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세계] 선거 결과는 이미 과거의 일.
▲ 추성춘 생활정치 이사장 © 로컬세계
어제의 민심이 이제 더 이상 오늘의 민심은 아니잖아요?
요즘은 국민이라고 부릅니다만, 일반 서민들은 선거 때에는 그런대로 국가 주인 대우 받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매일 매일이 하도 바빠서 실제로 선거 결과를 놓고 곱씹고 되씹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의 존재를 빠르게 잊어가겠지요. 그러나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잊지 않고 되풀이 하는 건 선거결과 분석에 대한 아전인수, 제 논에 물대기 식 주장입니다.
플러스 정보는 부풀리고 마이너스 정보는 감춥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 보다는 불리하거나 반성할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는 게 올바른 선거정보 공개입니다. 이긴 편이 한 것은 다 잘 한 것이고 진 사람이 한 것은 이것저것 다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버리기도 하지요. 선거에서는 한 표라도 더 많이 이긴 사람이 곧 ‘정의’가 됩니다.
또 사람 수 만큼의 주장이나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선거 뒷얘기는 ‘다 맞고 다 틀리다’입니다. 언론이나 전문가의 분석도, 국민의 시선에서 보지 않고 정당의 당리당략적 논리에 춤 출 때가 많습니다. 결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치인이나 언론, 전문가가 하는 말에 너무 집착해서 시간 뺏기지 말고 그저 내 생각대로, 내 방식으로 판단하고 내 의견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다른 의견도 참조하면서 내 판단을 스스로 발전 시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이, 민주시민이 주권자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선거 독후감이 다양한 관점에서 펼쳐지고 이것을 학습해 갈 때, 선거와 정치가 선진화 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통계라는 방식으로 전체를 합쳐버리고. 민심이 이렇다 저렇다 해 봐야, 선거 전략을 민심에 접붙이는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민심의 바닥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민심이란 본래 맨 밑바닥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특히 지방선거 결과에 관한 의미 풀이는, 중앙에서 한 눈으로 내려다 볼 것이 아니라 지역 한 곳 한 곳을 꼼꼼히 살피고 뜯어봐야 합니다.
선거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려면 민심을 잘게 쪼개고, 무엇보다 ‘작은 민심’을 소중하게 보듬어 지역적으로 세세히 살펴서 주민들의 요구나 사정에 맞춤형으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정당이 선거 결과를 당리당략적으로, 아전인수로 짜 맞춰서는 정답을 찾아 낼 수 없지 않겠습니까?
투표결과를 보면 국민은 ‘박근혜 지키기’와 ‘정권 심판론’,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가능한 한 지역사정에 맞춰 다양한 선택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지방선거답게, 정당보다는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결국 정당이 물에 빠트린 선거를 국민이 건져냈습니다. 현명한 국민이, 지방선거의 목적을 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의 취지와 목적에 어긋난 선거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국민을 향해 ‘잘못 했습니다’라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당 모두 ‘선거에서 우리는 둘 다 패자다’라고 말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여겨지는 마이너스 부분의 정보나 분석을 먼저 공유하는 것, 이것이 책임정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겸손한 자세입니다.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해야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더 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그럼에도 정당의 주장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아전인수입니다. 예를 들면,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라는 감성적 선거 전략으로, 경기와 인천, 부산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기도와 부산은 중도 사퇴한 통합진보당 후보의 이름이 기재된 투표용지를 그대로 사용했고, 해당 후보 지지표는 무효로 처리됐는데, 경기와 부산의 경우 무효표가 각각 14만 9천표와 5만 4천표로, 무효표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이때 무효표의 성격, 즉 통합진보당 후보의 중도 사퇴를 모르고 해당 후보를 찍어 무효로 처리된 표가 어느 정도인지, 사퇴 후 투표용지를 새로 인쇄할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결과 즉 무효로 처리된 표 안에 당락을 바꿀만한 위력(?)이 숨어 있을 가능성 말입니다.
