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은행잎이 노란 카펫처럼 바닥을 뒤덮고 있다.(사진=한상길 기자) |
[로컬세계 한상길 기자]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위치한 은행나무숲은 자연휴양림이나 관광지, 공원도 아니고 개인의 농원이다. 오대산 자락 1만5000평의 부지에 은행나무 2,000그루가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곳은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황금빛 물결을 이뤄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픈 연인, 사진 동호인, 친구와 가족 등 방문객들을 유혹한다.
은행나무숲은 절정에 다다를 때가 가장 좋지만 바람에 흩날리며 은행잎이 떨어지는 모습도 낭만적이다. 또 은행잎이 바닥에 떨어지면 그 잎은 노란 카펫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른들도 재미 삼아 잎을 하늘로 날려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은행잎 더미에 뒹굴면서 정감에 빠진다.
▲줄을 지어 가지런하게 늘어선 은행나무숲의 모습. |
이곳은 내린천과 합류하게 되는 계방천이 호를 그리며 숲을 옆에 끼고 흐르고 있어 맑은 하천의 모습과 아롱이는 물소리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특히 숲과 하천의 경계를 이루는 곳의 단풍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은행나무숲은 1985년부터 25년간 한 번도 개방하지 않다가 2010년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방문객들을 위해 10월에만 한시적으로 무료 개방한다.
이 숲이 이곳에 들어서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 사랑에 기인한다. 은행나무숲 주인은 아내가 만성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자 우리나라 유명 약수터 중 하나인 가칠봉 삼봉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치료차 약수터 인근인 이곳 오대산 자락에 정착했다.
은행나무숲의 주인 유기준씨에 따르면 이곳에 정착하기 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거주할 당시 그곳에서 흔하게 접하게 된 은행나무를 보고 그 성장과 효용 가치에 알게 되었는데, 이곳에 정착을 계기로 은행나무를 재배키로 하였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의 은행나무숲을 일궈낸 장본인 주인 유기준씨의 모습. |
그는 현재 병이 쾌차한 배우자와 함께 은행나무숲 내부 한 켠에 자리한 돌담집에서 거주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은행나무숲이 수나무가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재배 당시에는 묘목의 암수 판별법이 없던 때라 임의로 심어도 암수의 비율이 대략 50:50이 되리라 믿고 식재한 결과 자라고 보니 암나무보다 수나무가 좀 더 많은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은행나무는 암수의 구분이 있어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있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은행나무는 전통적으로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지의 여부로 암수를 감별해 왔는데, 은행나무는 30년 이상 일정 기간 이상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어린 묘목의 암수 감별이 어려웠다. 그러다 2011년에 이르러서 산림과학원이 수나무에만 있는 유전자를 발견하여 1년 이하의 묘목의 암수 감별이 가능해져 그 후부터 농가에는 은행 채집이 가능한 암나무를, 거리에는 악취가 풍기지 않는 수나무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암나무에 매달린 은행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다른 나무에 비해 수명이 매우 길며 재래종의 경우 수령 25∼30년부터 결실이 되는 장기수로서 당대에 심으면 손자 대에 열매를 본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른다.
수령을 더함에 따라 점점 성숙해져 가는 우람함 숲의 풍미와 더불어 이들 부부의 훈훈한 정에 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이곳은 긴 세월 동안 살아가는 은행나무의 특성상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이들 사연이 부러우면 은행나무는 심지는 못한다 해도 나름 의미를 지닌 서책에 은행잎을 책갈피 삼아 꽂아두는 것만으로 얼마간의 운치를 즐겨볼 수 있지는 않을까.
▲수령을 더함에 따라 더욱 완숙해져 가는 은행나무. |
▲노랗게 물든 단풍으로 뒤덮인 숲의 일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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