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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청에서 5일 이종만(왼쪽) 안양·군포·의왕 3개시 통합추진 안양시위원회 상임대표가 최대호 시장에게 4만5347명이 서명한 통합희망 주민건의서를 제출하고 있다(왼쪽). 같은날 의왕문화원 강당에서 안양권 통합반대 의왕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안양권 통합반대를 외치고 있다. |
정부와 일부 지자체의 무리한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주민 간 반목을 키우고 있다. 통합 건의안 제출 마감시기에 맞춘 ‘속도전’으로 갈등만 부추기는 셈이다.
전국적으로 통합논의가 오가는 지자체는 21개 지역 50개 시·군이다. 이들 지자체는 주민이 제출한 통합건의안 서명부를 받아 주민열람과 이의신청 등 절차를 거쳐 상위 시·도에 제출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반대 서명운동이 곳곳에서 펼쳐져 시민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기 화성시는 동부지역과 서부지역 간 찬반 대립이 극심해 지역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합반대화성시민대책위원회는 최근 발대식을 갖고 3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통합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동부지역 10개 읍·동의 통합찬성 서명이 시민 전체의 의견이 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충남 서천군도 비슷한 경우다. 지난달 17일 서천군에 제출된 통합건의안 서명부는 1602명이다. 문제는 통합반대대책위가 지난달 26일까지 실시한 반대서명운동에는 1만여명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금강하구둑을 사이로 전북 군산시와 접해있는 장항읍 위주의 통합은 안 된다는 것이다.
큰 도시의 일방적인 통합추진도 지역 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경기 군포·의왕시민들은 안양권 통합에 있어 안양시의 통합 당위성 홍보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통합에 대한 시민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장점 알리기가 오히려 통합에 걸림돌이 된 경우다.
정부의 ‘속도전’은 시민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는 9월 시·군·구 통합 기준을 확정 발표하고 10월2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5대권역에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주민들이 통합의 효과와 부작용을 논의하기에 3개월이란 시간은 부족했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통합되면 이를 다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 등 선진국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주민통합부터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전 창원·마산·진해 지역주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통합 창원시의 잘못을 재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는 “일단 통합을 하면 다시 분리하는 것은 큰 진통과 상처가 남고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며 “통합의 효과와 부작용을 주민들이 충분히 논의한 후에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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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일 통합 창원시 출범식에 참석한 박완수 창원시장과 관계자들이 시청현관 앞 계단에서 현판제막식을 하고 있다. |
긴급진단 | 전국 행정구역 대수술 몸살
민심이 묻는다…누굴위해 무엇을 위한 통합?
전국은 지금 행정구역 통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합 건의안 제출 마감시기가 1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자체 간 찬반이 엇갈리고 서명무효 논란 등이 발생하고 있다.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 없이 무리하게 진행돼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2009년 행정구역 통합 당시 문제점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찬·반 엇갈린 행정구역 통합
전국적으로 통합논의가 나오고 있는 대다수 권역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경기 안양·군포·의왕시의 통합논의는 지난달 3개시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가 발족하면서 본격화됐다. 통추위는 각 시별로 통합건의 주민서명운동을 벌여 의왕 7051명, 안양 4만5347명, 군포 1만2188명의 서명을 받아 각 지자체에 제출했다. 이는 통합 건의가 가능한 투표권자 50분의 1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통합을 주도한 이종만 안양시통합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안양권 3개시는 오래전부터 같은 생활·경제권을 이루고 있는 만큼 행정구역 통합은 당연한 일”이라며 “안양권의 미래 발전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통합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왕지역 시민·사회단체 등 600여명으로 구성된 통합반대 의왕시민대책위원회는 5일 출범식을 열고 “군포, 의왕을 안양시로 흡수·통합하는 것은 힘찬 도약을 준비 중인 의왕시를 쇠락의 길로 내모는 퇴행적 선택”이라며 “광역시 승격기준을 갖추지 못한 안양권 통합은 인구와 지역규모만 늘린 기형적 대도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에 불과하고 정치·경제·사회적 부작용만 증폭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강호 의왕대책위 상임대표는 “정체불명의 외부 인사들이 통합논의를 주도하면서 안양시의 입장만 대변하는 아전인수식 여론몰이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성시 주민서명 무효 판정 논란
경기 수원권(수원·화성·오산)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화성시에서는 통합 건의서 서명 무효 판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화성시는 5일 화성시통합추진위원회가 제출한 통합 건의서와 주민서명부 심사 결과 유효서명수가 법적 기준에 미달된다고 통보했다. 화성통추위가 제출한 전체 1만3240명 중 유효서명자 수가 1717명(12.97)에 그쳤기 때문이다. 법적 기준에 해당하는 서명인 수 7386명의 23.2%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는 본인만의 독특한 사인을 한 8123명의 서명부를 ‘불명확한 서명’으로 무효 판정했다. 이 인원은 제출한 전체 서명자수의 61%에 해당해 이 서명부가 유효로 판정됐을 경우 9840명(74%)으로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수치다.