또 아니면 야당 지적대로 통합진보당 후보의 중도 사퇴가, ‘종북연대’라는 새누리당의 공세로 이어져 오히려 보수표의 결집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마케팅’이여서 부산에서 이겼다고 단정하는 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인천의 경우는, 북한의 서해안 도발을 계기로 민심이 안보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안보관이 강화되면서 안정 지향의 민심이 확장되고 있음을, 인천을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인천은 이미 보수화 되고 있고 빈곤 속의 복지 보다 경제의 성장에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또 일부 주장대로 ‘박근혜 마케팅’이 실제로 위력을 발휘했다면, 새누리당이 충청 지역 광역단체장 투표에서 완패한 것을 두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특별시 백지화를 겨냥, 충청출신인 ‘정운찬’을 ‘박근혜저격수’로 선택, 국무총리에 임명했으나, MB정부의 ‘거사’는 실패했습니다. 박근혜의 뚝심을 꺾지 못했습니다. 대선 때 충청은 세종특별시를 지켜 낸 박 후보의 ‘텃밭’ 이였습니다.
그런 충청이 일 년여 만에 변화 중입니다.
결국 충청 표심에는, 세월호 참사 책임론이거나 후보자 경쟁력, 젊은 유권자의 야성(野性 ) 등이 여러 갈래로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요컨대 ‘박근혜 마케팅’은, 새누리당에게는 지역에 따라, 플러스 요인 가운데 하나이거나 제로섬이거나, 아예 마이너스 요인의 하나로도 작용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박근혜 마케팅’이 꼭 야당의 ‘정권 책임론’을 이겼다고도 말 할 수 없습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여당이 지역자치 선거를 대통령 선거처럼 연출한 잘못을 저질렀고 선거 과정에서 정당의 모습을 지워 버린 것입니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이 심판 받는 선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지역 일꾼을 뽑자고 해야 할 여당이 오히려 대통령을 심판대 올리는 선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다 꺼져가던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다시 살려 낸 건 ‘박근혜 마케팅’ 이었습니다.
지방선거는 이번에도 무늬만 지방선거였습니다. 지역자치 선거가 제 모습을 찾기란 절망적이란 탄식이 또 터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선거에 이용하는 건 정당정치의 퇴보이고 공정한 게임이 아닙니다.
지난 대선의 ‘48%’의 반대를 염두에 두고, 박 대통령을 ‘국민 전체의 대통령’으로 만들어가야 할 새누리당이,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을 새누리당 총재 정도로 격하시킨 사태가 ‘박근혜 마케팅’의 과오입니다.
물론 이 ‘마케팅’은 마지막일 겁니다. 2년 뒤 총선과 대선에서는 ‘박근혜 마케팅’이 다시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고 여당의 ‘친박클럽’도 사라질 것입니다.
벌써 야당은 ‘관권 선거’ 아니었느냐고 따질 태세입니다. 선거 후 야당과의 협상과 공조는, 국가개조의 산적한 국정과제를 해결하는 첩경입니다. 가장 강력한 정부는 야당을 잘 끌고 가는 정부입니다. 허약한 정부는 야당과 걸핏하면 다투고 싸우는 정부입니다. 그리고 야당 탓합니다.
여당이 정정당당하고 대의명분이 뚜렷해야 야당과의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겠지요.
세월호 참사는 국민적인 반성과 함께 우리민족이 살아온 방식,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이 나라 지도층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반성과 자책 그리고 거듭나야 할 시대적 소명을 깨우치게 한 사건 이였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생각으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권심판만을 논하는 것이 사태해결의 방법이 아니며 이번 지방선거 투표기준의 전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구하기와 버리기’라는 퇴행적인 선거 프레임의 등장으로 ‘정권심판론’이 더 큰 힘을 받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자 각 지역의 시급한 정책과 후보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방선거의 목적은 사라졌으며, 결과로 나타난 것은 ‘박근혜’에 대해 ‘예’ ‘아니요’라고 대답하라는 도박판 선거로 변질 돼, 세대 간의 표 대립이 격화된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특히 20대와 30대, 40대의 야당에의 줄투표 경향 그리고 60대 전후의 여당에의 압도적지지, 즉 ‘묻지 마’ 투표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결국, 이번선거를 통해 정당의 퇴행적 선거 프레임으로, 우리는 더 악화 된 ‘앵그리 데모크라시’와 ‘실버 데모크라시’의 대립 구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 난 민주주의로 쏠려서도 안 되고, 노인들만의 민주주의 여서도 안 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입니다. 민주주의가 너무 화에 휩싸여 성이 나면 거리의 정치로 변질되기 쉽고, 노인들만의 민주주의로 편향돼 기성세대가 국가 지속을 위한 경제적 부담을 회피하면 미래가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선거 전략이 세대 간 대립투표를 격화시켜서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세대의 대립과 갈등으로는 국가 장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세대 융합은 필연이자 순리입니다. 세대 간 대립에서 융합으로 가는 길은 정치가 개척해야 할 몫입니다.
