 한 가장 강력한 지탱벽이었다.
만주의 찬 바람 속에서 정주의 하늘을 바라보며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문윤국. 그는 자신의 짧은 생애가 끝난 뒤에도 이 거룩한 정신이 후손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여, 조국의 3·8선을 넘어 세계 평화의 영원한 초석이 될 것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혈통보다 진하고 이념보다 강인한 ‘신념의 혈맥’은 그렇게 위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 계속 –
【企画連載 文潤国 ⑯】代を重ねて平和の巨木の森を成す
満洲から旌善まで、叔父 文潤国と甥 文慶裕が守り抜いた文士の節義 定州の涙が、孫 文鮮明の「世界の十字架」へと蘇るまで
【LOCAL世界=李勝敏 記者】 一人の人間の偉大さは、当代の業績にとどまるものではない。それは滔々たる大河のごとく流れ、後世の血管の中でついに再び蘇るのだ。満洲や上海を駆け巡り、独立という荊棘の道を歩んだ文潤国志士にとって、家門とは単なる血縁の集合体ではなかった。それは自らの信念を植え育て、のちに巨大な森林を成すための「精神的母体」であり、約束の領土であった。
その孤独にして偉大なる道の上で、文潤国の傍らには常に甥の文慶裕(文慶裕)がいた。甥にとって叔父の文潤国は、天のごとき存在であり、祖国への一片丹心(いっぺんたんしん)を身をもって示した至高の師であった。叔父が独立運動のために全家産を惜しみなく投げ打ち、満洲へ亡命する際、文慶裕は残された家門の背後を毅然と守り、叔父の高潔なる志を寸分の揺らぎもなく受け継いだ。文潤国は平素、甥に常に厳しく諭していた。
「我が文氏の家門は、代々文士の節義を守り抜いてきた。国がなければ家門もなく、信念がなければ命とて空しいものぞ」
文慶裕は、叔父のこの教えを骨に刻み込んだ。彼は日帝の残忍な監視と弾圧の中でも家門の基礎を堅固に維持し、叔父が歩んだ孤独にして熾烈なる闘いの道を黙々と支え続けた。この剛直にして潔白な家風は、一世代を飛び越え、そのまま彼の息子たちへと受け継がれる精神的支柱となったのである。
孫・文鮮明、祖父の後ろ姿に「世界」を見る
文潤国志士の従孫である文鮮明(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総裁)は、幼少期から従祖部である文潤国の伝説的な武勇伝をその身に浴びるようにして育った。三・一独立運動の最前線で万歳の歓声を主導し、満洲を往来して独立軍を助けた祖父の凄まじい気概は、幼き少年の胸に、民族への熱き慈愛と天へ向けた巨大な使命感を植え付ける糧となった。
文潤国が定州の五山学校を守り、平壌神学校で福音を研究しながら定立した「漢学」の気品と「愛の思想」の哲学は、のちに文鮮明総裁が全世界を舞台に繰り広げた平和運動の最も強力な思想的土壌となった。祖父が祖国の独立と光復のために「民族の十字架」を背負ったとするならば、従孫の文鮮明はその不屈の遺産を受け継ぎ、人類の救済と和平のために「世界の十字架」を背負う求道者の道を選んだのである。
「天を敬い、人を愛せ」
文潤国志士が家門に遺した真の遺産は、世俗の金銭や土地ではなかった。それは、いかなる過酷な試練を前にしても決して屈することのない「信念の強靭さ」であり、霊的な高潔さであった。彼は生前、後孫たちに口癖のように強調していた。
「人の顔色を窺うことなく、ただ天の声に耳を傾けよ。真理はあなたがたを自由にするという御言葉を信じ、世の不正と堂々と対峙せよ」
この偉大なる精神的遺産は、南平文氏の家門を、単に血を分けた氏族共同体から、乱世のたびに「時代の先駆者」を輩出する思想の揺籃へと昇華させた。文潤国志士が定州の荒涼たる野原で血の涙とともに蒔いた種は、甥・文慶裕の献身と孫・文鮮明の生涯を通じて燦然たる花を咲かせ、のちに韓半島を越え、全世界の数百万人もの人々の胸を震わせる巨大な和平の歓声として復活することとなった。
代を重ねて流れる「高潔なる沈黙」の力
文潤国は生涯、平和と独立のために自らを燃やし尽くしながらも、自らの功績を世に誇ることはなかった。その謙譲と節制の美徳もまた、後孫たちへと脈々と受け継がれた家門の長き家風であった。巨万の業を成し遂げながらも、決して自らを顕さず、ただ天の意思のみを求める「高潔なる沈黙」の姿勢。それこそが、文氏の愛子たちが激動と受難の韓国現代史を貫きながらも、魂の自負心を失わずにいられた最も強力な支え壁であった。
満洲の寒風吹きすさぶ中で定州の空を仰ぎ、民族のために祈りを捧げていた文潤国。彼は自らの儚き生涯が幕を閉じたのちも、この神聖なる精神が後孫たちの胸の中で生き動き、祖国の三・八線を越えて世界平和の永遠の礎石となることを、すでに予見し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血統よりも濃く、理念よりも強靭な「信念の血脈」は、そのようにして偉大なる歴史の潮流に沿って、今日も滔々と流れている。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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