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정부는 1953년 동북인민정부를 폐지하고, 일부는 내몽고자치구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동북3성으로 분할하였다. 동북인민정부의 해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오강이라는 인민정부의 주석이 만주에서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우쭐댔기 때문에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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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중국내 어떤 지역의 지도자보다 막강한 산업을 기반으로 형성된 자신들의 경제적인 지원 아래 형성된 세력을 믿고 중앙정부에 대해 동북인민정부의 행정적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마오쩌뚱은 한국에서 북한의 6·25 남침동란이 끝나자 만주개혁을 추진하였다. 만주개혁은 지주와 봉건세력의 해체를 표방하였는데 사실상 혁명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만주개혁은 사회발전의 수준과 상관없이 사회주의적 개조를 추진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중국의 집권자들은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경제의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동시에 소수민족지역에 대한 사회역사조사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자치를 누리던 많은 소수민족 지역에 중국식 관료체제가 도입되었다. 중국 중앙정부는 강력한 통치제제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이나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이 하나 된 중국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낸 정책일 뿐, 한족중심(漢族中心)의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실현하기 위해서 변강(邊疆) 중의 하나인 만주 역시 예외일 수 없던 것이다.
더더욱 만주는 농업과 공업을 망라한 생산 및 교통기반시설을 갖춘 지역이었다. 또한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전쟁의 참화 속에서 기사회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당시에는 힘을 못 쓰고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 역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역이었다.
게다가 만주국이 부당하게 해체되었다는 것과 만주국 영토가 중국으로 귀속된 과정 역시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마오쩌뚱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상세히 알고 있던 사항이다.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만주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앞장세워 만주의 체제를 붕괴하고 새롭게 단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가오강이 스스로 황제라도 된 것처럼 행동을 했고 중국은 그 기회를 잡아 동북인민정부를 해산함으로써 만주를 붕괴시켜서 일부는 내몽고 자치구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동북3성으로 고정시켜 동북3성이라는 지명으로 고착화 시키고자 한 것이다.
동북인민정부의 영역은 만주국의 영역과 동일하다. 따라서 동북인민정부는 만주국을 그대로 이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주국 영토를 불법으로 귀속시킨 중국 역시 만주가 한족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국의 영토를 쉽게 다른 행정구역처럼 나누지 못하고 동북인민정부로 묶어 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 본 가오강의 무모한 행동이 무엇보다 동북인민정부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만주라는 특별한 지명과 그 영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만의 특징이 있고, 그것은 한족의 중국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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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동북인민정부와 중국 행정구역 융합도 |
만주라는 지명은 없앴지만, 동북인민정부라고 하면서 만주를 하나로 묶어 두었던 것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1953년에 동북인민정부를 폐지하여 일부는 내몽고자치구로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흑룡강성·길림성·요녕성의 동북3성, 혹은 동북지방이라는 이름으로 고착시켰다.
‘만주’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정부는 일제가 강점하여 만주국을 건설했던 곳이므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라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만주국이 부당하게 해체되고 그 영토가 부당하게 중국에 귀속된 것의 흔적을 애써 지우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17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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