정당이 정파의 이익을 앞세워 선거 과정에서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일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고, 특정 세대만의 지지로 연명하는 반쪽 정당정치로는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
언제까지 보수 정당은 실버 민주주의의 도구로 멈춰 있을 것이며 언제까지 진보 정당은 성난 민주주의에만 매달릴 것인지, 이번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은 다시 묻고 있습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이번 지방 선거를 통해 한국정치에서 세대 간 대립이 격화되고 갈등이 일상적으로 되풀이 될 수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됐고, 정당의 낡은 구조와 기능 부전의 시스템 그리고 시대에 뒤쳐진 퇴행적인 정당의 선거프레임이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 막고, 선거 후 국민 통합을 더욱 힘들게 해 선거에 대한 불신마저 깊어 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복지국가의 핵심인 지역 자립과 자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도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최종병기는, 사회 지도층이나 정당 시민단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국민이라는 사실이 또 증명됐습니다.
우선, 충청권의 민심은 광역 단체장은 야당, 기초단체장은 여당에 더 많은 표를 주고, 줄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충청 민심이 미디어 보도처럼 ‘알쏭달쏭’ 한 것은 아닐 테고, 기초선거에서는 후보자 경쟁력이, 투표 첫 순위 기준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서울에서 젊은 층이 야당에 줄투표한 것과는 대조가 됩니다. 또 호남에서 기초단체장 가운데 무소속 당선이 많이 늘었습니다. 목포 시장의 무소속 당선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는 정당 보다는 후보자의 됨됨이가 우선순위가 되는 바람직스런 변화의 바람입니다.
서울시장 당선자는 소속 정당 색깔을 희석시킨 선거 전략이 승리의 한 원인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에서 아주 작은 표 차로 낙선한 무소속후보가, 만약에 당선 됐다면 한국의 지역 구도 선거 역사를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될 뻔했습니다.
만약 부산에서 이번에 ‘일’이 터졌다면, 한국병의 상징이 된 ‘정치 텃밭’의 지역구도가 붕괴되는 굉음이, 호남의 변화를 재촉하게 됐을 겁니다. 부산이 변하고 호남이 변하고 한국이 변할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대변화의 전조현상은 이미 나타났고, 새 정치에 대한 희망도 단순히 꿈만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로, 가시권에 들어 왔습니다.머지않아 압력의 마그마가 조금 만 더 높아지면 폭발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는 정치인들에게서 한국 정치의 희망을 봅니다.
그들은 ‘지고도 이기’는 정치인들입니다. 그들은 한국정치 선진화의 주역들입니다.
정치적 텃밭을 지키는 일이 정치적 승리라고 주장하는 논리로는 글로벌 시대에 도전해 국익을 지켜 낼 수 없습니다. 한국정치가 여전히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돼 선거 과정이 선진화 되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없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나 터널에 갇힌 자의 폐쇄된 사고가 정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한국정치인들의 욕심 탓이기도 합니다.
모름지기 큰 지도자는 소욕(小慾)을 버리고 대욕(大慾)을 찾을 줄 알아야 역사가 평가하고 국가발전에도 기여를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선거가, 정파적 소욕에서 벗어나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설계할 ‘국민통합의 정치’를 세우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도록, 민주주의의 ‘최종병기’인 국민이 발 벗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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