시 관계자는 “주민 간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애초 서명부 심사 매뉴얼대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심사해야 한다”며 “우선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의 의견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재심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화성통추위 측은 “사인도 인정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시가 필적이 동일한지 확인할 능력이 없다며 사인을 무효로 처리했다”며 “시는 통합을 방해하기 위한 억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화성통추위는 해당 서명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까지 고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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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통합을 촉구하는 괴산군민(위)과 이를 반대하는 증평군민이 각각 궐기대회를 갖고 있다. 충북 괴산군과 괴산군사회단체협의회는 최근 괴산군과 증평군의 행정구역 통합 재추진에 나서 결과가 주목된다. |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통합을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마산·창원·진해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를 살펴봐도 정부 및 정치권이 주도하는 통합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폐해를 주는지 알 수 있다.
통합 창원시에서는 최근 시의회가 창원과 마산, 진해로 다시 분리시키는 의안을 통과시키는 동시에 시청사를 마산으로 이전하는 모순된 의안을 의결했다. 이는 통합 창원시에서 지역 간 대립이 매우 심각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반영한다. 통합이 오히려 지역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게 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통합 건의안 제출 마감시기에 쫓겨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시간 통합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자세를 가지고 통합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 제공보다는 주민과의 소통도 절실히 요구된다.
한 전문가는 “소통 문제는 현 정부가 진행한 모든 국책사업에서 불거진 문제”라며 “현행 행정구역 통합이 어려움을 겪는데도 정부의 소통부재가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행정구역 개편 선진국 사례
일본_ 정부 지원책 당근 제시 3229개 시·정·촌 1821개로 줄여
영국_ 행정구역개편 공론화 후 추진 지방정부 권한 확대 방점
일본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3229개의 시(市), 정(町), 촌(村)을 1821개로 줄이는 수술을 단행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주민들의 생활권이 넓어진 데다 도시 확장으로 자치단체 간 기존 경계를 고수할 필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복지서비스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시·정·촌 차원에서 이를 충당할 재정과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행정구역 개편의 배경이 됐다.
일본은 철저한 자율 통합을 원칙으로 내걸고 5년간 지방세 동결, 합병 후 최장 9년간 중앙정부의 교부금을 종전대로 지급, 최대 3억엔 합병보조금 지원 등을 보장했다. 통합된 시·정·촌에는 소규모 지자체에서 도입하기 어려웠던 국제화, 정보화 관련 전문 부서를 설치했다. 상하수도 관리 업무 등을 광역화해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처럼 인근 지자체보다 인구가 많고 재정 여건이 월등히 좋은 곳은 통합에 반대했다. 일부 지자체는 공공요금 등 주민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여론 때문에 주민투표가 부결되는 등 통합에 실패한 사례도 많았다.
영국의 행정구역 개편은 보수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이에 기초한 강력한 법적 집행이 가능했다는 게 특징이다.
영국은 지방정부의 덩치를 키워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권한을 확대하는 쪽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했다.
1992년 지방정부법을 개정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중립적인 지방정부위원회를 설치해 잉글랜드 지역의 행정구역을 연구한 결과 광역자치단체(County)와 기초자치단체(District)로 된 2단계 구조를 단층제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따라 1997년까지 잉글랜드는 39개의 광역자치단체를 34개로, 296개의 기초자치단체를 238개의 기초자치단체와 46개의 단일자치단체로 개편했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지역은 17개의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폐지돼 완전한 단층제 구조로 바뀌었다.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통합된 자치단체는 종전보다 3분의 1가량 인력이 줄었다.
