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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 |
그동안 많은 학자가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 안에 자리했는지 아니면 요하와 난하 유역에 머물렀는지에 대해서 똑같이 문헌에 의해 연구하고 서로의 의견을 개진했지만, 결론은 서로 다르게 나오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문헌을 선별하거나 해석하는 데 있어서의 차이다.
따라서 단순히 문헌에 의한 방법만으로는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쟁의 연속일 뿐이다. 필자는 기원전 108년 당시 만주 영토의 지배 구조를 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통설처럼 한나라가 만주 대부분을 지배하는 고조선을 일거에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다면, 한사군은 만주를 지나 한반도까지 유입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은 우리 한민족이 고조선 이래로 만주를 지배하고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는 연속성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조선 멸망 이후 만주에 부여가 있었지만 부여가 만주 전체를 지배하고 생활권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부터 통설에 고구려 건국 연도로 알려진 기원전 37년까지는 한나라가 만주의 중심부를 지배하며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고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한나라가 만주는 물론 한반도까지 침공했다는 사대・식민 사관에 대항할 논리가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는 구실 중 하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사군이 한반도는커녕 만주 중심부에조차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한나라 침공 당시 만주에 존재하던 나라와 영역을 올바로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사군의 위치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위치에 따라서 만주의 영토권이 향방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설처럼 한사군이 만주와 한반도에까지 존재했다면 만주와 한반도에 한나라의 주를 이루던 한족(漢族)이 상당수 진출해서 지배하며 생활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만주의 영토문화 역시 한족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통설에 의하면 임둔군과 진번군은 설치된지 25년 만에 각각 현토군과 낙랑군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현토군은 기원전 75년부터 군치를 옮겨다니며 315년까지 버티다가 이후 소멸되었고, 낙랑군은 313년 고구려 미천왕 때 고구려에 귀속되기까지 중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침투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무려 400여년 동안 만주뿐만 아니라 한반도 영토문화에도 한족이 영향을 줬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는 ‘문화영토론’의 기준이 되는 만주와 한반도의 영토문화가 온전히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산물이 아니라는 논쟁의 여지가 될 수도 있다.
만주와 한반도의 영토문화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우리 한민족이 만주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희석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사군이 난하 유역과 요하 서쪽에 머물렀다면 만주는 물론 한반도의 영토문화는 온전히 우리 한민족이 형성한 것이 된다. 이것은 영토 분쟁지역의 영토문화를 분석하여 동일한 문화를 누리는 민족이 문화주권자가 된다는 ‘영토문화론’과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된다는 ‘문화영토론’에 의해서 만주의 영토권은 자연스럽게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
본 칼럼에서는 고구려 건국 연도를 올바르게 재설정함으로써 고구려 초기 영역과 한사군의 위치를 바르게 비정하여 ‘문화영토론’에 의해서 만주의 영토권이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밝힌다.
한사군이 설치되던 당시, 만주에 있던 우리 한민족의 나라가 고구려이며 그 영역이 요하 서쪽까지 달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던 고구려 건국 연도를 바로 잡은 학설의 타당성을 검토해서 고구려 건국 연도를 올바로 비정함으로써, 한나라 침공 당시 만주에는 고구려와 부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까닭에 한사군은 요하 서쪽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음을 밝힘으로써 만주의 영토문화에 한족은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론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증명해 나가야 한다. 중국이 만주를, 또 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무작정 자국 영토라고 떼쓰듯이 우기는 것은 어리석은 억지일 뿐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영토를 정의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이론인 ‘문화영토론’을 기본이론으로 설정하여 그 기준이 되는 ‘영토문화론’과 함께 먼저 소개하고, 다음으로 고구려 건국 연도가 기원전 37년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소급되어야 한다는 이론에 대해 검토한 후 가장 타당한 이론에 의해 고구려 건국 연도를 기원전 217년으로 재설정한다.
그리고 기원전 108년 당시의 고구려 영역을 밝힘으로써 한사군의 위치가 요하 서쪽에 머무를 수밖에 없던 이유와 한사군의 위치를 밝힌다. 한사군이 요하 서쪽에 있었기에 만주와 한반도에는 한족 중국의 어떤 문화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만주와 한반도 영토문화를 분석한 결과 ‘영토문화론’에 의한 문화주권자가 우리 한민족으로,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는 ‘문화영토론’에 의해서 만주의 영토권은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됨을 만천하에 선포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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