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신사 궁사 맡아 고구려 풍습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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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사 60대 궁사 고마 후미야스. 고구려 마지막 왕이었던 보광왕의 아들인 약광왕 직계 후손. ©로컬세계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전차를 타고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 남짓 달려가다 보면 고려역을 만난다. 이곳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 약광왕(若光王)을 모시는 고려신사(고마진자)가 있다. 한반도에서 멸망한 고구려가 일본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국의 숨결을 열도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고려중학교, 고려소학교, 고려역, 고려강, 고려산, 고려향 등 고구려가 고려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심지어 이곳에는 향토음식인 고려찌개(高麗鍋)도 맛볼 수 있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장왕의 아들인 약광왕은 716년 고려군을 이곳에 설치해 일본열도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들을 모아 다스렸다. 후대에 백성들은 신사를 세워 그의 위덕을 기렸고 고려명신으로 우러러 오늘에 이르렀다. 내년은 고려군 설치 1300년이 되는 해이다.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있는 고려신사에서 궁사(신사의 주지)를 맡고 있는 고마 후미야스(49)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고려강을 건널 때부터 이곳은 일본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등 뒤에서 고려산이 포근하게 감싸주고 앞으로는 고려강이 맑게 흘러간다. 문간에 들어서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들이 반겨주고 경내로 들어서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기념식수를 맞이하는 이곳은 분명 고구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고려신사 뒷뜰에 있는 고려가. ©로컬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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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사 입구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로컬세계 |
뒤뜰에는 고풍스런 가옥이 있는데 고구려의 옛집인가
고려가(高麗家)라고 불리는 집으로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부친께서도 1955년까지 살았다. 현재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돼 있다. 하지만 고구려식 집은 아니다. 다만 고구려 풍이면서 일본식 집이다. 고구려는 추워서 온돌집이어야 하지만 이곳은 온돌보다는 습기에 대처한 집을 지어야 했기에 환경에 맞게 변화된 집이다.
건너온 옛 선인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고구려인들은 천년 이상 고구려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통을 계승하면서 일본 속에 뿌리를 내려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고구려에서 말을 들여왔고 대장장이는 세공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철을 다루는 기술, 말타기, 농업기술, 건축, 미술 등의 고구려의 선진문물을 바탕으로 원주민들에게 기술을 전하고 발전시키면서 살아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본역사에 약광왕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703년 문무천황으로부터 고려왕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속일본기는 적고 있다. 또한 716년 일본열도에 흩어져 살던 1779명의 고구려인을 당시 무사시국이던 이곳에 이주시켜 고려군을 설치해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나에게 약광왕은 유태인들에게 모세와 같은 존재이다. 내게는 가장 소중한 분이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어릴 때부터 우러러왔던 분이다.
한동안 고구려인끼리만 혼인했다고 하던데
26대까지는 고구려인끼리만 혼인했다. 일본인과 결혼하기 시작한 것은 27대부터였고 여기서 파생된 성씨들이 아라이, 간다, 혼조, 나카야마, 고이즈미, 요시카와 등이다.
고구려 건군 1300주년 기념축제를 소개하자면
약광왕이 이곳에서 고구려를 창건한 해가 716년 5월 16일이다. 내년으로 꼭 1300년을 맞이하게 된다. 기념식은 히다카시 주최로 하게 되고 성대한 축제를 위해 준비 중에 있다. 고려군 탄생을 축하하고 약광왕을 비롯한 선조에게 감사하는 축제이다. 또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계승 발전시켜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데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고구려 음악이 일본의 전통음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일본 전통음악의 원류가 고구려 음악(고려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려악으로 시작한 음악이 당악(당나라의 음악)과 원주민의 음악이 가세하여 현재 일본의 전통음악인 아악이 됐다.
이곳 지명이 왜 히다카시로 바꼈나
약광왕은 710년경 당시 일본의 천황으로부터 왕의 호칭과 이 지역의 통치권을 부여받아 고려(高麗)라는 지명으로 천년 이상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1896년 메이지유신 때 일본정부에 의해 이루마군에 편입됐고 1955년에는 히다카시로 통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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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사 본당 전경. ©로컬세계 |
고려신사의 궁사는 어떻게 이어가나
궁사는 고려신사가 시작될 때부터 약광왕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왔다. 나는 부친이신 59대 궁사가 타계한 2007년부터 신사를 맡아 이어오고 있다. 아들도 61대의 대를 이어가야 하기에 신사일과 가문교육을 배우면서 나를 도와주고 있다.
연간 방문객 수는 어떻게 되나
일본 전역에서 연간 50만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한국인은 그 중 1% 정도에 불과해 아쉽다. 일본인들이 고구려의 명신을 찾아 이렇게 많이 찾아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 한국인들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
한국에는 몇 번 가봤나
한국에는 30번도 넘게 다녀왔다. 한국에 가면 고향에 온 기분이다. 주로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고 한국 명소를 찾아 여행을 한다. 제주도에도 가본적이 있다.
고구려는 나의 조국이고 나의 고향이다.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고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도쿄를 찾으면 대부분 시내를 구경하고 온천 등을 들러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의 숨결이 어려있는 고려신사에는 발걸음이 적다. 도쿄에서 승용차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곳에도 들려서 고구려의 역사체험관광도 즐겨줬으면 좋겠다. 도쿄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들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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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사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고려신사라고 쓰여진 도리이. ©로컬세계 |
매년 건군기념일 행사에 이벤트도 열린다는데
건군기념축제의 이벤트로 자선바자회가 경내에서 열린다. 지역 내 20여개 회사가 참여, 본고장 토산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시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고 있다. 주된 판매품은, 향토술, 유제품, 일본과자, 간장, 제차, 김치, 과자, 계란, 농산물, 햄, 소세지, 두부 등이며 방문자는 이틀간에 걸쳐 약 1만 5000명에 이른다.건군기념일 행사를 포함해 다양한 연중 행사가 펼쳐진다.
1월은 원단제로 1년의 평안을 기원하고, 2월에는 오곡풍요를 기원하는 기원제를 하고, 4월에는 고구려 씨족이 모여 떡치기 등을 하는 축제를 벌인다. 5월은 건군기념축제를 성대하게 하고, 6월에는 액막이식으로 알게 모르게 범한 죄를 씻고, 8월은 고구려인 친족부인회 주최로 열리는 행사로 남녀노소가 모여 동그랗게 원을 그려 춤을 추고 노래를 즐기는 화동의 축제가 열린다. 10월은 가을의 결실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를 하고 12월은 신년을 맞이하기 위해 일년 동안 쌓인 죄와 더러움을 씻어내는 식제를 한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하던데
고려신사는 출세개운의 신사로 지칭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정치가와 사업가들은 모두 출세했다. 고이즈미씨도 이곳을 다녀가 장관이 됐고 아들은 수상이 됐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하토야마씨도 이곳을 다녀가 일본의 수상이 됐다. 한국의 정치지망생들도 이곳을 다녀가 모두 한 시대를 주름잡는 정치가들이 됐다. 현재도 일본의 정계 재계를 주름잡는 거물들이 출세를 위해 고려신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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