행정구역 개편 장·단점
明 ‘행정효율’ 暗 ‘중앙종속’
행정구역개편의 장점은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와 행정체제를 개선하고 국가 백년대계의 틀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데 있다.
행정구역의 광역화·단순화로 지자체간 불필요한 갈등 감소는 물론 행정기관의 운영경비 절감에 효과적이다.
현재 부적절한 행정구역을 현실에 맞게 개편함으로써 효율적인 행정서비스와 사회자원의 균등 배분, 조화로운 지역개발 추진 등이 가능하다.
반면 행정구역개편이 잘못되면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의 종속이 심화된다. 한 광역단체에 속한 지역을 다른 광역단체로 편입하는 경우 사회적비용이 많이 든다. 정치적인 갈등과 지역단체, 시민단체간 갈등도 예상된다.
경제 살리기 등에 국력을 집중해야 할 시점에서 행정구역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과 함께 행정구역개편이 중앙집권화를 가져와 지방분권화에 역행할 가능성, 정치권이나 중앙에서 획일적 잣대로 행정구역 통합 추진시 주민반발 등 부작용도 산재해 있다.
special column_통합만능주의에 멍드는 지자체간 상생과 공존
이기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부 지역에 대한 지방행정체제개편 논의가 새삼 제기되고 있다. 정권마다 연례행사처럼 시·군 통합론이 등장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전국이 떠들썩하게 시·군 통합이 추진됐으나 마산·창원·진해 한 곳을 통합시키는데 그쳤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대통령소속기관으로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시·군 통합과 자치구 통합 등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에 대한 신청을 연말까지로 잡은 건 일부 지역에서 시·군 통합을 위한 논의에 불을 지피려는 시도로 보여진다.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명박 정부의 임기 초에 이미 자율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시·군 통합을 추진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국에서 10개 권역을 시·군 통합의 중점지역으로 추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시·군 통합을 추진했던 대부분 지역에서 지역 간 갈등과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이제는 이웃 간의 협력도 어렵게 됐다. 또한 통합을 성사시킨 통합 창원시에서는 최근 시의회가 창원과 마산, 진해로 다시 분리시키는 의안을 통과시키는 동시에 시청사를 마산으로 이전하는 모순된 의안을 의결했다. 이는 통합 창원시에서 지역 간 대립이 매우 심각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정부에서 통합의 모범사례로 꼽는 전남 여수시는 이미 13년 전에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을 통합했으나 아직도 통합청사를 짓지 못해 3개의 시청이 운영되고 있다. 시청소재지를 둘러싼 지역주민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앞으로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수시 통합의 효과로 3가지를 내세운다. 통합을 하고 나서 시외버스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광역쓰레기장을 설치할 수 있게 된 점, 재정규모의 확대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점 등이다.
이러한 효과는 반드시 시·군 통합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 간 협력으로 광역교통망을 구축해 시내버스요금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광역 쓰레기장도 외국에서는 대부분 지자체 간의 협력으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재정규모가 큰 신규 사업도 반드시 통합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 지자체들이 협력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시는 자동차의 증가로 대기오염문제가 심각해지자 프라이부르크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사는 주변 75개 군소 지방자치단체와 교통조합을 결성하고 광역철도망을 설치해 교통문제를 해결했다. 주민들의 광역적 교통문제를 통합 대신에 주변도시와 협력하여 해결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단 통합을 하고 나면 이를 다시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큰 진통과 상처가 남고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성급한 통합보다는 통합의 효과와 부작용을 주민들이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이미 통합한 지역에서 과연 기대했던 통합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구미와 통합을 했던 선산지역은 어떻게 되었는지, 제주도지역 시·군을 통합해 특별자치도를 만들고 난 후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자는 주장이 왜 나오고 있는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지자체의 통합을 추진하는 주도세력은 중앙정치인과 용역업자들이다. 정치인이나 용역업자들이야 정치적인 이벤트를 해서 표를 얻거나 돈을 벌고 나면 그만이다.
통합으로 덩치만 키우면 좋아진다는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모로 치면 우리나라의 지자체는 이미 프랑스의 100배가 넘고 스위스의 70배가 넘는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렇다고 우리의 지자체가 프랑스나 스위스보다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통합만능주의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지자체 간의 협력을 통해 상생과 공존을 모색할 때이다.
뉴스룸 =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1.12.16 (금) 15:54, 최종수정 2011.12.16 (금)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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