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치부를 드러내는데, 특히 타이완 문제에서 불거진 오키나와 문제다. 일본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두 나라 모두 지금 강점하고 있는 영토의 실질적인 영토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다. 즉, 일본은 오키나와의 실질적인 영토권자가 아니고 중국 역시 타이완의 실질적인 영토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먼저 타이완 문제를 들먹인 데에는 나름대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기회에 미국으로부터 점수를 더 따고 그 앞에 찰싹 엎드린다는 양수겸장을 노린 발언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오키나와나 타이완 모두 일본과 중국이 틀린 진실을 가지고 자신들 영토라고 우기는 바람에 벌어지는 왜곡된 영토권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점한 영토의 실질적인 영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물고 뜯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강점하고 있는 영토의 실질적인 영토권자라는 것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주변의 그 누구도 물고 뜯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틀린 진실을 가지고 서로 잘났다고 우겨대고 있는 것도 가관인데, 중국은 한술 더 떠서 류큐제국이 자신들에게 조공한 조공국이라며 마치 오키나와가 자신들의 영토권에 들어오는 영토처럼 묘하게 발언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확신하건대 오키나와와 타이완 모두 일본 영토도 중국 영토도 아니라는 것만은 누가 뭐래도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필자는 이미 박사학위논문 <문화영토론에 의한 대마도의 영토권>을 필두로, 학술서 <대마도의 영토권>, <만주의 영토권>과 <만주국 영토의 중국귀속 부당성에 관한 연구>,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과 만주 영토권의 상관관계 연구>, <고구려현 실체에 의한 동북공정의 허상규명>, <문화영토론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 <‘영토문화론’ 재정립에 관한 고찰> 등 십수 편의 학술 논문과 <중국 바로보기>, <일본 바로보기> 등의 수십 편에 달하는 칼럼은 물론 <만주의 분노>, <대마도의 눈물>, <고조선과 대마도의 진실>, <일본 왕실의 만행과 음모>, <중국이 날조한 동북공정을 깨라> 등의 십수 편에 걸친 장편소설을 통해서 만주와 대마도는 물론 오키나와와 타이완 등 동북아 영토의 영토권에 대한 진실을 밝혀왔다. 청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의 역사이며, 만주는 한족 중국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우리 한민족의 영토로 한족 중국이 불법 강점하고 있는 것이고, 타이완 역시 한족 중국과는 일절 상관없는 영토이며, 일본이 우리 한민족의 영토인 대마도와 류큐족의 오키나와, 아이누족의 홋카이도를 강점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에 대해서 논술하고 발표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영토의 올바른 영토권 정리를 촉구해왔다.
오키나와는 류큐제도와 함께 류큐족의 류큐제국의 중심이 되는 섬이었다. 류큐제국은 신숙주 선생님의 해동제국기에 유구국(琉球國)이라고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류큐제국은 1429년 류큐제도의 세력들을 통일한 류큐 왕국이 세워진 이후 1879년까지 45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독립된 왕국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사용하며 명나라와 청나라, 일본과 조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물론 오세아니아주의 나라들과도 교역을 할 정도로 막강한 해상왕국이었다. 중국이 류큐제국을 일개 조공국이라고 하면서 자신들과 영토권 관계가 있는 듯이 발언하는 것은 중국만의 헛된 망상일 뿐이다.
그런 류큐제국을 무너트리고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게 된 것은 1609년에 사쓰마번의 침공을 당한 이후 일본이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서 1871년 지금까지 지방통치를 담당하던 번을 없애고 지방 통치 기관을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행정 개혁이 실행되자, 1872년에 류큐국을 일개 번인 류큐번으로 격하시킨 뒤 1879년 오키나와현을 설치 함으로써 무력으로 병합한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한때 미국의 군정하에 있다가, 이후 1972년 일본으로 다시 반환되었다.
오키나와가 독립하지 못하고 일본에 귀속된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미국이 오키나와에 구상한 미군기지 설치 때문이다. 미국은 오키나와 본섬의 15%를 점유하는 거대한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섬 전체에 나누어 분포하고 해역에는 해군기지를 설치함으로써 육해공해병대 모두를 주둔시켜 오키나와를 거대한 동양의 미국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속셈은 오키나와를 자신들 수중에 둠으로써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오세아니아까지 자신들의 사정권에 두겠다는 속셈이었다. 물론 그런 흑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키나와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일본과 엄청난 밀약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왕은 물론 일본의 주요 전범들을 사면해 주는 것은 물론 전후 일본의 경제 회복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대가로 오키나와를 제2 규모의 미군기지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일본이 만주 하얼빈에 731부대를 세우고 간도의 우리 백성들을 납치해서 감금한 채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온갖 질병과 동상, 성전환 등등 입으로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시행한 생체실험에서 습득한 화학・세균전에 대한 결과물을 모조리 넘겨받기로 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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