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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연합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북아 영토를 유린하는 와중에 한족 중국과 전혀 상관도 없는 영토인 만주를 불법으로 강점하다 보니, 일정한 영토의 영토권자는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인 영토문화주권자이자 역사의 주체여야 한다는 원칙과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아서, 온갖 구실을 붙여가며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의 주체가 되려는 것이다.
한족 중국은 원래 발상지인 황하를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영역 동서남북으로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이라는 오랑캐가 들끓는다고 하던 나라다. 그들에게 고구려와 청나라의 만주족은 오랑캐인 동이였을 뿐이다. 한족이 1912년에 중화민국을 건국할 수 있는 근원이 된 신해혁명은 멸만흥한(滅滿興漢)・멸청흥한(滅淸興漢)을 외치며, 만주족의 청나라를 멸하고 한족의 나라를 건국하자는 독립운동이다.
멸만흥한・멸청흥한은 홍수전(洪秀全)이 1850년부터 14년 동안 태평천국의 난을 통해서, ‘만주족은 하얀 여우와 붉은 개의 자손으로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종족이며, 궁정에는 여우와 개 떼가 몰려 살고 황제는 사악한 야생 여우다. 그 앞에 무릎 꿇고 절하는 중국 관료는 개・돼지보다 못한 자들이다. 만주족은 변발을 강요하는 등 우리 선조들의 전통에 어긋나는 만행을 저질러 모욕을 주고, 아름다운 우리 여인들을 끌고 가서 첩으로 삼아 몸을 더럽히고 말았다. 만주족은 부패한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착취해도 방관만 하는데, 우리가 가난해져서 약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봉천토호격(奉天討胡檄)에서 파생된 구호로, 청나라의 만주족을 야만족인 오랑캐로 짓뭉개버리기 위해서 외치던 구호였다. 그런데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선 후, 중국의 욕심은 청나라 영토로 쏠리기 시작했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청나라 역사는 한족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지배했던 역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청나라를 한족 중국 역사로 편입한다. 그런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일본이 우리 한민족을 36년간 병탄하고 있었으니 단절된 36년 역사를 일본 역사로 채우고 일본 영토는 우리 한민족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심각한 역사 왜곡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랑캐라고 외치며 야만인이라고 짓뭉개던 청나라 역사를 한족 중국 역사로 편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태가 잘못된 것을 알기에 잘못된 행태를 정당화하여 청나라가 동서남북으로 강점한 광활한 영토를 이어받기 위해서 헌법에 ‘통일된 다민족 국가’라는 억지 논리를 명기하고, ‘자고이래설’과 ‘점진형성설’이라는 해괴한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는 순서에 따라서 정의하는 것이지 미리 현재 상황에 맞춰 정의해 놓고 과거를 꿰맞추는 행위 자체가 왜곡이고 날조다. 그런데 한족 중국은 헌법에 ‘통일된 다민족 국가’라는 억지 논리를 주장하며, 역사 범위를 현재 시점에 맞춰 설정해 놓고 과거를 그 범위에 꿰맞추고 있다.
현재 상태를 통일된 다민족 국가라고 선포했으니, 선조들의 민족・사상・행위 등 문화가 서로 다르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중국 국경 내에 존재했었다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든 어쨌든 간에, 자고이래로 중국인이었고 중국 역사였으므로 한족 중국 역사로 맞춰야 한다는, 논리적으로는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억지다.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 한족 중국은, 만주를 지배했던 고구려 역시 자고이래설의 틀에 넣기 위해서,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라는 왜곡과 날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으로, 고구려가 한나라 시대 고조선을 침공한 후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인 현토군에서 발전했으므로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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