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동한 세계수도문화연구회 회장. |
입춘이 오고 곧 우수가 되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은 수증기가 공중에서 찬기운을 만나 고체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지만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 남녀노소 누구나 만가지 감회에 잠긴다. 문인들이 남겨 놓은 눈에 관한 글을 보면 그 문학적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김진섭이 1947년에 펴낸 수필집 '조광'에 발표한 '백설부'에는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 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내리는 눈을 의인화해서 예찬 하고 있다. 수필가는 공중에서 무질서하게 흩날리며 내려오는 흰 눈을 보고 누가 유혹을 해서 내려 오는지, 내려 와서는 어디로 가려는지 묻고 있다. 물론 눈은 아무 말이 없고 그 답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수밖에 없다.
김광균의 시 '설야'는 더 깊은 내면을 파고 든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매여/ 마음 허공에 등불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밭 이는 어느 잃어버린/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시인은 흰눈을 어느 먼 곳에서 보내 오는 그리운 소식으로 보고 그래서 한 밤에 소리 없이 흩날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만해 한용운이 옥중에서 쓴 한시가 있다. "감옥 둘레 사방으로 산 뿐인데 해일처럼 눈은 오고/ 무쇠처럼 찬 이불 속에서 재가 되는 꿈을꾸네/ 철창에 쇠사슬 풀릴 기미 보이지 않는데/ 심야에 어디서 쇳소리는 자꾸 들려오네(四山圍獄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鐵窓猶有鎖不得 夜聞鐵聲何處來)" 만해가 독립선언문의 행동강령인 공약 3장을 첨가하고 경성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했다. 바로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감금되어 3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 당시 옥중에서 지은 한 시중의 하나다. 해일 같이 눈이 쏟아지고 있는 감옥 철장 속에 갇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감옥 속의 심경을 상상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보는 사람의 심경과 상황에 따라 신비한 대상이 되고, 그리운 소식이 되기도 하고, 옥중에 갇힌 감옥수의 비감을 더욱 깊게 한다. 세상에는 4월 총선을 위해 저마다 애국자임을 자처하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청와대 부정선거 개입을 규탄하고 대통령은 물러 가라고 외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이제 곧 물러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경제 살리기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인생사는 늙은이는 계속 늙어가고 어린이는 빠르게 성장하고 죽은 사람은 아무 말이 없고 신혼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나고 있다. 흰눈은 청와대에도 내리고 광화문에도 내리고 한강 위에도 내린다. 공원묘지 에도 내리고 어린이 공원에도 내린다. 입춘이 오고 우수가 되어 봄이 곧 온다는데 눈은 왜 내리는가? 봄이 오기 전에 덮어버려 할 쓰레기라도 있는가? 우리 마음이 너무 어두워서 흰눈으로 밝게 해줄려는 것인가? 만해 처럼 억울한 사람이 갖혀 있는 감옥 때문인가?
아니면 정치혼란, 경제파탄, 안보위기, 외교참사의 난국에 처해 앞 길이 막막한 국민에게 전해 줄 새 소식이라도 있는가? 이 나라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망국의 위란에 처한 것을 느끼지도 못하는 불쌍한 민초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 인가? 누가 흰눈이 하늘에서 솓아지라고 간청을 했는가? 해일처럼 이 감옥을 덮어 버리라고 했단 말인가? 눈은 대답을 해주지 읺는다고 했다. 눈 오는 아침 누구나 자기에게 물어 답을 찾는 수 밖에 없다.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