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십자수를 놓아 대가의 경지에 이른 남자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전북 익산 성당포구마을의 김재권(43)씨.
김씨는 올해로 12년째 십자수를 하고 있다. 하얀 천에 형형색색의 실로 행복을 수놓으며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는다.
십자수와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평소 등산을 좋아했던 그는 9년 간의 부사관(여산 부사관학교 근무)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을 기념하며 산에 올랐다. 지리산을 시작으로 설악산 대청봉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일정으로 등산 도중 무릎을 다쳐 고향에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 치료 중 무료함을 달래려고 십자수 열쇠고리를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했다. 그러다 십자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십자수는 삶의 일부가 됐다. 바쁜 농사철을 제외하면 매일 6시간에서 많게는 18시간까지 십자수를 놓는다. 하루 2~3시간만 자거나 밤을 꼬박 새는 일도 다반사다.
십자수를 놓으며 어려움도 많았다. 부모님과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한 방송에 소개되고 난 뒤 변화가 생겼다. 특이한 도안을 보내주거나 십자수 기술을 전수받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과 작품을 사겠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김씨의 작업장 벽면에는 열정과 섬세함으로 표현된 다양한 작품들이 촘촘히 걸려있다. 도안에 없는 배경과 입체감을 더해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했다. 작품의 크기별 관리법까지 터득해 수를 놓는 도중 작품이 더러워지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신경쓰는 등 완성도를 높였다. 십자수 도안을 직접 디자인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 진행하는 작품들은 스케일이 크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하루 평균 6시간씩 약 10개월을 작업해야 한다. 이렇게 힘들여 완성한 작품은 표구해 애정을 갖고 보관하지만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에게는 선뜻 선물로 내주기도 한다. 작품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는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공들여 만든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이 계신다면 그 분께 선물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억만금을 줘도 팔지 않습니다”
십자수는 김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십자수로 자신이 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한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무언가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한 땀씩 수를 놓다보면 산에 오르는 것 같은 열정과 성취감이 생겨요. 수 놓는 과정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죠. 작품을 완성하면 산 정상에 올라 선 느낌이 들어 행복합니다”
로컬익산 = 서홍규 기자 seohong5@segye.com
- 기사입력 2012.05.11 (금) 14:01, 최종수정 2012.05.11 (금)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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