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타인과 나를 구분해 자아를 인식하고,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은 인류가 정의하는 진정한 시작이다. 인류는 수천 년간 이 시작점 앞에서 존엄이라는 답을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그 핵심인 인간의 평등은 모든 개인이 동등한 존엄성을 가짐을 인정하고, 기회의 균등을 넘어 실질적 차이를 고려한 배려를 통해 차별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평등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산술적 분배가 아니다. 야만의 역사 위에 피워낸 고귀한 도덕적 꽃이자, 우리가 인간으로 남기 위해 서로의 눈을 맞추며 건네는 경건한 서약이다.
인간이 평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징하다. 우리는 모두 출생의 첫 비명 속에서, 그리고 떠나는 마지막 숨결 앞에서 철저히 평등하다. 지능과 재산, 지위라는 외피를 걷어내면 그 안에는 고통과 환희를 느끼는 보편적인 영혼만이 남는다. 이러한 가치는 과거 신분제 사회를 지나 오늘날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 왔다. 누구도 타인의 생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 때 마침내 인간은 존엄해진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가설은 평등이 왜 차가운 이성의 산물인지를 증명한다. 내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날지 모르는 안개 속에 있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 처할 자신을 상상하며 안전장치를 갈구하게 된다. 이처럼 법적인 기회 부여라는 형식적 평등부터 약자를 위한 보완인 실질적 평등까지 포괄하는 연대는 타인을 향한 시혜가 아니다. 언젠가 길을 잃을지도 모를 나를 위해 쌓아 올린 지혜로운 자비이자 견고한 사회적 합의다.
사실 삶의 가장 절박한 꿈은 먹고사는 것이다. 평등은 이 소박한 생존의 명제가 누군가의 탐욕이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짓밟히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소한의 품격이다. 우리가 평등을 갈구하는 이유는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재력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먹고산다는 숭고한 행위가 비굴함이 아닌 당당함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선언은 오늘을 살아내는 평범한 우리의 밥상과 삶을 지키기 위한 실존적 외침이다.
오늘날 평등은 거센 파도 앞에 서 있다. 능력주의는 공정의 가면을 쓴 채 승자의 오만을 정당화하고, 기술의 벽은 새로운 계급의 경계를 긋는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주의는 공정한 출발선이 보장될 때만 유효하며, 기술의 진보는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흐를 때 의미가 있다. 평등은 단순한 똑같음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차별 없이 사랑하고 이익을 나눈다는 묵자의 겸애교리(兼愛交리) 정신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이정표다.
이처럼 평등이란 인류의 숙제를 현대 사회의 문법으로 해석해낸 준엄한 판결이다. 민주주의의 ‘1인 1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권력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의 삶이 같은 무게를 지닌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대다. 평등한 기회 속에서만 이름 없는 소년의 꿈이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 되고, 사회는 비로소 창조적인 생명력으로 고동친다.
평등은 하나의 색깔을 강요하는 무채색의 폭력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빛을 내는 별들이 서로의 궤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밤하늘이라는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돕는 우주의 질서다. 평등은 인류가 발견해 낸 가장 아름다운 구원이자 뜨거운 인류애다. 이 약속이 지켜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을 얻는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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