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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 이용우 회장과 다바 데베레 훈데 주일 에티오피아 대사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다정하게 지켜 보고 있다.(사진 = 이승민 특파원) |
[로컬세계 = 이승민 특파원] 지난 24일, 도쿄의 내리마코코네리홀(練馬ココネリホール)에서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꿈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자선 음악회가 열렸다.
한·일·에티오피아우정회(회장 이용우)가 주최하고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에티오피아 현지 고아원 설립에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 45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플루트 우스이 시즈(薄井志都), 바이올린 고시다카 타에(腰高多恵), 피아노 고마츠 소노코(小松園子), 소프라노 미야시타 에레나(宮下絵令奈)가 출연하여 고아원 건축 염원을 담아 고요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 성가를 연주와 함께 감동스럽게 들려주었다.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 이용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1만 km가 넘는 멀고도 먼 나라지만 지난 4년 동안 에티오피아 어린이들과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복지를 위해 마음과 뜻을 다해 노력했다. 우리의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그대로 에티오피아에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년 10월에는 에티오피아 고아들을 위해 현지에 고아원을 건축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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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 데베레 훈데’ 주일 에티오피아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 = 이승민 특파원) |
다바 데베레 훈데 주일 에티오피아대사는 축사를 통해 “에티오피아 어린이들과 한국전쟁 참전자들을 위해 모금 활동과 친선 우호에 힘쓰는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고마움을 전하고 “에티오피아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관광자원, 유구한 문화유산을 자랑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기회의 땅이다. 선진국과 기술을 공유하고 무역을 촉진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고 자국을 소개한 후 “에티오피아 대사관은 일한에티오피아우정회의 활동에 아낌없이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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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트 우스이 시츠(薄志都), 바이올린 고시다카 타에(腰高多恵), 피아노 고마츠 소노코(小松園子), 소프라노 미야시타 에레나(宮下絵令奈)가 출연하여 연주하며 '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있다(사진 = 이승민 특파원) |
1만 km가 넘는 먼 나라 에티오피아,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해마다 자선 모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용우 회장에게 들어보았다.
“커피 비즈니스 때문에 처음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한국동란 참전용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허름한 단칸방에서 6.25전쟁 때 입으신 부상 때문에 지금까지 평생을 침대에 누워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왔다”
에티오피아 황제의 특명, 죽어서라도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라.
김일성은 철저한 전쟁 준비를 마치고 1950년 6월 25일 막강한 군사력으로 3.8선을 넘어 남침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고 한국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풍전촉화(風前燭火)였다. 이때 한국 전쟁 소식을 들은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수도 경비대와 황실을 지키는 근위병들은 전쟁터로 떠날 준비를 갖추고 아디스아바바의 잔메다(Janmeda) 광장에 집결하라.”
하일레 황제는 잔메다 광장에서 한국 전쟁터로 떠나는 출정식을 열고 특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오늘 세계평화를 위해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기필코 지켜야 한다"
황제는 특명과 함께 ‘강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강뉴’는 에티오피아 언어인 암하라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는 뜻과 '초전박살'이라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침략자들을 격퇴하여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황제의 간절함이 깃든 이름이었다.
1차 파병으로 황실 근위대 1200명을 포함해 3518명으로 편성된 강뉴부대는 먼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 최전선에 배치된 강뉴부대는 적근산 전투를 시작으로 연전연승하여 253전 253승이라는 신화 같은 무패(無敗) 전공을 세웠다.
총알이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포탄이 사방에서 터져 파편들이 귀전으로 날렸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군을 보면서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의 특명에 마음은 더욱더 긴장이 됐다.
우리가 한국을 지키지 못한다면 죽어도 죽을 수가 없고 살아도 돌아갈 수가 없다.
강뉴부대는 ‘철의 삼각지’ 공방전에서도 고지를 단 한 차례도 내주지 않았다. 121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포로가 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5차에 걸쳐 6,037명이 참전했다. 그중 데스타(Desta)와 메코넨(Mekonen)은 형제였다.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형제가 뜻을 같이 했지만 난생처음 겪어보는 눈보라 전쟁터에서 형은 전사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지금도 에티오피아에서는 매년 한국 참전 출정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고 하니 한국과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의 나라가 분명하다.
전쟁이 끝나자 불쌍한 전쟁고아들이 넘쳐났다. 한순간 집과 가족을 잃고 정처없이 생사의 사각지대를 떠돌며 전염병과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다.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강뉴부대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1956년까지 대한민국에 남아 전후 복구를 도왔고 평화유지군으로써 휴전선 경비 임무를 맡았다.
강뉴부대 병사들은 용맹뿐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도 있었다. 불쌍한 고아들을 방관할 수가 없었기에 경기도 동두천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의 보화원(고아원)을 만들었다.
생명과 맞바꾼 월급을 모아 배고픈 전쟁고아들에게 먹을 것과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바쁜 병영생활 속에서도 고아들을 아들처럼 딸처럼 사랑으로 돌봐주었다.
그 후, 모국 에티오피아로 귀국한 강뉴부대원들은 극진한 환영을 받았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역적이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71년 에티오피아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1974년 하일레황제가 폐위되고 에티오피아는 공산국가가 됐다. 한국참전용사들의 고난은 1991년 공산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20년간이나 이어졌다.
공산당과 싸웠다는 이유로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 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가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 숱한 고초와 가혹한 핍박 속에서 견딜 수가 없던 한국참전용사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집시들이 되고 말았다.
에티오피아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과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강뉴부대원들, 하지만 그분들은 아직까지도 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옳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6.25 참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강뉴부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경제발전은 우리나라를 지켜준 그분들의 희생의 대가다. 그 영웅들이 있었기에 현재 대한민국이 있고 지금의 우리가 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은혜를 갚을 때다.
6.25 참전용사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보답, 우리는 지금 이 영웅들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그분들은 노병이 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강뉴부대원들이 보여줬던 그 감동으로 이제는 우리가 에티오피아 고아들을 위해 집을 짓자. 그들처럼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여 그들이 주었던 감동에 보답하자. 우리도 보화원이라고 이름을 붙여 은혜를 잊지 않는 한국인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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