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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청담포럼이 주최하는 시민토론회가 강원 강릉시 청소년수련회관에서 ‘강릉시 지방행정 개편 시군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가운데 패널들이 의견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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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의회가 통합 창원시청사의 위치를 두고 파행을 겪고 있다. 지난달 옛 창원·마산지역 의원들 간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본회의가 3차례 공전했다. 지난 29일 추가경정 세입·세출예산안 등 15건을 심의 의결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지역여론이 들끓고 있어 행정구역 통합 부작용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창원시의회는 지난 27일 임시회를 소집했으나 김이수 의장이 본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옛 창원과 진해지역 시의원 28명은 김 의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서명했다.
앞서 마산지역 의원들은 26일 시의회 앞에서 창원지역 의원들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의원 3명이 삭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본회의장 점거 사태 등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옛 창원지역 의원들에게 요구했다.
이는 지난 13일과 20일 열린 본회의에서 마산지역 의원들이 통합시청사 등 중요 시설을 지역별로 결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려는 시도를 창원지역 의원들이 막았기 때문이다. 옛 창원지역 의원들과 마산지역 의원들 간 몸싸움이 벌어져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지역주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통합 후 계속된 후유증으로 주민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옛 마산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창원시 마산살리기범시민연합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일 시의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시의원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해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시 출범 18개월이 넘도록 시민갈등을 조장하는 현실을 보면서 실망과 분노를 넘어 기대할 가치도 사라졌다”며 “창원시를 옛 창원·마산·진해 3개시로 분리하기 위한 시민투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원시 공무원노동조합도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는 시의회 의원들이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한 의정 폭거”라고 비난했다.
노조는 “추가경정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저소득층 복지예산 100억원 등 연말에 집행해야 할 예산지출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며 “추가경정 예산안과 새해 예산의 즉시 심의 의결과 시의회를 파행으로 몰고간 의장단 사퇴, 시 집행부와 시의회의 소통”을 촉구했다.
주민 공감없이 통합 추진 ‘예고된 파행’
일단 행정구역 통합되면 재분리 어려워 신중한 결정 필요
통합 창원시가 출범 19개월이 지나도록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자율통합도시 1호라는 이름값을 못하면서 통합 전 장밋빛 전망이 무색해졌다. 통합 시청사 소재지 갈등, 도·농간의 불균형 개발 우려 등 부작용도 심각하다. 옛 창원·마산지역 시의원 간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지역 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통합 창원시 파행은 주민의견 수렴 없는 행정구역 통합의 결과라는 점에서 시·군통합을 논의 중인 지자체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민주도의 통합 이뤄져야
행정구역 통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주민주도의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주체는 주민이어야 하며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정치적·지역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통합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주민투표방식이 행정구역 통합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손꼽히는 점도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 창원시는 2009년 옛 마산·창원·진해지역 시의원들이 통합논의를 주도하고 각 지역 시의회에서 통합안이 의결돼 2010년 7월1일 출범했다. 출범 초기부터 주민주도가 아닌 시의회 등 정치권에 의한 행정구역 통합으로 논란이 일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대표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갈등의 ‘씨앗’이 됐다.
주민들은 애초에 마산·창원·진해시가 주민투표를 거쳐 행정구역 통합을 이뤄냈다면 통합 시청사를 둘러싼 지역갈등을 초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도 행정구역 통합은 정치적·행정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안으로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며 지역주민의 의사가 최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민투표 방식의 자율통합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한 전문가는 “행정구역 통합은 장점도 많지만 주민반발 등 심각한 부작용도 지니고 있다”며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통합 창원시와 같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합 후 재분리 사실상 불가능
행정구역 통합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통합이 완료되면 다시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합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큰 상처가 남게 되고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통합 창원시가 시청사 문제 등으로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어도 쉽게 분리하지 못하는 이유다.
행정구역 통합은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린다. 성급한 통합보다는 통합의 효과와 부작용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행정구역 통합은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와 행정체제를 개혁하고 행정구역의 광역화·단순화로 행정기관의 운영경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생활권으로 이뤄지지 않은 행정구역을 개편함으로서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통합논의가 오가는 충북 청주·청원의 경우 청원군의 학생들이 청주시내 학교를 다니고 청주시내 중심가에 청원군청이 위치하는 등 생활권이 동일한 지역으로 통합에 대한 시민의 열기가 뜨거운 편이다.
행정구역 개편은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종속이 심화되고 메가시티 조성으로 지방분권화에 역행할 가능성이 높다. 획일적 잣대로 행정구역 통합 추진 시 주민 반발을 가져와 민민 갈등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현재 통합논의가 오가는 21개 지역 50개 시·군·구 중 대다수 지자체에서 통합추진위원회와 함께 통합반대위원회가 구성돼 주민 간 갈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통합을 추진하는데 있어 속도전은 경계해야 한다. 현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펼칠 경우 제2, 제3의 창원시가 속출하게 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3229개의 시·정·촌을 1821개로 통합하는 데 무려 7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조급증을 버리고 긴 호흡으로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1.12.31 (토) 15:29, 최종수정 2012.01.02 (월)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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