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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
우리 인류가 21세기 신문명을 기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평화를 구현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래학자 도널드 마이클은 ‘인류는 준비되지 않은 사회를 향해 방향 없이 달려갈 뿐이다.’라고 지적했고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세계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오스왈드 스팽글러는 ‘물질문명인 서구문명은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그가 쓴 <25시>에서 ‘구원에서도 이미 한 시간이 지난 25시가 됐다’고 한탄한 바 있다.
오늘날 세계적인 현상을 보면 인류 문명이 급격하게 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는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시대를 바탕으로 경험주의·쾌락주의·공리주의를 거쳐 실증주의와 실용주의를 만들어 냈으며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물질 지향적 대중사회를 형성하는 데 몰입해 최대 생산 최대 소비가 목적이 된 사람보다 물질을 소중히 여기고 인격보다 능률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데이비드 리즈만이 말하는 외부 지향적 대중사회, 즉 개발과 발전을 동일시하며 많은 소비를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해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쾌락 추구가 생의 목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성은 거부되고 양심마저 타락하게 돼 인간의 행동이 이유 없는 반항에서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 즉 반체제·반문명·반사회에서 나오는 각종 테러리즘으로 확산돼 도널드 마이클이 염려했던 불안과 초조와 공포가 깔린 혼란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미 그런 사회가 도래했는데 이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 사회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면 어찌 인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식량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이 없는 한 인류는 미구에 참담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70억이 넘는 인구 중 30억에 가까운 인구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며 만성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 구현’에 대한 중대한 문제이며 도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구촌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순기능 못지않게 얼마나 많은 역기능이 발생하고 있는가.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 인간과 자연 간의 충돌 등은 심각한 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다.
전 세계 양식 있는 지도자들은 힘을 합쳐 인류 공동체를 이루어 가자고 소망하고 있지만 민족·인종·종교 등을 배경으로 하는 민족주의.국수주의.인종주의라는 장벽에 부딪혀 공동체 형성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20세기 후반까지 인류의 목을 조이던 이데올로기의 기세는 사그라졌으나 원리주의(교조주의)와 인간의 타성에서 발로되는 이기주의는 인류 공영(共榮)의 또 다른 적으로 규정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평화세계 구현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평화와 안전, 그리고 복지는 인류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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